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 '찾아가는 기념관'
5ㆍ18기록관 3층... 8월11일까지 전시

ⓒ예제하
가슴에 묻은 여인, 김대중 대통령 첫 아내 차용애 여사는 잇단 선거패배 이후 가슴앓이를 하다가 1959년 8월 28일 그의 곁을 떠나갔다. 김 대통령은 훗날 아내를 잃었을 때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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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에 풍운을 부르다.' 1971년 박정희와 김대중 간의 대결이 치열했다. 부산 50만, 대구 30만명이 모였다. 철인이라 불리웠던 김대중은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유세장을 누볐다. 당시 한반도의 반쪽 남쪽이 들끓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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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사형'. 1980년 신군부 세력에게 김대중은 버거운 존재였다. 결국 그들은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김대중 내란사건'을 날조해서 김대중을 감옥에 가둔다. 그 유명한 최후진술을 통해 "다시는 이땅에 정치보복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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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2000년 6월 13일. 대통령 김대중을 태운 전용기가 10시30분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다가왔고, 둘은 손을 맞잡았다. 굳세게.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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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평화의 다른 이름'.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수있다"라고 했다. 그는 평화의 다른 이름이다. 온몸을 바쳐 평화를 만들고 그 속에 들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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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담은 '김대중, 그 불멸의 순간' 전시가 광주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 3층에서 오는 8월1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 기념사업으로 재단법인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의 주관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출생에서부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겪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을 마주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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