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왕족이라는 고귀한 혈통을 내세운 전설적인 건국신화가 무색할 만큼 로마는 이탈리아반도 중간쯤의 아주 작은 폴리스로 출발하였다.

여느 국가들처럼 로마도 처음에는 왕이 지배하는 체제였다.

루키우스 브루투스 기원전 4-3세기. ⓒ광주아트가이드
루키우스 브루투스 기원전 4-3세기. ⓒ광주아트가이드

하지만 기원전 6세기경,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 BC 6세기)는 자신의 외삼촌이자 로마의 마지막 왕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Lucius Tarquinius Superbus)를 폐위시킴으로써 왕이 지배했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체제인 공화정을 출범시킨다.

여기에는 한 명의 여인과 관계된 일화가 있다.

루크레티아(Lucretia)란 이름의 이 귀족 여인은 최고위직인 집정관 루크레티우스의 딸이자 왕족인 콜라티누스의 아내였다.

어두운 밤, 전투로 밖에 나가 있는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던 그녀의 방에 한 남자가 침입하여 그녀를 위협하고 강제로 범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탐욕에 눈이 먼 남자는 바로 왕의 아들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Sextus Tarquinius)였다.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결국 왕의 아들은 죽임을 당하고 왕은 쫓겨나게 됨으로써 이야기는 끝난다.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루벤스, 1610. ⓒ광주아트가이드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루벤스, 1610. ⓒ광주아트가이드

이 유명한 이야기는 공화정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수많은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낳기도 했다.

어쨌든 로마는 공화정 시대에 많은 전쟁을 통해서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아직도 목이 마른 로마가 지중해 권역의 패권을 두고 해상강국인 카르타고와 전쟁을 벌였던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명장들이 역사에 이름을 올린, 총 세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의 여신은 로마의 손을 들었다.

이 시기 동안 로마가 파죽지세로 성장한 것은 미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그리스의 것을 계승하여 자신만의 색을 입힌 로마의 미술은 특히 건축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로마 미술이 그리스 미술을 거의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가 미술사 책에서 보는 그리스 시대의 전설적인 작품의 도판들이 거의 대부분 로마 시대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이처럼 그리스 조각을 그대로 베끼는 로마의 미술을 파스티슈라 부른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거의 모든 것에 열광했던 귀족들의 성향 탓이겠지만 그들끼리의 경쟁적인 열광 덕분에 비록 모작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열광의 또 하나의 효과는 많은 조각가의 수입이 보장되었다는 것 외에도 귀족들의 보잘 것 없는 안목을 대신할 전문적인 미술품 감식가(connoisseur)가 출현했다는 것일 터이다.

페이윰 초상. ⓒ광주아트가이드
페이윰 초상. ⓒ광주아트가이드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로마의 미술이 파스티슈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플리니우스(Plinius)가 쇠퇴했다며 불평을 쏟아냈지만, 남아 있는 초상화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생전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정을 끝내고 공화정을 연 부르투스의 흉상을 보면, 당시 모델의 특징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 작품들과 고대 그리스의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로마인이 그리스인보다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모방을 원리로 하는 고대 그리스 미술이 눈 앞에 펼쳐진 각양각색의 대상들보다는 그러한 대상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고대 로마의 미술은 그리스와 반대로 자신의 앞에 있는 대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고대 그리스의 이와 같은 성격이 자연주의 미술과 고전적인 미의 이상을 제시한 것이라면, 고대 로마는 그리스의 이상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도 보여줌으로써 미술의 다양한 측면을 다룰 수 있었으며 훨씬 풍부한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50호(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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