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세계화 능력을 기르는데 꼭 출발점이 중요하나요?"
1995년 경북 상주시에 살던 여고 3학년생 김주현씨는 영어와는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영어 과목을 싫어했고 수능 시험을 보면 외국어 영역(영어) 점수가 제일 낮았다. 영어 회화 학원은 대입 종합반 학원도 없는 인구 10만 소도시에서 '언감생심'에 가까웠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김씨는 고3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일을 해냈다.

영어권 원어민도 어려워한다는 미국법 공부에 도전,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을 마친 뒤 미국 테네시주 변호사 자격을 따낸 것. 그는 현재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에서 미국 이민법 담당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0일 연합뉴스가 전화 통화로 만난 김씨는 "미국법 자체는 이해가 어렵지 않았으나 공부에 필요한 수준의 영어를 익히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고 말했다.

대학(건국대 히브리어과) 재학 시절 캐나다 어학 연수를 1년 다녀와 토익 850점에 일상 회화를 하는 실력까지 겨우 갖췄지만 이후 '국제 전문직이 되겠다'며 무작정 입학한 법률대학원은 수준이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법전 원서를 들고 영어로 강의하는 수업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이 '1학년이라도 마칠 수 있을까'였다.
"1주에 100페이지가 넘는 교과서를 읽으며 많이 헤맸어요. 판례의 맥락과 해당 법리를 분석해 영어로 발표하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었구요. 따로 영어를 공부할 시간이 없어 학과 공부 틈틈이 해결하는 수 밖에 없었죠. 캐나다 연수 때 '영어가 싫진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김씨의 전략은 짧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몰입해 '영어에 빠지기'. 학교 안에서 학생들끼리도 무조건 영어를 쓰도록 한 대학원 측 정책이 적잖게 도움이 됐다.

'고3으로 돌아간 것처럼' 주말과 방학에도 영어 교과서를 파고 이해가 안 되는 어구는 꼭 교포 학생들에게 묻고 토론했다. 그렇게 1년을 넘기자 영어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캠프밸(Campbell)대 로스쿨에 교환 학생도 다녀왔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영어 사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고 유학을 안 다녀와도 본인의 노력에 따라 길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영어도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니까요"

김씨의 현재 목표는 이민법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 변호사가 되는 것. 대학 졸업 후 이민 수속 업체에서 잠시 일하면서 이 분야 일의 수요가 꾸준히 늘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갖게 된 꿈이다.

'친척 영주권 청원서(Petition for Alien Relative)'와 '입국금지 사유철회 요청서(Waiver for Inadmissibility)' 등 이주 서류를 만들고 미국 이민국과 전화 통화를 하며 하루를 보내지만 김씨는 여전히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라 괴롭다'며 웃는다.

좀 더 경력을 쌓은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난민 보호와 구류자 구제 등 다른 관련 업무에도 지원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상주 처녀' 김씨, 그가 펼칠 세계 무대 '도전기'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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