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나기 위한 의식

화약탑 근처에서 만난 개동아리 사람들. ⓒ차노휘


떠난다는 것은 사소한 길들여짐과의 작별이다. 길들여짐은 너(나)가 나(너)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존재를 인정한다는 다른 말이다. 길들여짐과의 이별은 그래서 슬프다. 나를 존재케 하는 존재자를 잃는 것이니깐.

내가 묵었던 숙소는 천장이 높은 오래된 건물이다. 인테리어만 다시 해서 숙소로 사용한다. 제일 먼저 방 배정과 함께 열쇠 뭉치를 받았다. 열쇠는 네 개였다. 첫 번째 열쇠는 길과 건물 사이에 난 현관이다.

열쇠 구멍에 넣고 왼쪽으로 반 바퀴 돌리면 된다. 주의할 것은 위가 아니라 아래쪽으로 짧게 돌려야 한다. 나는 일주일 동안 관성적으로 오른쪽으로 돌렸다. 오랜 습관 때문이었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 통로를 걸어 건물 내 작은 정원으로 걸어간다. 정원 한쪽 구석에 있는 2층 계단으로 올라간다. 이제 두 번째 열쇠를 사용한다. 2층 복도에서 숙소로 들어가는 문.

이때도 열쇠를 넣고 왼쪽으로 돌린다. 아래층과 달리 아래쪽이 아니라 위쪽으로. 첫 번째 문이 열쇠를 열고 밀었다면 복도 문은 당겨야 한다. 드디어 실내 진입 성공이다.

좁은 복도가 나오고 오른쪽은 리셉션, 왼쪽은 화장실이다. 양 갈래에 복도가 있다. 왼쪽은 주방과 휴게실, 다른 침실 등이 있다. 나는 오른쪽으로 가서 마지막 열쇠를 사용한다. 그것은 길쭉한 금색 구리 엔틱 열쇠이다.

조심스럽게 구멍에 넣고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린다. 지금도 성질 급한 나는 재빨리 돌리다가 실패하곤 하지만 처음보다는 빈도가 줄었다.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졌다. 

어제는 아주 깔끔하게 세 관문을 통과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이다. 네 번째 열쇠는 사물함 열쇠이다.

아침 일찍 짐을 꾸리고 체크아웃을 하고 나섰다. 한국에서 올 때 백팩과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왔다. 한곳에서 오래 머무르니 짐이 있어도 별 상관없을 것 같아서 캐리어 하나에는 음식을 싸왔다. 실은 큰 캐리어는 버려도 무방할 정도로 낡았다.

다시 올 거니깐 큰 캐리어는 숙소에 맡기고 작은 캐리어와 백팩을 메고 나섰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항공기는 RyanAir이다. 유럽 저가항공의 선두주자인데 여간 짐 체크하는 데에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짐을 하나 덜어서 가자고 여행 시작 전에 계획을 세웠다.

숙소 뒤편 산책로를 따라서 캐리어를 끌고 갔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이 길을 걸으면 운동하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달리는 사람들.

하지만 더 많은 것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다. 작은 개들이 아니다. 이곳은 대형견을 선호하는 듯하다. 송아지만한 개도 시내에서 종종 본다. 다들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체코의 개 복지는 수준급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영향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칩을 이식한다. 유기견이 있을 수 없다. 샵에서 강아지를 팔지도 않는다. 애견샵 자체가 없다.

강아지를 분양할 때 키울 수 있는 환경인지 그렇지 않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거주지까지 확인한다. 강아지가 성견이 되는 6개월, 훈련을 위해 학교에 보낸다. 그곳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훈련을 받는다.

대중교통을 탈 때에도 차비를 낸다. 엄연히 세금을 내는 동물이다. 카페에도 자연스럽게 드나든다. 카페에는 개에게 줄 간식거리가 늘 준비되어 있다. 주인이 요구하면 공짜로 갖다 준다.

