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2017년 3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년 남짓하게 옛집을 허물고 그 위에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고자 집을 지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14-15번지에 위치한 어머니와 내가 사는 집터의 규모는 80여 평이 넘었다. 마을 내에서는 가장 넓은 곳이기도 했다. 
 

2009년 가을, 어머니 강복덕 님 옛집 모습 ⓒ석산 진성영


집을 짓는 동안 어머니는 서울 큰누나 집에 있다가 서울 살이가 답답하다고 해서 2018년 6월에 새로 지은 집으로 내려왔다.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나, 이웃집과 경계를 이루는 담을 비롯해 외부 조성이 마무리가 덜 된 상태였다.

집주인이 상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자들이 구두, 서면상으로 지시를 받고 집을 짓다 보니 여러 군데에서 부실이 나왔고, 집 짓는 기일 또한 제대로 맞추지를 못했다.

그러던 2017년 8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귀향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내게 수시로 목맨 소리를 해댔다. 

"들어오는 입구도 뭣같이 높게 만들어 났다고" 

"텃밭도 없애버리고... 미친놈들"

"옛집이 좋았다고..."

어지간해서 어머니는 불편한 말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다. 

허긴 팔십 평생 집 주변에 손 노릇을 할 수 있는 농작물을 키우는 재미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 위에 콘크리트 칠을 해났으니, 어머니의 목맨 소리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겠다는 새집 짓기는 시골 정서와 맞지 않는 도시 주거형태의 느낌이라는 점에서 내심 본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저 윗집 영순네도 새 집 짓고 얼마 못 가서 영순 엄마도 죽었지, 너네 큰 집도 새집 지어놓고 6개월 만에 큰 형님이 죽었다"는 불길한 말을 자주 했었다.
 

옛집 위에 새집을 지은 모습 ⓒ석산 진성영


꼭! ‘새집을 지었다’ 해서 사람이 죽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정도로 어머니의 심기는 내내 불편해 하셨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