신봉수 역사교사, “전라도 의병 전국 의병 60% 차지, 항일의병에 큰 역할”

“전라도 의병은 전국 의병 수의 60%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숫자와 비교하면 제대로 연구와 그들을 기리는 기념물 관리는 부족하고, 독립유공자로서 인정받는 숫자도 적은 게 현실입니다.”

신봉수 광주예술고등학교 역사교사는 최근 광주 서구문화원 초청 문화유산 아카데미 특강에서 ‘불굴의 한말 호남 의병’를 주제로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아직까지 서훈받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강연하는 신봉수 교사. ⓒ광주서구문화원 제공
강연하는 신봉수 교사. ⓒ광주서구문화원 제공

신 교사는 “더욱이 죽봉대로, 대천로, 서암대로, 설죽로, 금재로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 도로명이 전부 호남 의병장들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단순 도로명이었던 이 이름들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1909년 전라도 의병들은 일본 군경과 교전 횟수는 전남은 31.5%, 전북은 15.7%였으며, 교전 의병 수는 전국 대비 전남은 45.5%, 전북은 14.5%로 당시 의병 수의 60%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의병들을 통솔하는 데는 여러 의병장이 등장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호남 의병의 핵심인물이었던 기삼연, 일제가 ‘거괴’로 지목한 김태원과 김율 형제, 전남 제일의 의병장 심남일, 머슴 출신 항일의병장 안규홍 등이 있다.

백암 박은식은 “의병은 독립운동의 도화선이므로, 만약 이들을 성패로 논한다면 그것은 지식이 얕은 것”이라 말했다. 비록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희생이 너무 컸지만 항일의병의 봉기는 독립운동이라는 큰 흐름으로, 더 나아가 민주화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작점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한말 의병 활동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부족한 자료와 호남 의병에 관한 연구 부족으로 유공자 서훈 작업을 하는 활동 또한 턱없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신 교사는 이런 처지로 의병장을 기리는 기념관이나, 기념물에 대한 관리도 허술하여 오히려 호남 의병들의 명예에 먹칠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역출신 의병 연구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의병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공을 인정받도록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들을 기리는 기념물에 대한 관리와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는 작업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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