이런 복지 정책 때문인지 모든 개들이 건강하고 밝다. 이들이 동물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상당하다. 리디체를 갔을 때 십자가가 보이는 언덕까지 올라가 숲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곳에 야생동물을 위해서 음식을 놔둔 조그마한 움막 같은 것을 발견했다. 눈, 비가 왔을 때 음식이 젖지 말라고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쪽에는 물통과 건초를 걸어놓은 건초 걸이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러한 섬세한 손길.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의 수난과 비교되었다.

‘개엄마’라고 자청하는 나는 개들을 산책시키는 이들을 보면 어떤 동질감을 느낀다.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절로 입가에 미소를 띤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중에는 산책 시키는 동네분들 몇 분과 마주친다.
 

네루도바 거리에서 공중부양 하는 사람들. ⓒ차노휘


일단 Cafedu에 간다. 그곳 사물함에 캐리어를 두고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 화약탑과 카렐교를 건너 네루도바 거리를 올라 프라하성(Prague Castle)으로 가려한다. 실은 그곳을 이곳에 온 첫날에 갔다. 이곳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럴까. 내 글에서는 자꾸 뒤로 밀린다.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굳이 내가 다룰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프라하성과 인접한 곳에 있는 성 비트 대성당. 성 뒤쪽에 있는, 지금으로 치면 다닥다닥 주택이 붙어 있는 달동네라 할 수 있는 곳에 카프카가 살았다던 22번 건물 등.

본체 두 개가 연결된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까지 간 적이 있다. 트램에서 내릴 때 운동 꽤나 했을 법한 남자 두 명이 외국인 여자 두 명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소매치기를 시도하려다가 잡힌 여성이었다. 그녀들의 정확한 출신은 모른다.

이 남성들이 액션캠코더를 작동시키고 있는 것을 나는 봤다. 단순히 여행 과정을 찍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사복경찰이었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여자 두 명은 여행객이 메고 있던 백팩 지퍼를 열려고 했다. 트램 안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한 명이 백팩을 맨 여행객의 뒤편에 서고 한 명은 그 앞에 선다. 그녀들보다 키 작은 사람을 택한다. 여행객은 이 두 여자에 포위된 상태지만 인지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많아 다들 그런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때 뒤에 있던 여자가 지퍼를 열고 앞에 있던 여자가 망을 본다. 그녀들은 현장에서 걸렸다. 사복 경찰은 피해자에게 더 많은 피해가 없는지 묻는다. 경찰서에 와서 진술을 해달라면서 명함을 건네고 받는다.

소매치기는 현행범으로 잡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들이 되레 곤혹을 치른다. 대부분 집시들이나 이주민들이 소매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범으로 잡지 않는 한, 소수민족이어서 그러냐며 되레 그들이 인권 문제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이럴 경우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체포해야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 진술도 받아야 한다.

프라하 성으로 가는 트램 안에서 현행범을 체포하는 장면을 봤다. 그 외에는 대체적으로 거리가 깨끗하다. 난민이 이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프라하를 통과하지만 목적지는 서유럽이다.

그 깨끗하다는 파리 시내에서도 난민 노숙자들을 여럿 봤다. 스페인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전 대통령의 힘이 컸다고 한다. 범죄와의 전쟁(이런 정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과잉 공권력은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기 마련이다)을 선포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소매치기는 현장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았다. 다른 소매치기 본보기였다. 그 효과를 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객이 가장 많은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이기도 한 카렐교는 금싸라기 자리이다. 그 중 소원을 들어준다는 얀 네포무츠키 성인 성상 앞이 최고다. 1유로 동전 열 개만 받아도 만 삼천 원이 넘는다.

삼십분이나 한 시간 정도 고생하면 된다. 그래선지 구걸하는 자도 한 두어 시간 정도 작업(?)하고 일어선다. 오체투지 자세로 맥도날드 일회용 길쭉한 종이컵을 두 손으로 떠받치고 위로 치켜들고 있으면 된다. 누가 먼저 종이컵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그 종이컵에 같은 자세를 취한다.

