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모습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에서 전통복을 입고 있는 여인. ⓒ차노휘


부다페스트는 유난히 잿빛이다. 날씨 탓일까. 아니면 계절 탓일까. 화창하게 햇볕이 내리쬘 때가 없다. 우중충하거나 비가 온다. 거리의 사람들 옷차림도 어둡다.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메트로 안에서 나는 이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고흐의 초기작품으로 네덜란드 뉘넨의 한 농가의 저녁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석유램프가 걸려있는 어두운 방안에서 다섯 명의 황토빛 사람들이 감자를 먹고 있다. 가족의 사랑이 잘 배어 있는, 소박한 일상이 잘 드러나서 훗날 고흐의 걸작 중의 하나로 꼽혔다. 그런 소박함과 배려가 부다페스트 사람들에게서도 묻어났다.

숙소 직원들도 친절했다. 친절하다는 의미는 과장된 몸짓과 높은 톤의 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들어줄 줄도 기다릴 줄도 안다. 숙박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특별한 습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길거리 일반 시민들도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나와 같은 방을 3일 사용했던 한국인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들은 혹시 인종 차별을 당해보지 않았냐고 내게 묻는다. 나는 고개를 좀 갸웃하다가 말했다.

혹시, 동양인 여자라고 귀여워서 서양 아저씨들이 하는 행동을 오해한 것 아닐까? 라고 반문했다. 그녀들은 아니라고 했다.

신호등이 바뀌는 줄 알고 건너려다가 맞은편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당했다거나, 비엔나 시청 앞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야유를 퍼부었다는 등의 서운했던 에피소드를 말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는지 돌이켜봤지만 특별하게 화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어설픈 여행객으로서 언어 소통이 안 될 때 답답해하는 표정을 마주한 적은 있지만 심각하게 인격이 침해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들 나라 말을 속 시원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으니 소통의 오해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데에서 오는 약간의 불친절함 등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상쇄할 만큼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치명적인 것이 아닌 이상 주위 반응에 신경 쓰지 말자, 주위 시선에 너무 신경 쓰면 내 행동에 제약이 오잖아, 괜히 끌려 다니는 느낌이어서 눈치 봐지고, 당당하게, 당당하게 대하자, 무시할 것은 무시해버리고.

프라하에 있을 때 내게 위치를 물어보는 외국인이 더러 있었다. 나는 싱긋이 웃으며 나도 여행자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머물러서 거리가 익숙하니, 내 걸음이 당당했을 수도 있다. 그것으로 내가 이곳에 오래 산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환경이 바뀌고 혼자 여행하다보니 한국에서와 달라진 점은 있다.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던 감각 기관이 긴장한다. 길 찾기, 교통편 등이다.

매번 구글맵을 들여다보고 걸을 수는 없다. 거리나 위치, 지명을 외우려고 한다. 체코어와 헝가리어는 읽지도 못한다. 글자 모양 자체를 외워버린다. 생존인 것이다, 혼자서 뭐든지 해야 하는 여행지에서는.

길 잃었을 때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낯선 사람에게 낯선 언어로 물어야하고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잘 먹어야 한다.

부다페스트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지난여름 산티아고 길을 걸었을 때 헝가리 출신 David를 만난 것은 어느 스페인 조그마한 슈퍼마켓이었다. 남자치고는 이것저것 많이 골랐다.

특히나 과일을 꼭 샀다. 같은 숙소 주방에서 요리할 때도 능숙했다. 같이 걸었던 미국인 Max하고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맥스는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충 해결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입에도 맞지 않고 요리하기 귀찮으면 굶어버렸다. 다 걷고 났을 때 10kg이 빠져 있었다.

지금 나는, 숙소를 정하고 나면 그 근처 슈퍼를 꼭 찾아본다. 음식을 미리 준비해놔야 마음이 놓인다. 부다페스트 숙소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 곳도 슈퍼였다. 걸어서 2분 거리에 SPAR가 있었다.

