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음악회를 갔다.

항상 그랬듯이 공연장 의자에 상체를 기대어 프로그램을 보며 귀와 시선을 무대에 집중시키는 동작의 반복을 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본다고 하면서도 그날은 건성으로 봤던 것일까.

무대 왼편에 피아노 반주자, 첼로, 소프라노 성악가가 섰다.

정중앙의 무대를 약간 비워놓고 오른편에 바이올린, 플롯 연주자가 섰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연주자가 같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오른편 커튼이 있는 곳으로 몸을 잠시 숨긴다.

“뭐지? 왜 그러지? 왜 중앙무대를 비워놓고 한복을 입은 연주자는 커튼 뒤로 숨는거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도대체 어떤 곡을 연주하기에 그러는 것인지 그 순간 다시 재빠르게 프로그램의 순서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객석은 짙은 어둠에 깔려 있어 프로그램의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떤 곡이 연주되는지 첫 멜로디가 울리기만을 고대했다.

‘쑥대머리’였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선생님의 나지막한 “아! 이 노래 너무 슬퍼요. 이 노래 너무 좋아하는데‥·.” 라는 말은 ‘쑥대머리’를 아우르는 감상(感想)의 시작 순간이었다.

소프라노 성악가와 국악 보컬이 악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퓨전 앙상블의 ‘쑥대머리’였다.

소프라노가 왼편에서 무대 중앙으로 몸을 움직이며 구구절절 깊은 탄성으로 노래를 부르는가 싶더니 커튼 뒤에 숨어있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국악 보컬이 이어받아 판소리에 서양 발라드의 멜로디를 입힌 구슬픈 소리를 품어냈다.

둘은 이내 함께 각자의 발성으로 화음을 얹으며 깊고 깊은 ‘쑥대머리’의 한(恨)을 표현하니 듣는 이의 마음이 그대로 스며들었다. 이 퓨전 버전은 필자도 처음 듣는 경험이었다.
 

■‘쑥대머리’는 춘향이의 마음

‘쑥대머리’는 쑥처럼 어지럽게 헝클어진 머리를 뜻한다.

한국의 고소설 ‘춘향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노래이다.

‘춘향전’은 전라북도 남원의 기생인 춘향이와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엄격했던 사회계급을 뛰어넘어 순수한 사랑으로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춘향전’ 본론 내용 중, 이몽룡이 과거를 보기 위해 남원을 떠났을 때, 새로운 남원부사로 온 변학도가 춘향이를 보고 반하여 수청을 들라고 하지만 춘향이가 거절하자 그녀를 감옥에 갇둬버린다.

그 옥중에서 춘향이가 이몽룡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가 바로 ‘쑥대머리’로 ‘쑥대머리’는 옥중가이다.

옥중에서 씻지도 못하고 제대로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데다 머리는 며칠을 감지 못해 산발을 하고 있다.

영락없이 거지다. ‘쑥대머리’는 옥중의 거지꼴을 한 산발머리의 춘향이의 모습을 나타낸 뜻이다.
 

■판소리 ‘쑥대머리’와 국악 발라드 ‘쑥대머리’

판소리의 명창 임방울(1904~1961, 광주 광산구 송정읍 출생)선생이 부르는 ‘쑥대머리’는 국민이 내려준 ‘국창’의 위엄을 보여준다.

6·25때 선생이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 ‘쑥대머리’를 부르고 풀려났다고 하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요즘 국악 발라드로 자주 불리고 있는 ‘쑥대머리’는 색다른 이력의 소유자 오지총(1974~ 대전출생)이 편곡한 버전이다.

한의사이면서 작곡가, 밴드소속 연주자 겸 엔터테인먼트 화접몽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 ‘쑥대머리’의 감수성을 잘 살린 국악 발라드이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호소력의 풍미를 그대로 전달하는 감성을 살려 현대풍의 발라드로 편곡을 했다.

구슬프고 애달픈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소리’의 끝이 아마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자리여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손가락 피를 내어 사정으로 임을 찾아볼까

내가 만일 님 못 본 채 옥중고혼이 되거드면

무덤 앞에 섰난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요

무덤 근처 선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니

춘향이의 이몽룡에 대한 애달픈 처절한 그리움의 서사가 뼈마디에 맺혀 울리는 소리가 국악 발라드 ‘쑥대머리’이다.

양지은, 정소리, 이윤아, 박애리가 부른 ‘쑥대머리’를 들어보면 어찌 그리 가사 한구절 한구절이 소절 한마디 한마디가 구슬플 수 있는지를 가늠할 것이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7호(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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