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일본 쓰나미 동북부 현장 답사기
[기획] 일본 쓰나미 동북부 현장 답사기
  • 김강렬 시민생활환경회의 상임이사
  • 승인 2011.06.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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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부 스나미 대참사... 현지 주민 정부 성토 이어져
일부 피난소 구호물품 부족... 정부. 학교 대책 없어 발 동동

대지진 참사가 일본 동북지방을 휩쓸고 지나간지 100일.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던 일본 돕기 온정은 주춤해지고 언론에서도 피해 지역 소식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9일 현재, 행불자는 8천여명이며 피해지역 정리는 40%정도 완료됐다고 공식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10~14일 4박5일 일정으로 돌아본 센다이 피해 지역은 그 동안 언론에서 접해오던 사실과 매우 달랐다.

▲ ⓒ김강렬

피해 현장은 바로 엊그제 지진이 지나간 마냥 방치돼 있었고 피해 복구 인력도 매우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자원봉사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는 10월 광주시가 주최하는 ‘2011 도시환경협약 광주정상회의’에 맞춰 열리는 ‘2011 ASIA생활환경회의’의 일본 측의 참여를 권유하기 위해 ‘2011 ASIA생활환경회의 일본총회(6월 11일~12일)’가 열리는 야마가타시를 방문하면서 일정을 늘려 대참사의 현장을 찾아봤다.

무엇보다도 100여일이 지난 지금에 있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재난이기에 피해참사의 복구과정의 현장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현장을 찾게됐다.

▲ 이노우에씨(생활클럽생협 요네자와지부장). ⓒ김강렬

생활클럽생협 요네자와지부장인 이노우에씨는 일본정부의 위기대책 매뉴얼 부재에 대해 비판했다. 이노우에씨는 “지자체 피난소 운영도 엉망이고 정부에게 피해복구 예산도 강력히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이 정해지기 전에 피해복구 예산을 요청했다가 나중에 예산 배정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함께 만난 아야베 야마가타대학 공학부 교수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묵살하는 전문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야베 교수는 “경직된 전문가들이 학교 등에서 각종 강연회를 정부주관으로 개최하면서 100mm시버트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는 식으로 몰아세운다”고 말했다.

시찌가하마쵸에 거주하다가 지진 참사로 집을 잃은 피해자인 이따미씨는 “시찌가하마쵸에 거주하던 2만2천여명 중 80%가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지진 참사가 일어나던 날 오사카에 있었던 이따미씨는 “1주일에 한 번씩 실시했던 피난훈련이 큰 도움이 됐다”며 “단 1명 발생한 사망자도 피난 후 귀중품을 가지로 귀가하던 중 참변을 당했다”며 피난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시찌가하마쵸에 거주하던 이따미씨는 집을 잃었다. ⓒ김강렬

센다이시 최대의 생협인 아이코프 이사장인 요시다께씨는 “후쿠시마현 주민 1만명이 센다이시에 피난 와 있다”고 밝혔다.

요시다께 이사장은 이어 “쓰나미로 인해 센다이 논의 30%가 벼를 심을 수 없게 됐으며 복구에는 5년정도 거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농토, 농기가 없어진 농민을 위한 공동농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시다께 이사장은 “피난소에도 부자 피난소와 물품이 턱없이 부족한 피난소가 있다”며 “피난소에 있는 학생들은 도시락은 물론 버스비조차 없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한데 정부는 물론 학교에서조차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고 눈물을 훔쳐냈다.

▲ 피난소의 모습. ⓒ김강렬

이어 요시다께 이사장은 “정부의 정보, 시스템 모든 것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며 “성금으로 모인 돈이 2천억엔 정도 되는데 피해지에 전달된 성금은 1/4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GNP 1등 국가인 일본에서 점심을 먹지 못하고 버스비가 없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피해 성금은 피해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요시다께 이사장은 울분을 토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대안 재생에너지 기금 모금 중

요시다께 이사장은 “원전반대 대안으로 재생에너지 기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며 “아이코프 조합원 중 2천여명이 동경전력의 직원인데 그 조합원이 다 탈퇴하더라도 센다이 원전 철폐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원전반대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 지진 피해 100일이 넘었지만 여전히 피해지역의 모습은 참혹했다. ⓒ김강렬

요시다께 이사장은 “ASIA 생활환경회의에 꼭 참석해 센다이의 실상을 알리겠다”며 강운태 광주시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3월 필자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센다이시의 민간단체(요시다께 이사장을 포함)로부터 어린이(영․유아)들의 피난처를 광주시가 받아줄 수 있는지 요청을 받아 강운태시장과 면담을 한 바 있다. 당시 강 시장은 “센다이시가 요청한다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적극 받아들이겠다”고 동의했지만 센다이시가 “영․유아라고 할지라도 피난을 가게 되면 원전피해를 지자체가 인정하게 돼, 패닉상태에 이르므로 동의할 수 없다”고 해서 무산된 바 있다.