들어선 순간 그곳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내 비교 기준은 몇 시간 전에 떠난 프라하였다. 미니슈퍼를 주로 갔고 바츨라프 광장에 제법 큰 슈퍼가 있었지만 이렇게 먹거리가 풍부하지는 않았다.

상품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식당과 비유하자면 음식 종류만 많지 막상 먹으려고 하면 젓가락이 가지 않는 곳이 있다. 

그와 반대로 본 메뉴도 맛있지만 사이드 메뉴도 손님 입맛에 맞는 것만 나오는 식당이 있다. 가짓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숙소 근처 식당은, 후자 편에 속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이것저것을 바구니에 골라 넣었다. 오래 머무르니 많이 사도 됐다. 한 바구니 사고 계산을 하니 6,000 포린트 조금 덜 나왔다.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조금 못 된 돈이다.

교통비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없지만 물건 값은 싼 편이었다. 숙소에서도 공짜로 제공하는 아침 식사에 미안할 정도로 정성을 다한 음식이 나왔다.

저녁에는 굴라쉬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아둔다. 먹고 싶은 사람은 가지고 가서 먹어도 된다. 휴게실에 주방과 Bar가 딸려있다.

오후가 되면 Bar에서 맥주를 주문해서 먹는 사람과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먹는 것에서 인심을 잃지 않는 이들의 식문화가 휴게실을 풍성하게 한다.

나는 여성 전용 룸을 신청했다. 그곳은 2층에 있었다. 여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작은 휴게실과 주방이 따로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비교적 조용하고 깔끔하다.

프라하 숙소 휴게실과 다른 분위기이지만 글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아래층 휴게실로 내려가면 된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떠들고 있으니깐.

숙소에 도착한 첫날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때 같으면 잘 시간이었지만 자정까지 글을 봤다. 이른 아침을 먹고 나자 나른해져서 그냥 자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온종일 자고 싶었지만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고 싶진 않았다.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입구. ⓒ차노휘


일어나서 가볍게 산책 삼아 걷기로 했다. 지도를 보면서 숙소와 가까운 성 이슈트반 대성당(St. Stephen Basilica)을 거쳐 부다페스트 중앙시장(Great Market Hall)을 최종 목적지로 삼았다. 헝가리 전통시장을 보고 싶었다. 서울에 있는 광장시장처럼 시장만의 매력이 분명 있을 거였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 다다르자 칙칙한 길거리가 벽돌 색부터 화려해진 거리로 바뀌었다. 낮에도 예쁘게 모양낸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헝가리의 초대 국왕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인인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1851~1906년 사이에 세운 성당이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제일 크다. 성 이슈트반 성당 앞에도 어김없이 먹거리 부스가 있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무료라고 알고 있던 성당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줄을 섰다가 다시 나왔다. 오늘은 가벼운 스케치만 하고 싶었다.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중앙시장으로 향하는 거리는 상점들과 식당들이 주를 이룬다. 물건도 제법 고급스럽고 손님들도 많다. 번화가가 아닌 곳에는 노숙자들이 맨 시멘트 바닥에 이불만 돌돌 말고 자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다. 프라하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구걸하지 않았다. 난민들은 아니었다. 몸집이 크고 나이든 백인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나라의 노인 복지 문제가 심각한 듯했다.

나는 고급스런 거리를 십 분 더 걸어서 중앙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는 흡사 교회 정문처럼 붉은 벽돌 첨탑에 아치형 창문이 있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지붕이 화려하다. 저곳이 설마 시장일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은 19세기에 지어졌다. 1867년, 헝가리가 자치권을 획득한 후부터, 부다페스트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증가한 인구를 감당할 시장이 필요했다.

부다페스트는 건축가 사무 페트에게 새로운 시장 설계를 의뢰했다. 네오고딕 양식에 기차역을 모티브로 해서 입구가 독특하다. 교회 정문과 같다고 상상했는데 기차역을 모티브로 했단다.