구걸자들의 공통점은 옷이 깔끔하다. 비렁뱅이들이 아니다. 일반 직장인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투잡’을 뛰는 것이다. 물론 집시도 있다. 무릎 끓고 종이컵을 양손에 쥐고 내미는 사람 중에 예쁘장한 아가씨도 봤다.

아가씨 무릎 옆에 배낭이 놓여 있었다. 이런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여행객의 자율의사다. 주고 싶으면 주면 된다. 죄가 될 것은 없다.

이들 중 내가 불쾌하게 생각한 것은 개를 데리고 구걸하는 사람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십분 이용한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집시일 확률이 많다고 한다. 이들의 행동 또한 비슷하다. 한 마리 혹은 두 마리를 대동한다.

대형견을 눕히거나 앉혀 놓는다. 자신은 옷을 얇게 입어도 개 등에는 그들의 외투를 이불처럼 덮어 준다. 그리고 그 앞에 컵 하나를 둔다. 구걸을 다 끝내고 일어날 때는 개 등에 있던 외투를 챙겨 입는다.

나는 카렐교를 갈 때마다 그들을 관찰했다. 더 괘씸한 경우도 있다. 비둘기를 이용한 돈 벌이이다. 구도심지에서 카렐교를 가다보면 다리 진입 전, 오른쪽에 바츨라프 동상이 있다.

동상 앞에 비둘기 서너 마리를 데리고 있는 흑인남자가 있다. 그 비둘기는 화려하다. 하얀색 비둘기를 선별한 다음 깃털 부분을 염색 했다. 꽁지털은 공작새처럼 부채 모양으로 펴지게 했다. 신기하게도 그 비둘기들은 남자 등 뒤에서만 움직인다.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1미터 반경으로 날았다가 다시 낮은 담장으로 올라선다. 그 비둘기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는 여행객에게 돈을 받는다. 처음에는 비둘기가 특이하게 생겼네? 라는 호기심에 봤지만 이내 불쾌해졌다.

개체수가 많은 비둘기라지만 엄연한 동물 학대이다. 염색을 하고 날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니 신체에 해를 끼친 것이 아닌가.

어느 날 오후였다. 카렐교를 갔다. 바츨라프 동상 쪽에 비둘기를 데리고 온 흑인 남자를 지나쳤다. 그는 항상 흰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주말이라 여행객이 많았다. 재즈를 들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날따라 개를 동원한 구걸자가 많았다.

그 중, 개 오른쪽 앞다리에 붕대가 감겨 있는 개를 발견했다. 붕대 감은 개 등에 점퍼가 덮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구걸통에 더 많은 동전을 던져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걸을 끝내고 일어나는 그를 봤다. 개도 일어났다.

개는 오른쪽 앞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걸었다. 진짜 아프구나, 했다가 구걸을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 아니야? 라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들을 뒤따라가면서 본 결과, 다친 것처럼 흉내 내는 훈련을 받은 거였다.

더 어이가 없었다. 그 개는 저렇게 절룩거려야 밥이라도 얻어먹게 훈련받았으니 평생 절름발이가 아니면서도 절름발이로 살아야할 운명이었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절름발이 개 주인과 개를 따라 카렐교를 지나 바츨라프 동상에 이르렀다. 공작 비둘기 흰 점퍼 흑인 남자가 헤이, 하며 절름발이 개 주인과 아는 체를 했다. 동료였다.

카렐교에서 구걸하는 직업을 가진 동료. 이들도 각자의 영역이 있을 것이고 텃세를 부릴 것이다. 그런 반면 동료의식도 싹 틀 것이다.

