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혁명은 순정이다 - 목판화가 박 홍 규
[범현이의 작가탐방] 혁명은 순정이다 - 목판화가 박 홍 규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1.06.3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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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강 옆. 긴 보를 사이에 두고 작가가 거주하고 있다. 아름드리 가지를 활짝 편 은목서, 등나무, 목련, 동백이 마당에 그득하다. 그동안 쉬지 않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심지어 너무 가팔랐다. 매번 자신에게 되물었다. 잘살고 있는 것인가. 첫 마음을 잊지 않은 채 걷고 있는 것인가. 그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매일 은목서와 등나무 목련, 동백 앞과 그늘에서 서성인다. 생각하면서 나무 이파리를 보고, 생각하면서 떨어진 이파리를 넘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나는 너라는 것. 다시, 너는 곧 나라는 것.

술과 담배와 나무와 조각도와 붓

박홍규 목판화가. ⓒ광주아트가이드
박홍규 목판화가. ⓒ광주아트가이드

누구에게나 멈출 수 없는 것이 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걸리지 않은 제동장치. 조각도와 붓이 그렇다. 농부로 살고 싶었지만, 실제 삼십여 년을 농부로 살았지만, 결국 술과 담배와 나무와 조각도와 붓이 작가의 곁에 남았다.

작가는 “농부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농민운동을 하겠다고 그림을 버렸다.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그림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호출했다.

농민운동의 현장은 숨 가쁘게 치열했다. 고추수매, 수세투쟁, 한미FTA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현수막이 필요했고 걸개그림도 요구됐다. 작가가 몸담았던 부여농민회뿐 아니라 전국농민회의 열기에는 ‘뺑기쟁이’가 필요했고, 이 모든 시위현장의 선전은 작가의 몫이 되었다. 농부로 살고자 그림을 버렸으나, 다시 농부로 살기 위해서 그는 그림이 필요조건이 되었다. 기꺼이 그림이 도구가 되었다.

'후천개벽도' -박홍규 목판화가. ⓒ광주아트가이드
'후천개벽도' -박홍규. 40×94cm 목판화 2014
'바람 앞에 서다'- 박홍규. 2014. 45 105cm 목판화
'바람 앞에 서다'- 박홍규. 2014. 45 105cm 목판화

‘녹두장군’ 판화는 정체성의 표상이 되었다. 각 분야의 운동권 사무실에 걸려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녹두장군’은 작가로 하여금 ‘동학’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시작이었을 뿐이다. 첫 판화를 시작한 지금까지 동학의 역사적 진실 앞에서 우리의 평범한 농부로 살아남고자 하는 이유가 되었다. 동학의 구성원이었던 동학군 대부분이 지금과 똑같은 농부였으므로.

그림을 그릴 때 편안하고 생의 위로를 받는다. 조각도를 들고 칼맛을 찾아 이리저리 스케치하고 궁리를 하는 시간이 가장 고요하고 참다운 세상을 찾아가는 것만 같다.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야 할 때, 바로 지금

'말목장터 감나무-파랑새는 온다'- 박홍규. 2014. 63 =90cm  목판화
'말목장터 감나무-파랑새는 온다'- 박홍규. 2014. 63 =90cm 목판화
'녹두꽃은 영원하리'- 박홍규._먹
'녹두꽃은 영원하리'- 박홍규. 50×80cm 목판화 2019

여기까지 오는데 곡절과 부침도 많았다. 하지만 끝내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작가정신’과 ‘전녹두’에 대한 애정 즉, 순정이다. 농부로 살면서 바라보았던 그림 속 세상은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 그대로 투영되었다. 싸움에 나선 농부는 동학군과 다를 바 없이,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지난해 작업실이 불타면서 그동안의 작업물도 함께 사라졌지만, 더 이상 절망과 비애에 잠겨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예측 불가한 생을 즐긴다. 완벽하게 예비하고 예정되어있다면 남아있는 생은 분명 지루해질 것이다.

작가는 단단해지며 건강해졌다.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작업의 내용도 확장되었다. 동학에 관한 40점 작품완결을 목표로 전진 중이고, 정율성과 김산, 우리의 근현대사까지 작업의 내용 안에 촘촘하게 엮어가는 중이다.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박홍규. 2014. 56x108cm 목판화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박홍규. 2014. 56x108cm 목판화

늦은 밤이면 천천히 걸어서 흐르는 강물과 들을 바라본다. 수천의 동학군이 차가운 겨울 강에 몸을 담그고 핏물로 후퇴하던 곳. 비틀거리는 몸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조선의 산천과 부모 형제와 아이들. 자신을 불사르면서도 끝내 지키려고 했던 전녹두의 혁명과 순정. 작가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이곳으로 흘러왔지만, 이제는 상처의 딱지를 뜯고 더 아픈 이들을 찾아 위로해야 할 때다.

상처받은 자만이 상처받은 자들을 더 깊게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9호(2021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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