그리고 네오고딕은 19세기 이후 고딕풍의 건축양식이 다시 부활되어 유행한 것을 말한다. 건축술이 발달하여 아치나 볼트를 결합한 첨탑과 벽면의 개방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주로 넣는다.

중앙시장은 전쟁 중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재건한 후, 90년대에 또 한 번의 보수 공사를 거쳐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5대 시장에 속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와 영국의 다이애나 왕비가 방문했을 정도다. 1890년 청과 시장으로 시작하여 1994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시장 앞에는 제법 넓은 도로가 있었고 트램과 버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자유의 다리가 인접한 곳이기도 했다. 부다에서도 인접한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내부. ⓒ차노휘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기념품 가게. ⓒ차노휘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채소 가게. ⓒ차노휘


부다페스트는 도나우(Donau) 강 서쪽의 부다(Buda)와 ‘옛 부다’인 오부다(Obuda), 동쪽의 페스트(pest) 지역이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이다. 흔히, 부다와 페스트로 이루어진 도시라 하고 그 경계에 도나우 강이 흐른다.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유명한 다리가 세 군데에 있다. 그 중 하나가 자유의 다리이고 자유의 다리는 중앙시장 바로 옆에 있다. 내가 묵는 숙소는 페스트 지역에 있다.

나는 사람들 물결에 휩쓸려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와 같은 입구 문을 통과하면 큰 공간이 나온다. 바로 시장이다.

지하에는 대형 슈퍼마켓이 있고, 0층(우리나라 1층)에는 과일, 채소, 향신료, 소시지, 육류 등을 판매한다. 1층(우리나라 2층)에는 헝가리 자수와 레이스, 목각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다양한 음식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먹거리 코너가 있다.

답답하게 막힌 공간이 아니라 벽을 기준으로 개방된 공간이다. 일반 상점보다 가격도 저렴하다고 하는데 나는 가는 곳마다 기념품을 사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곳에서 굴라쉬를 맛보고 싶었다.

헝가리는 목축업과 농업 국가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농수산물 코너가 유난히 풍성하게 보였다. 그 중에서 여러 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가지각색의 색깔로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파프리카가 많았다.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았다. 관광객도 많지만 현지인도 많았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여러 식품을 보며 2층 계단으로 향했다. 2층 한쪽 구석에 음식 코너가 있었다. 역시나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먹는 것에 제일 관심이 많은 듯 했다.

거의 사람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는 통로에 왔을 때 알았다. 그곳이 굴라쉬를 파는 곳이라는 것을.

바깥에 내놓은 식탁이 꽉 차서 사람들은 서서 먹고 있었다. 나도 저곳에서 줄을 서서 굴라쉬를 맛볼까 하다가 그 번잡함이 싫었다. 관광지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싶었다.

먹거리 통로를 등지고 2층 기념품 가게 쪽으로 향했다. 시장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든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파는 것도 사람들의 선호도.

이곳이 저곳이고 저곳이 이곳인 듯. 여행지에서 22일이 지나고 있었고 내일은 연말이었다. 한국에서 수 천리를 떠나 왔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 있었다. 혼자이기를 자청했지만 그만큼 고독이라는 무게를 짊어져야할 무게감. 그 무게감이 갈수록 중량감을 더했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 농수산물 코너를 다시 둘러보았다. 내일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이 떠난다고 했다. 문득, 소박한 밥상이라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박한 밥상이라도 함께 한다는 것은 ‘정’을 나눈다는 것이다. 갑자기 한국에서 두부와 멸치 넣고 끓일 김치찌개가 그리워졌다. 손으로 직접 만든 두부를 사겠지? 콩나물도 좀 넣으면 시원하겠지?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문득 그녀들 이름이 궁금해졌다. 아직 이름도 묻지 않았다. 또 어디선가 만나면 그때 물어볼까. 시간과 세월 속에 결국 사람이 있으니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으니깐 말이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 ⓒ차노휘
성 이슈트반 대성당 앞 먹거리 부스. ⓒ차노휘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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