이런 구걸자에 비하면 길거리 연주자나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은 수준 높은(?) 예술가이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구걸자들도 나름 규칙이 있는 것 같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하루 종일 카렐교에서 앉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 두어 시간 정도나 될까. 어느 정도 양이 차면 일어났다. 그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세금을 내지 않지만은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

여행객 중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적선을 베풀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또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프라하 성에서 본 프라하. ⓒ차노휘
프라하 성 입구. ⓒ차노휘
프라하 성에서 바라본 야경. ⓒ차노휘


카렐교를 지나 네루도바 거리를 올라가면 프라하 성이 나온다. 언덕에 있는 프라하 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는 아름답다. 프라하 성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나를 잡아끄는 것은 구왕궁이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져서 16세기까지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그 위에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계속 증축되면서 여러 가지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 되었다. 합스부르크 통치 기간에는 정부 청사와 법정, 보헤미아 의회가 있었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구왕궁 내부는 하얀 회칠이 된 실내체육관과 비슷한 구조다. 천장은 둥그런 아치형이고 양쪽에 길쭉한 창문이 여러 개 나 있다. 이곳이 블라디슬라브 홀이다. 높이 13m, 폭 16m, 길이 62m에 달하는 크기로 중세 시대 유럽에 있는 성 중에서 가장 큰 홀이었다.

대관식 무도회와 각종 연회가 열렸고 기마상까지 들어와 경기를 했다. 성에서 벌어지는 모든 축제와 행사 대부분을 이곳에서 진행했다.

1618년 5월 23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흑사병보다 더 무서운 종교 전쟁 서막을 열었던 ‘창문 투척 사건’이다. 그 당시 신교와 구교 간의 갈등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독실한 가톨릭 황제였던 페르디난드 황제가 보헤미아 왕위에 등극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개신교 귀족들이 왕궁으로 쳐들어간다. 페르디난드가 임명했던 보헤미아 귀족들을 창문 밖으로 내던진다.

다행히 귀족들은 15m 아래로 떨어졌지만 건초 더미가 있어 살아난다. 가톨릭에서는 귀족들이 천사들의 도움으로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후 개신교를 향한 보복이 시작된다.

1618~1648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길고 잔인했던 30년 종교 전쟁이 일어난다. 4차례에 걸쳐 큰 전쟁을 치르게 되면서 전쟁의 주 무대가 되었던 신성로마제국 인구가 1,600만에서 600만으로 준다.

면벌부(免罰符)까지 팔았던 로마교황청의 타락과 부패. 이에 맞선 루터의 종교개혁. 이렇게 해서 탄생한 신교. 그전부터 전쟁을 하고 싶었던 국가와 왕가들. 

전쟁은 하면 할수록 순수 종교 이념에서 벗어나 신교국가와 구교국가, 왕가와 왕가, 국가와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을 하면서 전 유럽이 전쟁에 가담한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큰 피해자는 평민들이다. 그때 희생된 사람들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다.

귀족들을 투척했던 창문을 일별하면 기사들이 말을 타고 들어왔던 통로, 의회당, 예배당 등을 볼 수 있다. 그런 뒤 보헤미아 대법관 방으로 들어간다. 재판하는 과정을 상상할 수 있도록 좌석 배치 등이 완벽하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초상화다. 그 당시 지배국이었던 합스부르크가의 왕들 얼굴이 아직도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본 천황들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꼴이다. 이들은 이런 것에 담담하다. 그것조차 역사로 받아들인다. 직시하는 역사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고 이곳을 떠난다. 떠남은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니, 서운할 것은 없다. Cafedu 건물로 들어선다. 카드에 내장된 센서 기능은 내일까지 유효하다. 내일 이곳에 없지만 내 흔적이 남아 있는 듯 해서 좋다.

사물함을 연다. 사물함은 5코룬을 넣어야한다. 캐리어를 그곳에 집어넣고 백팩은 다시 메고 늘 앉았던 바츨라프 광장 쪽이 보이는 곳에 앉는다. 이제 이별 연습을 하러 곳곳을 다시 밟아야한다. 다음에 반갑게 또 만나기 위한 의식과 같은.
 

존 레논의 자유의 벽. ⓒ차노휘
카렐교 야경. ⓒ차노휘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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