후쿠시마원전으로부터 30km이내에 위치한 인구 7만의 도시인 미나미소마시에서 종업원 30명과 함께 세탁업을 하는 다까하시씨는 한달 반 동안 옥내 대피명령을 받았다.

쓰나미나 원전의 직접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옥내 대피로 인한 영업손실에 대해 공무원에게 항의하면 “지진피해라서, 아직 그 예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 이다테촌(飯舘村) 청사 앞의 방사선 측정기가 작동하지 않은 채 멈춰있다. ⓒ김강렬

다까하시씨는 “미나미소마시의 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며 원전 폐지운동과 정부의 보상을 강력히 요구했다.

원전으로부터 28~48km 떨어진 인구 6천명의 작은 농촌마을 이이다테촌은 원전의 방사능바람 영향으로 강제소개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어린이 900명 정도가 피난을 갔을 뿐 피난가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이 마을은 방사능 바람으로 강제소개 명령을 받았지만 정부는 방사선 측정 기록에 대해 “없다”라고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지난 5월말부터 자체적으로 방사선 측정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또우씨는 “체내에 들어온 방사선은 100일정도면 대부분 빠져나가는데 기록이 없어서 걱정”이라며 “약 50년간 미나마따병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정부의 전례로 볼 때 이번 원전피해보상에 대해서도 기록이 없다면 인정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 20km이외 지역에서 대학생이라고 하는 한 여학생이 꽃밭을 만들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낫질도 서툴고 혼자라서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다. ⓒ김강렬

이 곳에 사는 젊은 농사꾼 사또우씨는 “지바현에 있는 정부기관인 ‘방사능 총합 의학연구소’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정부는 결과를 알려주지 않고 ‘괜찮다’고만 한다”며 “정부에 이이다테 지역 방사능측정데이터 공개요구와 내부피폭조사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어린이를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의 나까테 대표는 “지난 3월 원전 폭발이 있던 시기는 봄방학시기로 피난 간 사람들이 많았다”며 “피난가지 못한 이들은 불안에 휩싸여 피난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고 전했다.

3월 하순, 신학기를 앞두고 나까테 대표는 신학기를 연기를 후쿠시마현 교육위원회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까테 대표는 “아이들이 등교하면 피난 간 주민들이 다시 돌아올 것으로 예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까테 대표는 “교육위원회는 갑작스럽게 유치원을 포함하여 1천6백개 학교를 대상으로 지난 4월 5~7일간 방사능 조사를 실시했고 정부에 안전기준을 요청했다”며 “정부는 19일 안전기준을 20mm시버트로 정했다”고 말했다.

▲ 후쿠시마원전 20km이내 지역은 허가받은 사람과 차량이외는 접근을 불허하고 있다. ⓒ김강렬

"한 교사, 학생 방사능 예방 마스크 착용 주장하다 사표" 
 "20년 일본 교류 중 '이런 정부도 있는가' 자괴감 처음"  

나까테 대표는 이어 “정부는 안전기준에 대한 전문가 강연단을 구성했는데 전문가 중에서는 100mm시버트가 넘어도 안전하다는 등의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고 분노했다.

또 나까테 대표는 “한 학교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꼭 해야 한다고 지시를 하자 교육위원회가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주의를 줬고 교사는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교사의 사퇴 이후 학부모들이 움직이기 시작해 지난 5월 23일 학부모들은 버스 2대를 동원해 문부과학성에 대한 상경투쟁을 진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600여명의 시민들이 지원에 나섰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문과성은 그제서야 “기준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지방언론은 중앙의 신문과 방송 보도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난 5월 27일 문부과학성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연간 1mm시버트 이내로 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 김강렬 시민생활환경회의 상임이사.

 

▲ ⓒ김강렬

학부모들의 요구는 “깨끗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까테 대표는 “아이들의 미래를 망칠,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말도 되지 않는 원전 전문가들의 전성시대가 두렵다”고 우려했다.

지진 피해지역은 여전히 ‘넋이 나간 듯’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정부의 무능력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고 피해지역에 전달되지 않는 성금에 대해 분노하며 “현장으로 직접 가져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주민 이주를 강요하며 정부와 지자체는 ‘나몰라라’하는 상태였고 주민들의 걱정과 시름만 깊어져갔다. 주민들의 시름은 이제 정부를 향한 분노로 표출되고 있었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NGO, 행정기관과 많은 교류를 가져왔기에 이번 현장 답사 기간동안 “이런 나라도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적지 않았다.

피해현장에서 일본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지켜보며 4대강의 자료조차도 공개하지 않는 MB정부가 원전사태가 터지면 일본정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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