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일수록 짐은 가볍게!

밤하늘을 나는 RyanAir. ⓒ차노휘


여행을 할 때 나는 현장에서 집중하는 편이다. 다른 말로는 ‘벼락치기’ 정도로 해석해야 할까. 3~4개월 전에 미리 다음 여행지 항공권을 예매한다. 

하지만 세부 계획은 현장에서 세운다. 몇 달 전부터 맛집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사람에게는 큰일 날 소리다. 늘 남는 것 없이 바쁜 게 일상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보면 여행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심지어는 확실한 비행기 출발 날짜도 깜박하기도 한다.

나는 체코에서 부다페스트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으로 저가항공인 RyanAir를 택했다. RyanAir는 유럽에서 선두 저가 항공사이지만 싼 만큼 미리 챙기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까다로운 조항들이 많다. 방심했다가는 저가 항공이 바가지 항공이 될 수도 있다.

까다로움 첫째가 가방 규제이다. 백팩과 10kg 이하 캐리어는 그냥 통과다. 하지만 무게가 더 나갈 때는 추가 중량에 따라 30~70유로 돈을 내야 한다. 이 돈을 덜 내려고 젊은 이태리 친구들이 저가 항공 카운터 근처에서(그곳에서 무게를 재기 때문에) 캐리어를 열고 짐 정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오늘 내가 깜빡할 뻔한 것은 탑승 7일 전부터 출발 2시간 전까지 하는 온라인 체크인이다. 국적부터 여권만기, 좌석 번호까지 항공사가 시키는 대로 미리 입력해야 한다. 

영국 국적이라 당연히 영어로 읽고 입력해야 한다. 50유로를 더 내고 싶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체크인이 다 끝나면 보딩 패스 용지를 프린트해야 한다. 이것도 깜박할 경우 15유로를 낸다. 

그렇다고 바로 수속 밟으러 가면 안 된다. 출발 2시간 전부터 RyanAir 카운터에서 티켓 체크 도장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무사히 기내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캐리어를 두 개 가지고 왔고 하나는 프라하 숙소에 맡겼다. 저가 항공을 탈 것을 알고 미리 계산한 결과이다. 하지만 복병은 언제나 있기 마련. 지금부터 그 복병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라이언에어 탑승수속 카운터에서 직원이 말하는 대로 가방 무게를 쟀다. 8.7kg이라고 표시됐다. 가방 규격도 그쪽 항공사에서 제시한 규격에 맞으니 기내로 들고 가면 된다. 

직원은 티켓 체크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안수속을 통과하고 D3 탑승구에 왔을 때 알았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5시 50분. 기내로 들어가는 시간이 5시 20분. 5시 5분부터 나는 탑승구 좌석에 앉아 있었다. 탑승구 카운터에 정장 차림 남자 직원 두 명이 서 있었다. 둘 다 한쪽 귀에 무선기를 끼우고 있었다. 

갑자기 이들이 돌아다니면서 캐리어를 재보자고 했다. 맞은편 중국인 남자가 캐리어를 끌고 가더니 카운터 앞에 있는, 가방 규격 체크 기구에 넣었다. 중국인 남자는 통과했다. 나는 카운터에서 이미 검사를 받아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직원이 내게도 와서 부다페스트로 가냐고 묻더니 내 가방도 저곳에 넣어보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미 탑승수속 카운터에서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캐리어를 집어넣으란다. 

나는 당당하게 그곳에 넣었다. 내가 빼려고 하자 남자가 이것 보라면서 트집을 잡았다. 내 가방은 소프트 케이스다. 트레킹화와 옷을 집어넣어서 볼록하게 1cm 나왔다. 그것을 두고는 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우기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왜 그러냐고 이미 통과된 것이라고 항의 했다. 잠깐 기다리시라며 다른 승객들 것을 또 잰다. 그리고는 다시 와서 재보자고 한다. 나는 그를 보며(그는 동양인이다) 나는 당신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캐리어 짐을 내 백팩에 옮기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백팩으로 짐 일부를 옮겼다. 내가 전에 봤던 이태리 친구들이 했던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무사통과했다.

기내에 들어가는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줄을 섰다. 좁은 D3 탑승구 휴게실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왕 서 있어야 될 판. 나도 줄을 섰다. 직원들의 본격적인 업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사냥하는 하이에나처럼 동양인 직원은 승객들 캐리어를 일일이 재보자며 들쑤시기 시작했다. 피부 색깔과 국적, 나이와도 상관없었다. 여러 사람이 카운터에서 추가 요금을 냈다. 승객들은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는 듯했다. 탑승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내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중국인 가족이었다. 언니네 부부, 처제, 조카와 여행을 온 것처럼 보였다. 연신 내 뒤에서 특유의 큰 목소리로 깔깔 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이었다. 그 직원은 중국인 가족도 지나치지 않았다.

가방 크기를 재보잔다. 언니인 듯한 여자가 아이에게 가서 재보고 오라며 가방을 일부러 딸랑딸랑 흔들어 보이며 건넸다. 그 몸짓은 안에 들어있는 것이 없으니 재보나마나라는 뜻이었다. 여섯 살 정도 보이는 아이에게 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다.

중국인 가족 캐리어는 하드 케이스였는데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이었다. 재고 오던 아이 뒤를 따라오는 직원. 추가요금을 더 내란다. 언니인 듯한 여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직원을 봤다. 

