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K 기자에게

얼마 전의 일이다. 광주의 일간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영진 광주문화중심도시조성 추진기획단장이 사표가 제출되어 수리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사표는 제출되었지만 수리 된 것이 아니고 수리절차를 밟고 있는 도중이었다.

일개 차관급 국가 관료의 사표수리가 딱히 민감하게 반응할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떠들어 대는 저의가 무엇일까? “십중팔구 누군가 언론플레이를 했을 겁니다, 그렇게 여론몰이를 함으로써 사표수리를 기정사실화 해버린 셈이죠.” 10여 년 남짓 광주 모 일간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K 기자의 일갈이다.

   
  ▲ 리영희 전 한양대교수 ⓒ시민의소리  
공정해야할 신문기자가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일방적인 편들기 기사를 썼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안 갔지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매일같이 보는 작문, 표절, 과장, 왜곡 등에 자유로울 수가 없는 그들이 아니던가.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는 변절한 헤겔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K 기자 말은 신랄하다. “겉으로는 지역통합을 외치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 ‘권력과 돈’이 걸렸다 싶으면 과감히 표제를 걸거나, 최소한 방조를 합니다. 입으로는 서민을 옹호하지만 기업지배구조 개편에 이른다 싶으면 입에 개거품을 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신문시장이 왜곡된 셈인데, 이런 구도화에서 열림과 소통이 있겠습니까? 소통은 없고 일방적인 배설만 있을 뿐이죠.”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막상 현직 기자로부터 단도직입적인 말을 듣다보니 기가 막혔다. 한국언론협회 및 기자협회에 가입된 광주지역 신문사의 사주들을 면면을 들쳐보면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다.

<광주일보>는 대주건설, <전남일보>는 조선내화, <무등일보>는 애드컴(광고회사), <광남일보>는 청전건설(호남대), <남도일보>는 대지건설(부도), <광주매일신문>은 남양건설, <전남매일>은 삼능건설. 다들 신문의 편집권을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구요? 물론 그래야겠죠. 밥줄 목숨이 서너 개쯤이라도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이 대목에선 신랄했던 K기자도 말꼬리를 흐린다. 너무 비약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기자 ‘에드가 스노우’와 ‘이영희’가 생각났다.

   
  ▲ 중국의 붉은 별  
1936년 중국의 오지, 홍군의 해방구 연안을 방문한 그는 대장정으로 지리멸렬해진 홍군의 아지트를 왜 방문하였던가. 대장정이라는 사건자체가 도도한 역사의 흐름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기자된 사람으로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노우는 ‘중국의 붉은 별’에서 대장정 참가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왜 홍군이 2년간의 대장정과 부패한 국민당군의 추격을 물리치고 살아남는데 성공할 수밖에 없는가를 냉정히 서술한다.

기자 출신 이영희 또한 서슬 퍼렇던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을 연재했다. 당시의 일방통행식 역사해석과 달리 그는 베트남 전쟁의 원인은 이른바 ‘휴전 후 공정한 총선을 통해 베트남을 통일 한다’라는 제네바 조약을 미국과 그 괴뢰정권이 일방적으로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차분히 분석해냈다.

유신시대 반공의 광풍이 불던 당시 그는 투옥을 무릅쓰고, 이 책을 써 냈다. 탁월한 그의 역사의식과 안목에는 과장도 편견도 왜곡도 없었다.

   
  ▲ 에드가 스노우  
지나온 전 세계에서 580명의 취재 기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편안한 데스크에 앉아 그랬을 리는 만무하고, 대부분 발로 뛰면서, 생생하게 사건과 현상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다가 죽어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아프가니스탄이나 팔레스타인의 종군기자로 달려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것은 기대도 않는다. 다만 기사를 쓸 때 발로 뛰고, 사실만 가지고 쓰라고 부탁하고 싶을 따름이다. 인터넷이나 시중에 떠도는 루머를 듣고 작성하지 말고, 또 말장난하지 말라는 얘기도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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