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오월시 연재'

백비(白碑)를 세우며

- 정대호

사각 나무에 흰색을 칠하고

원혼비(冤魂碑) 세 글자를 썼습니다.

대한중석 광산이 있던 상원리 계곡

1953년 6․25전쟁이 끝날 무렵

계곡을 따라 서로 마주 보게 사람들을 포승줄로 묶어두고

뒤에서 총질을 했습니다.

골짜기에 시체가 쌓이고 쌓였습니다.

죽음을 확인한다고 여기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습니다.

시체더미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뭇 경찰들의 총알받이가 되었습니다.

대한중석 초소 경비를 섰던 한 젊은이가

맞은편 초소 위에서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죽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냄새에 진저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보름을 넘게 앓아누웠습니다.

65년도 더 지난 오늘 백비를 세우는 날

그는 노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이 산위에 올라와 그 날의 참상을 증언해 주었습니다.

 

** 1958년 경북 청송 출생, 1984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마네킹도 옷을 갈아 입는다> 등,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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