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이 쓸쓸할 적이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이태리 노래 ‘Vagabondo'를 번안한 박인희의 <방랑자>라는 곡인데, 특히 “그림자 벗을 삼아 걷는 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지만”라는 대목이 좋아서이다. 함께 할 친구가 자신의 그림자밖에 없는 처지란 얼마나 외로운 것이랴.

어릴 적 동네친구들과 놀고 있노라면, 금세 사위가 어두워지곤 하였다.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들어가는 해질녘엔 배고픈 그림자가 앞서 달렸다. 개구쟁이끼리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한바탕 소동을 벌리다가도, 가로등에 주변의 그림자들이 길게 드리운 골목을 혼자 걷노라면 꼬맹이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곤 하였다. 이처럼 그림자는 내 추억 속에서 벗이자, 자신이자, 친구이자, 무섬증이었다.

   
     
1930년대 무성영화 <프라하의 학생>에 등장하는 그림자의 이미지는 전율스럽다. 가난하지만 야심찬 학생이 악마에게 돈을 받고 자기 그림자를 판다.

그러나 그림자는 학생의 분신이 되어 그를 끊임없이 스토킹한다. 견디다 못한 학생은 거울에 비친 분신을 향해 총을 쏜다. 산산조각 난 거울, 마침내 분신은 사라졌지만, 전혀 뜻밖에 학생까지 숨을 거둔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실상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마치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주인공처럼.

중국 고대의 사상가 장자(莊子, BC 369~BC 289?)도 그림자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발자국 소리를 싫어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그림자와 발자국 소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리면 달릴수록 발자국 소리는 늘어만 가고 그림자도 지치지 않고 그를 따라왔다. 그것이 달리는 속도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 사람은 사력을 다해 달렸으나 그림자와 발자국 소리는 결코 떼어내지 못하고, 마침내 힘이 다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만일 그가 그냥 그늘 속으로만 걸어 들어갔어도 그의 그림자는 사라졌을 것이며,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도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인데, 그는 이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러한 그림자에 대한 상념이 어린 엄마(사회에서 미혼모라고 부르는)들과 함께 한 지난 2년 동안 쉬 떠나지 않았다. 답사하고자 했던 식영정에 얽힌 장자의 그림자 우화가 떠오른 탓도 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통 답사를 함께 다니면 통성명도 하면서 서로 친밀해지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게 여의치 않은 어린 엄마들의 사정 때문에 그러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나 태도에 그네들이 상처나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까닭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공연한 기우였음을 아는데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난다, 이 년 전 첫 만남이. 마치 영사기가 곁에서 도는 것처럼. 날씨도 좋았다. 우린 가사문학관 주차장에서 만나 지석천으로 곧장 내려갔다. 주변에 산재한 누정들의 산실이 실상은 이 개울이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전히 물은 조용히 흘렀지만, 그 물결에 반짝이는 햇살로 충분히 좋았다. 배롱나무 그늘을 지나 환벽당에 올라 마루에 앉은 어린 엄마들의 가쁜 숨소리에 여름이 빛났다. 들린다. 점심을 먹고 나서 쑥스럽게 부르던 어느 어린엄마의 노랫소리가. 그 가락에 마음을 맡기고 건강을 빌었다.

두 번째 만남도 잊기 힘들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소쇄원을 들렀다. 스승 조광조의 죽음으로 자신의 꿈마저 좌절된 양산보의 고뇌가 서린 소쇄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고 깨끗하게 내면을 다스릴 줄 알았던 그의 삶을 어린엄마들이 느끼길 바랐다.

그리고 가사문학관 찻집에서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실 때, 창밖으로 내리던 흰 눈송이가, 한참 수다를 떨고나오니 폭설로 변해 광주까지 다섯 시간이나 걸려 간신히 빠져나오던 기억이 새롭다. 낭만은 짧고 고생은 길었을까? 올 여름의 만남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젠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게 된 까닭이리라. 무거운 몸 때문에, 행여나 하는 생각에 식영정은 여전히 오르지 못했다. 그곳에서 맑은 바람을 맞으며 그림자를 털어놓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었는데, 지금도 아쉽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화가 중에 박수근이 으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를 좋아한다.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오랜 세파를 견뎌낸 삶의 깊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박수근은 나무와 아낙네를 즐겨 그렸다. 특히 나무는 생활력을 상실한 50년대의 아버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심하게 말하면 생활에 도움이 별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존재하되 늘 잊고 지내는 그림자처럼. 따라서 그 세월의 짐은 어머니가 짊어져야 했다. 박수근의 그림을 보고나면 왠지 기분이 잠기는 이유이다. 그리고 어린 엄마들과 헤어져 돌아올 때도 그런 심정을 느낀다.

내게 어린 엄마들과 함께 한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 무엇보다 난 그네들이 건강하길 바란다. 아가들도 튼튼하게 자라길 소망한다.

비록 세상이 그들에게 따뜻하지 않을지라도, 프라하의 학생처럼 거울을 깨트리지 않고, 장자에 나오는 사람처럼 달아나지 않고, 박수근의 작품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씩씩하게 살아가길 기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다름 아닌 내가 학생을 쫓아다닌 그림자이진 않은가,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는 아닐까 두렵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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