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 양식으로서 로마네스크 미술이 로마의 것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한 채 겉모습만 흉내 내는 데에 그쳤다고 한다면, 고딕 미술은 로마의 그것을 게르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발전시켜서 재창조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게르만 최고의 중세 미술 양식으로 평가되는 이 미술은 ‘고딕(Gothic)’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트족’, 즉 야만스러운 게르만족의 미술이라는 비아냥을 내포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공중부벽. ⓒ광주아트가이드
노트르담 대성당 공중부벽. ⓒ광주아트가이드

위대한 로마인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뾰족하고 기괴한 고딕 건축은 성에 안 찼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로마인들의 생각과 달리 고딕 미술은 건축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이것은 게르만족의 후손들에게 오늘날 유럽 미술의 원천으로서 고딕 미술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건축이었다.

이것은 중세 말에 성장한 도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수공업과 상공업의 발달로 점차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들게 되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도시가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게 되자 도시는 어느새 정치, 종교, 상업, 학문,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중세의 지배자들이 도시의 가장 중심지에 시청과 교회를 세운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지배자들은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산이나 숲에 성처럼 교회나 궁전을 짓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세를 지배한 기독교의 위상을 위해 프랑스나 독일 등의 건축가들은 부를 과시하고 싶은 지배자들의 입맛에 맞춰 교회를 높고 크게 지어야만 했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둥근 아치를 뽀족하게 하면 더 높이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쩌면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건물의 하중을 분산시킬 수 있는 부벽을 고안함으로써 더 높고 얇은 벽을 갖춘 건물을 가능하도록 했다.

샤르트르 대성당 실내, 1210-1250. ⓒ광주아트가이드
샤르트르 대성당 실내, 1210-1250. ⓒ광주아트가이드

부벽의 덕택으로 교회는 벽에 아주 얇고 투명한 유리를 끼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건물의 겉모습은 기괴하더라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높고 넓은 교회의 공간을 신비롭게 비춰줌으로써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황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 중세의 도시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다른 곳보다 더 높고 화려한 교회가 있어야만 했다.

크고 높은 교회의 존재 여부는 곧 그 도시에 대한 평가의 척도가 되었다.

갈수록 교회의 크기로 도시의 순위가 매겨졌으며, 이것은 도시의 지배자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수준까지 정해버렸다.

이제 경쟁적으로 각 도시는 큰 교회를 세워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이 시기를 달리 대성당의 시대라 말하기도 한다.

유럽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큰 교회들이 생겼지만, 피뢰침이 발명되지 않았던 당시에 높고 큰 교회는 그 자체가 일회용 피뢰침 역할을 했다.

많은 교회들이 번개를 맞아 파괴되었으며, 무수한 사상자를 냈다.

하지만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와 같은 경쟁적인 건축 붐은 미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시기의 교회 건축은 건물만 짓는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문 등에 장식되었던 조각이나 예배 때 쓰였던 제단화,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유리공예는 교회 건축의 필수요소였던 것이다.

따라서 대성당 건축이 융성했던 것만큼 건축의 부속이었던 회화나 조각 역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풍부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도시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자유로운 시민계급의 의식과 더불어 찬란한 르네상스 미술의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은 게르만족의 도시가 아닌 로마인의 도시에서 서서히, 그러나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아직은 미약하지만 어마어마하게 커질 그 바람의 한줄기를 추적해야 할 것이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8호(2023년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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