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경 확립된 그리스 고전기 미술은 서양 미술의 전형으로서 현재까지 인식되고 있다. 비록 로마 시대의 모작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이 시기에 등장한 고전기 조각가들의 작품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미론(Myron), 피디아스(Phidias)와 함께 소위 BC 5세기 3대 조각가라고 일컬어지는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 BC 5세기경)의 <창을 든 사람(Doryphoros)>이라는 작품을 봐보자.

크리토스 소년.
크리토스 소년.

이 조각상의 인물은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다른 쪽 다리의 힘을 뺀 채 마치 짝다리를 집는듯한 모양새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 있다. 이것을 미술에서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즉 균형(balance)이라 부른다.

참고로 역사상 최초로 이것을 성취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1866년 발굴된 <크리토스 소년(Kritos Boy)>이라는 작품으로, 이는 이것이 기원전 5세기 초에 활동한 조각가 크리토스의 작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폴리클레이토스는 또한 <캐논(Kanon)>이라는 인체 비례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여기서 그가 제시한 수학적인 7등신의 인체비례론은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체비례의 기준으로서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다.

이처럼 기원전 5세기에는 비례(proportion), 균형, 균제(symmetry), 조화(harmony) 등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미와 예술의 법칙들이 정립되었다. 이것들이 고대 세계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근대를 포함하여 오늘날까지 서양 예술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은 고대 그리스 미술의 광범위하고 강력한 지배력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미적형식법칙’이라 부르는 이 법칙들은 고대 그리스의 여러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70년경-BC 495년경)와 그의 학파에게서 직접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피타고라스 정리 등 우리에게 골치 아픈 수학자로만 알려진 피타고라스지만 그의 사상이 예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는 세상의 원리가 수에 있기에 모든 만물을 수(數)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 마디로 그는 이 세상이 수적으로 질서가 잡힌, 그래서 조화를 이룬 상태로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질서(order)’라는 의미인 ‘코스모스(kosmos)’라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주’를 가리키는 단어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또한 수적인 비례에 의해 음정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여 음악에서 7음계 체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영혼의 부조화 상태를 음악으로 조화시킴으로써 영혼을 정화한다는 음악치료를 강조하기도 했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사람, 로마시대 모작.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사람, 로마시대 모작.

이처럼 피타고라스의 사상에서 나온 비례, 균제, 균형, 조화와 같은 수학적인 관념은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뿐만 아니라 의학, 수학, 천문학,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플라톤(Platon, BC 428/427 또는 424/423 - BC 348/347)의 미론 및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의 예술론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리스 고전기 중 기원전 5세기의 미술작품, 특히 조각을 가리켜서 엄격 양식기의 작품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들 작품이 당시 확립된 미적형식법칙을 엄격히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원전 4세기의 작품들은 이전 시기에 비해 더 감정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BC 4세기)는 최초로 실물 크기의 여성 누드 상을 제작했으며, 리십포스(Lysippos, BC 4세기)는 그의 선배인 폴리클레이토스의 7등신의 인체비례를 더욱 길쭉하게 늘린 8등신의 새로운 인체비례론을 도입시켰는데 이것을 달리 리십포스의 캐논이라 부르기도 한다.

리십포스는 마케도니아의 제왕이자 미술에 있어서 최초로 국제적인 양식을 낳게 만든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56- BC 323)의 개인 조각가로 알려져 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그리스 고전기 미술의 성과들은 그대로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계승·발전되고 대왕의 군대에 의해 인도까지 전파되기에 이른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5호(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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