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건의 공람의견서 중 '일본서기' 지명을 전라도에 비정한 것을 비판한 것이 17건. 마한 관련 12건"
"기술 내용도 '왜 세력이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지키기 위해 관리를 파견했다'는 식으로 왜가 전라도 지배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고려 현종 이후 전라도 정명 1천년을 맞아 2018년 광주ㆍ전남ㆍ북도가 24억원을 들여 편찬한 '전라도천년사'(전 34권)가 친일식민사관이 짙게 배어 있다는 비판과 폐기여론이 거센 가운데 평소 한국고대사 분야에 깊은 연구를 해온 김상윤 선생이 최근 자신의 SNS에 연재한 '<전라도천년사> 무엇이 문제일까요?'를 본지에 18회 연속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전라도천년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157건의 공람의견서가 아직도 시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라도천년사>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시민들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그동안 제출된 157건의 공람의견서 가운데 51건을 가까스로 수집하였고, 필자는 수집된 51건의 공람의견서를 보고 이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51건의 공람의견서 가운데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전라도에 비정한 것을 비판한 것이 17건이나 되고, 마한에 관련된 비판 문건도 12건이나 됩니다.

마한에 관한 비판 문건은 주로 마한이 존속했던 '시기' 문제와 마한의 '중심지'에 대한 문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27년(서기 9년)에 마한이 멸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전라도천년사>에는 마한이 530년대까지 존속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은 백제를 약한 나라로 기술하여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존재했거나 왜 세력이 존재했다'는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한이 530년까지 존속했다는 문헌 기록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또한 마한의 중심지가 익산 지역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오히려 마한 치소가 있던 월지국이 중심지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지역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는 사항이어서, 마한 문제보다는 <일본서기>에 나온 지명 문제를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서기>는 720년에 기록되었지만 <삼국사기>는 1145년에 기록된 역사서입니다.

<일본서기>는 <삼국사기>보다 무려 400년 이상 앞서 기록된 책이지요.

그런데 <삼국사기>는 처음 출판된 이후 그대로 전해지고 있지만, <일본서기>는 후세에 계속 내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물론 일본학자들은 <삼국사기>가 여러번 개변되었다고 주장하나, 주장의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최재석 교수에 의하면, '8세기 초반에 편찬된 <일본서기>와 <고사기>는 헤이안(794-1180)시대와 가마쿠라(1180-1333)시대의 일본어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본서기>는 1600년대의 필사본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 내용을 찾다가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필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일본서기>는 17세기까지 고쳐썼다는 뜻이 되겠지요.

어찌 되었든 <일본서기>는 원본 그대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중간에 여러번 수정된 책이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서기>는 원래 기록이 여러번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그에 비해 <삼국사기>가 훨씬 신뢰할 수 있는 사서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쓰다 소키치는 '<일본서기>를 야마토왜 중심으로 고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으니, <일본서기>를 계속 고쳐썼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겠지요.

또한 스에마쓰 야스가즈는 '진실된 태도로 <일본서기>를 연구하면 뿔을 바로 세우려다가 소를 죽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데, 아무리 고쳐썼다고 해도 깊이 천착하면 진실된 역사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스즈키 다케주는 '<일본서기>는 감추려고 하는 것이 하나도 감추어지지 않았다'고 했다니, 일본인 스스로도 <일본서기>가 많은 사실을 감추었으니 사서로서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실토하고 있는 셈이지요.

최재석에 의하면,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 불신론을 만들어 <삼국사기>를 믿을 수 없는 사서로 격하시키고, <일본서기> 만을 가지고 고대 한일관계사를 서술해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합리화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주류 강단사학자들 역시 <삼국사기> 기록은 불신하고 <일본서기> 기록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는군요.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모두 한반도 남부에 비정했는데, <전라도천년사>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위치 비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지명은 <삼국사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전라도천년사> 집필자들은 우리 사서인 <삼국사기>는 무시하고, <일본서기>와 중국 '양직공도' 등을 자료로 하여 임의대로 전라도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입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만 한반도 남부에 비정한 것이 아니라, 실제 기술 내용도 '왜 세력이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지키기 위해 관리를 파견했다'는 식으로 왜가 이 지역을 지배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관리를 파견했다고 했지 왜의 식민지라고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나, '결국 관리를 파견하여 지배했다는 말'이라는 비판이 거셉니다.

이제부터 <전라도천년사> 집필자들의 주장처럼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이 정말 우리 땅에 있었던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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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천년사> 누리집: http://www.jeolladoh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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