그때 탑승이 시작됐다. 줄이 서서히 이동했고 나는 카운터 바로 근처까지 왔다. 티켓 바코드를 찍어야할 순서였다. 그때였다. 언니인 듯한 여자가 카운터까지 와서 가방을 열어 젖히면서 화를 낸 것이. 

가방은 활짝 열렸고 그 안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초콜릿 몇 개와 토끼 인형과 초콜릿을 주면서 줬을 법한 종이 가방 하나가 들어있었다. 중국말은 모르지만 종이 가방 안에 초콜릿과 인형을 넣고 캐리어를 버리겠다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인 여자는 몸집이 크고 얼굴이 동그랗고 넓었다. 넓적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나는 바코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갔고 승객들이 내 뒤를 따랐다. 어느 나라 출신이라고 할 것 없이 모두들 웃고 있었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크게 웃을 수 없었다. 

그 동양인 남자 직원 표정을 봤어야 했다. 우물쭈물하며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얼굴 근육이 부풀었다가 수축되었다가 하는 그 표정을. 나는 속이 아주 시원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이었지만 차마 용기가 없었다. 

그 가족은 탑승이 가능할까. 정말 캐리어를 버렸을까. 아니면 그 직원이 눈 감아줬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어 뒤를 돌아봤지만 그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기내로 들어가는 통로는 두 갈래였다. 온라인 체크인을 하면 비용을 더 내게 하는 옵션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것도 포함되고 좋은 자리 선택하는 것도 돈을 더 내야 한다. 

나는 배낭족이었고 한 시간 십분 비행 정도면 좌석이 불편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좌석 번호가 아무래도 괜찮다고 체크했다. 무사히 부다페스트에 내려주기만 하면 되었다.

옵션이 하나도 없는 내 승차권을 보던 직원이 앞선 사람이 들어가는 통로가 아닌 다른 쪽을 가리켰다. 바로 기내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계단이었다. 계단을 내려가서 땅을 밟고 뒤쪽으로 탑승했다. 

꼬리 부분에 좌석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 좌석은 비행기 중간 즈음이다.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 괘씸죄에 걸린 결과이다.

앞부분으로 들어온 사람과 마주치면서 내 좌석에 앉았다. 그 중국인 가족도 뒤쪽에서 들어왔다. 그들은 나하고 같은 줄 D, E, F에 앉았다. 아이 손에 인형이, 화를 냈던 여자 손에는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옆에 여동생인 듯한 여자가 앉았다. 나는 멋져요, 힘내세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부다페스트 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차노휘


부다페스트 관문인 RyanAir는 혹독했다. 저가항공은 짐 추가 요금과 기내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 상당 부분 이득을 취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승객들이 잠을 자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거의 십 분마다 방송을 하면서 통로로 상품 광고지를 들고 혹은 상품을 들고 움직였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날은 아무도 커피 한잔 사서 마시지 않았다. 가방 규격 재는 직원들은 수당 좀 받았겠지 싶지만 그 일 때문인지 기내 직원들도 다 도둑처럼 보였다.

7시 20분 정도 도착한 부다페스트 페렌츠 리스트 공항. 실은 걱정을 했다. RyanAir 항공기처럼 혹독할까봐. 하지만 공항에서 금세 풀어졌다. 일회용 승차권 10매를 3,000포린트 주고 산 뒤 공항 셔틀 100E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 있는 현지인처럼 보이는 아저씨한테 정류장을 물었다. 

아저씨는 안경을 꺼내서 내 스마트폰을 보더니 나를 데리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 서 있던 정복 차림 직원에게 현지어로 물었다. 내게 100E 정거장을 가리켰다. 내가 머뭇거리자 안 되겠냐 싶은지 손수 앞서 가면서 나를 그곳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다.

마침 출발하려던 차가 있었다. 공항 셔틀은 승차권을 따로 구입해야한다. 자판기 앞에 서려니 골치가 아팠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900포린트 승차권 두 장을 내준다. 당연히 현금으로 구입했다.

그래서 나는 공항 셔틀버스를 45분 타고 내려서 Metro M1에서 세 정거장을 5분 달렸다. 지상으로 올라온 다음 7분 걸어서 숙소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RyanAir의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한 이곳에서의 생활이 말이다. 저가항공사의 얄팍하고 수준 낮은 꼼수에 항의하고 대응하는 중국인 여성, 용인할 것은 하되 당당하게 꾸짖을 것은 꾸짖고 지적해야 하는 것이 승객들의 몫일 수도 있다. 

그래야 그들의 태도나 영업방식이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다. 소극적이지만 문제의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까다롭게 굴지만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유는 추가 요금을 내고도 싸니깐 그러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노선 운항이 그 항공사뿐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철저하게 저가 항공의 장점만을 잘 활용하는 것이 복수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장점만 취하고 이득을 보지 못하게 한다? 정말 쌀 때는 말도 안 되게 싼 표가 나오니깐 말이다.

노골적인 장사 영업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게 질책한다. 짐 좀 줄이라고, 모름지기 프로들은 짐이 가볍다고, 좀 더 내공을 키우라고.
 

비오는 부다페스트 길거리 풍경. ⓒ차노휘
공중전화박스가 있는 부다페스트 거리 풍경. ⓒ차노휘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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