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부다(1)
윤 아저씨를 생각하며
냉동상태 오징어 속은 알 수 없다.
말바우시장 근처 갓길 1톤 트럭에서
갈 길 바쁜 나를 붙잡고 사정사정 동정심 유발하며
이력 불분명한 냉동 오징어를 판다.
해동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초무침 갖은양념 준비하며 가족 저녁 짓는다.
끓는 물에 데치려고 몸이 풀린 오징어 배 가르고 내장 분리한다.
마지막 한 마리 오징어 배를 가른 순간 먹물이 튀었고
도시가스가 새나 수채통이 막혔나, 풀풀 구린 냄새 풍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오징어가 아니라 주꾸미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순간 윤 아저씨 얼굴이 주꾸미와 겹쳐 아른거린다.
교활한 주꾸미가 오징어에 숨어들어 감히 국민 식탁에 오르려 한 것이다.
주부들은 안다.
가족 밥상에 오를 반찬들의 속성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거센 파도 풍랑 헤치고 먼 길 거슬러 올라와
기꺼이 사람의 식탁에서 희망이 되는 오징어와
어부지리 둔갑술로 오징어에 끼어든 주꾸미를 구별할 줄 안다.
나는 문득 이런 표어가 생각난다.
‘자나 깨나 가짜 조심 너도나도 짝퉁 조심’
오징어 다리는 열 개, 주꾸미는 8개다.
** 박기복 영화감독(시인)은 전남 화순 출신으로 광주진흥고,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졸업. 1990년 전남대학교 오월문학상 시 부문 <애인아 외 1편> 우수작 당선, 1991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 <추억의 산 그림자> 당선.
현재 영화제작사 (주)무당벌레 필름 대표. 영화 <낙화잔향-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다>(2019) 작가/감독,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작가 겸 감독을 맡았다. 전자우편: kib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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