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전문]

강제매각 피할 열쇠 일본정부가 쥐고 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대법원 판결 2년을 맞아-

■중국과 ‘화해’-한국은 판결이행 ‘방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이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에 배상 명령을 내린 지(2018.11.29.) 2년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미쓰비시는 사과 표명은커녕, 판결 2년이 되도록 법원의 명령조차 따르지 않고 있다. 한국 사법부의 최종 결정을 휴지조각 대하듯 가볍게 취급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사이 원고들은 속수무책 쓰러지고 있다. 히로시마 동원 피해자 소송 원고 5명은 2018년 대법원 판결 이전에 모두 사망하고 말았고, 근로정신대 소송 역시 원고 5명 중 2명(김중곤,이동련)은 힘겹게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미쓰비시가 판결 이행을 거부하는 사이 차례로 세상과 결별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는 최소한의 예의마저도 저버리고 있다. 원만한 해법을 찾기 위해 몇 차례 대화를 제안했지만 거듭 외면했고, 돌아온 것은 오히려 수출규제 조치라는 이름의 경제보복이었다. 이웃 국가에 대한 깊은 ‘적의’를 품지 않는 한 취할 수 없는 행동이다.

미쓰비시는 한국에서 소송이 제기되기 전인 2010~2012년 16차례 근로정신대 피해자 측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해결 방법을 논의한 바 있다. 소송이 없어도 피해자 측과 마주앉았던 미쓰비시가, 정작 판결 결과가 나왔음에도 배상명령과 대화 제의를 외면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이러한 상식 밖 행위의 밑바탕에는 일본정부가 있다. 일본정부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중국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일본기업 가지마건설(하나오카광산.2000년), 니시마츠건설(2009년), 미쓰비시머트리얼(2016년) 등이 피해자 측과 화해할 때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일본정부가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만 일본기업들에게 배상 명령에 응하지 말라고 강요한 것은 특정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자, 매우 고약한 심보다.

■바뀐 것은 일본정부의 양심 ... 일본 법원조차 개인청구권은 인정

일본정부는 앵무새처럼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소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마무리된 사안인데, 뒤늦게 한국 대법원이 뒤집었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수십 건의 소송이 진행되었지만, 1990년대까지 단 한 차례도 재판에서 개인청구권 유무가 논란거리가 된 일이 없었다. 일본정부도 여러 차례 국회에서 한일청구권협정과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다가 소송이 급증한 2000년대 들어 갑자기 기존 입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법원뿐 아니라, 일본 법원마저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일본법원이 한일청구권협정을 구실로 일본 법원을 통해서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식의 궁색한 변명을 내놓긴 했지만, 개인청구권 자체가 소멸됐다는 주장은 일본 법원에서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문제는 더 이상 다툼거리가 되지 못한다. 바뀐 것이 있다면, 한 입으로 두 말을 해 온 일본의 양심이 바뀌었을 뿐이다. 트집 잡기가 계속될수록 일본 처지만 궁색해질 뿐이다. 강조하지만,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일본정부가 주장해오던 입장을 스스로 뒤집는 꼴이며, 일본정부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할 뿐이다.

■강제매각 피할 꼼수 없어 ... 일본정부·미쓰비시가 화답할 차례!

아베에 이어 스가 총리가 새로 취임했지만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입장에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특히 한국 측의 수용 가능한 조치가 없으면 12월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한국 내 압류자산 현금화 절차를 한국 정부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무례를 넘어 오만불손한 짓이다.

알다시피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은 일본기업과 일본정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강제집행은 민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일 뿐이다. 일본은 사법부 결정도 손바닥 뒤집듯 엎었다 뒤집었다 하는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삼권이 분립된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부도 관여할 권한이 없다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아는 이치다.

강조하지만, 자산 매각을 피할 꼼수나 요행은 없다. 강제매각을 피할 열쇠는 한국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일본정부 자신이 쥐고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 한일 간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조하지만 이 문제는 어느 일방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한일 양국이 미진했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한발 앞으로 내딛자는 것이다.

특히, 강제동원 문제의 가장 근본적 책임이 일본정부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기업들의 판결 이행을 돕는 것이 도리이지, 지금처럼 고춧가루를 뿌릴 처지가 아니다. 우리는 한일 간 갈등 속에서도 양국의 신뢰구축과 발전을 염원하는 더 많은 국민들의 기대와 노력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지난 2010년 이 문제의 중요성을 감안해 자주적 의지에 따라 피해자 측과 교섭에 나섰던 역사인식을 여전히 중시한다. 지금이라도 미쓰비시가 협의에 나선다면 얼마든지 대화를 통해 방법을 찾아 나설 용의가 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에도 거듭 강조한다. 여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피해자들은 지금 시간이 없다. 다만 절박한 처지에 있는 것을 구실삼아 피해자들에게 기울어진 선택지만을 놓고 강요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것이다.

강조하지만 자칫 오른손이 주던 왼손이 주던, 그저 돈만 쥐어 주면 된다는 식의 인식은 어렵게 거둔 사법 정의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싸워온 피해자들의 자존심과 명예에도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일본 속담에 “밟는 자는 밟힌 자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흘려보낸 세월이 75년이다. 지금이야말로 일본정부와 미쓰비시가 화답할 차례다.

2020년 11월 29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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