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로 세상을 그리는 작가
오월미술관 초대전, 5일부터 8월 20일까지

오며 가며 펜화에 몰두하는 작가를 보았다.

그 자리가 어디든 앉은 곳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듯 펜화에 온 신경을 쏟았다.

병원에 누워서도 다른 작가들의 뒤풀이에서도 틀림없이 작은 화지(畫紙)와 펜이 손에 들려있었다.

그리고 완성된 펜화는 작가가 일하는 사무실의 벽에 붙여졌다.

보지 못한 지난 시간에 작가가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그렸는지 벽에 걸린 펜화가 자연스럽게 알게 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디자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작가가 언제 시간을 내서 펜화를 완성해 가는 건지 내심 궁금할 따름이었다.
 

■희망으로부터 시작된 펜화

서동환 작가(광주아트가이드 발행인). ⓒ광주아트가이드
서동환 작가(광주아트가이드 발행인). ⓒ광주아트가이드
서동환- 심상(心象) 35×50cm 종이에 펜화 2022.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서동환- 심상(心象) 35×50cm 종이에 펜화 2022.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펜화의 시작은 절망과 패배감에서였다.

지난 대선의 패배는 작가에게 절망 그 자체였다.

공황장애가 올만큼 절망은 컸고 모든 것에서 의욕을 잃을 만큼 수면 부족이 뒤따라 왔다.

작가는 “의욕저하에 무기력을 견디려 몸부림칠 때 만난 것이 펜화였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재료에 눈길이 갔고, 대학 졸업 후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며 “막상 펜을 들었을 때 그리는 방법과 형식을 찾아 동영상 시청을 부지런히 했던 기억이 새롭다.” 고 이야기했다.

이상호 선배의 『THE HOLY BIBLE』 선물도 자극이 되었다.

성경책이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이 성경은 펼친 면 중, 오른쪽 한 면이 성경의 내용을 이해가 쉽도록 정교한 펜화로 설명하며 보여주고 있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펜화의 정교함으로 모든 내용의 이해가 충분히 가능할 정도였다.

작가는 “성경책 속의 펜화를 들여다보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밖으로 화구를 들고 나가기 시작했고, 구동체육관 근처에서 펜화를 그리면서 대학 시절, 미술운동을 하면서 걸개그림 작업을 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맞다. 대학 시절의 미술운동이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動力)이었다.

대학에 입학해 선배의 권유로 조선대 미술 패인 ‘개땅쇠’로 왕성한 활동을 해냈다.

탈 패와 미술 패 등 전국적 연대를 위해 미술 패 회장뿐 아니라 문화예술연합회 회장까지 우리 모두의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해냈던 작가였다.
 

■나를 일어서게 하는

서번트증후군(Savant Syndrome)을 보는 것만 같다.

펜화의 정교함이 선천적 자폐아가 그리는 엄청난 기억력의 확신과 실행처럼 보인다.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증후군은 작가의 펜화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만 같다.

직접 보고 그리는 사생에서부터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이미지를 펜화로 그린다.

완성된 그림은 매우 정교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적당히 주변의 것들을 털어낸 펜화는 담백한 맛으로, 화지가 갖는 본래의 빛과 블랙 잉크의 조합은 묘한 안정감의 조형미를 가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에서 살면서 누구든지 언제,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풍경들을 담았다.

여행, 광산구 풍경, 오월, 소소한 일상과 멸종위기 동물 등이 그것이다.

서동환- 송정 5일장 17.5x50cm 종이에 펜, 수채 2023.
서동환- 송정 5일장 17.5x50cm 종이에 펜, 수채 2023.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서동환- 송정 작은미술관 앞집 23×31cm 종이에 펜, 수채 2023.
서동환- 송정 작은미술관 앞집 23×31cm 종이에 펜, 수채 2023. ⓒ광주아트가이드

여행에서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했던 장소와 기억을 담았고, 광산구 풍경에서는 도시 속에서 재발견되는 농촌의 이미지를 찾아 용아 박용철 생가와 동학군의 전투가 있었던 용진산, 송산유원지 등을, 오월에서는 국군통합병원을 비롯해 광주역, 들불야학의 옛터, 구도청에서 바라 본 전일빌딩 등을 그림으로 그렸다.

일상으로는 말 그대로 디자이너인 작가가 일하며 날마다 부대끼던 인쇄 골목의 풍경을 그렸다.

30년 가까이 인쇄 골목을 드나들던 애환과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남동 골목의 인쇄소 첫 자리가 고스란히 그림 속에서 재현되었다.

멸종위기 동물도 놓치지 않고 그림 안으로 불러들였다.

한센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던 애양원도 놓치지 않았다.

작가는 “눈길이 닿고 머무는 곳 어디나 그림의 소재와 재료가 되었다.

일상이 스케치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날들

서동환-5.18민주광장. ⓒ광주아트가이드
서동환-전일빌딩245에서 바라본 5.18민주광장. ⓒ광주아트가이드
서동환- 무유등등 21×30cm 종이에 펜 2023.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서동환- 무유등등 21×30cm 종이에 펜 2023.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그동안 작가가 하는 일 중 가장 큰 일은 광주아트가이드를 제작 배포하는 것이다.

2009년 창간 준비호 11월호의 발간을 시작으로 매월 <광주아트가이드>를 제작한다.

<광주아트가이드>는 서울과 대전을 이어 광주에서 세 번째로 창간되었고, 14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일을 해왔다.

작가는 “대학 시절의 미술운동, 다시 말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에서 얻은 스스로에 대한 결론이었다.”고 대답한다.

무엇을 하며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적인 깊은 사유가 없이는 불가능한 문제다.

개인적 안위와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실천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작가의 속 깊은 고뇌의 깊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생은 내일을 알 수 없어서 경이롭고 신비스럽다.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펜화를 지속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생에 기대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서동환-광주 동구 인쇄소 골목 대건특수인쇄. ⓒ광주아트가이드
서동환-광주 동구 남동 인쇄소 골목. ⓒ광주아트가이드
서동환- 광주구동체육관 옛터 57×76cm 종이에 펜화 2022.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서동환- 광주구동체육관 옛터 57×76cm 종이에 펜화 2022.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서동환- 정읍 무성서원 35×25cm 종이에 펜 2022.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서동환-정읍 무성서원 35×25cm 종이에 펜 2022.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어반스케치를 지속하면서 작가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작은 그러나 섬세한 펜으로 그려진 그림 한 점이 주는 안식과 휴식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 시작은 자신 스스로의 번민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한 몸짓이었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위로였다는 것을.

작은 펜화 한 점이 복잡한 도시의 정치 경제를 떠나 안식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한 것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5호(2023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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