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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초파일 즈음이면 광주천에 한지제작 등이 둥둥 떠 있다. 때로는 아기 부처였다가 때로는 아동용 만화에서 나오는 캐릭터 등 둥둥 떠다니며 광주 천변을 환하게 불을 밝힌다. 해마다 등을 보며 궁금했다. 등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일까,

작가를 만나러 간다. 너릿재를 넘자 엄청난 소나기가 내린다. 터널을 사이에 두고 세계가 다르다. 들어서기 전에는 어둑한 저녁노을이었는데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우박 같은 비가 쏟아진다. 도착해서도 비. 작업실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가 비의 물빛에 보석처럼 반짝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투명한 물방울을 우수수 떨어트린다. 연장으로 빼곡한 작업실을 둘러 보다 이만한 작업실의 위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 말 그대로 적요다.

작업의 기초는 연장

이기환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이기환 전통한지 등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사방을 둘러보아도 연장이 가득하다. 바닥은 물론이고 천장과 벽과 벽 사이도 빼곡하다. 매달려있고, 누워 있고, 서로 포개져 있다. 몇 개나 될까 눈에 보이는 어림을 해보다가 그만두었다. 보이지 않은 곳에 더 많은 연장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작가는 “이렇게 연장이 많아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 지 다 기억한다. 필요할 땐 금방 찾아서 사용한다”며 “연장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등을 만들다 보면 모두가 필요한 것들이고, 작업의 햇수와 작품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연장이 점점 늘어간다”고 설명했다.

건축을 전공했는데, 전통 한지 등(燈)제작 작가가 되었다. 30여 년 전 불교 청년회에서 활동했던 것이 계기였다. 작가는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밤을 밝히는 등을 만들다가 아예 전통 한지 등 제작에 들어서게 되었다”며 “초파일이면 뭔가 색다른 등을 만들고 싶었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등(燈)은 불을 밝히는 도구이다. 불교에서의 등은 어둠을 밝히는 일 외에도 새로운 의미가 있다. 등불을 밝히는 연등(燃燈)은 탐욕과 욕심,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에 젖은 자신의 무명(無明)을 지혜로 밝힌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등을 밝히는 전통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 천 년 동안 정성스럽게 이루어져 왔다.

ⓒ광주아트가이드
ⓒ광주아트가이드

작가의 등은 일반적 의미에서부터 불교의 전통적 의미에 동시대의 미적 상징성까지 담은 완전체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는 1,200년 역사를 이어오는 등(燈)으로 대표되는 축제다. 우리나라에서도 초파일이면 전국적으로 연등회를 갖는데, 연등회의 중앙에 설치되는 상징 조형물이 거대한 조형물로 설치된다. 주로 내가 제작하는 이 상징물은 부처가 되기도 하고 탑이 되기도 하는데, 이 상징물 역시 거대한 하나의 등이 되는 셈이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대한불교조계종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전통 등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전통은 현재를 넘어 시대를 담는다

등 제작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섬세하며 복잡하다. 작가는 “원래 우리의 전통 한지 등의 뼈대는 대나무였다. 부채를 만들 때 가느다란 대나무 살대를 만드는 것처럼 등을 만들 때도 적당한 굵기와 길이의 대나무 살대가 필요하다”며 “처음엔 전통에 기인한 정통성을 잇겠다는 생각으로 대나무를 직접 깎아 등을 만들었지만 현재는 철사를 용접해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기획 및 스케치부터 온전하게 작가의 몫이다. 원물을 제작하기 전에 미니어쳐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골조를 세우고 뼈대를 가조립하면 절반은 완성된 셈이지만 전기작업이 이어지고 한지를 붙이는 작업은 진행한다. 여기까지 완성되면 다시 가조립을 하고 진행을 판단하며, 무게를 지탱하고 완성도가 결정되면 한지에 채색과 눈, 비에 젖어도 견딜 수 있도록 코팅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등이 완성된다.

론 의뢰받은 곳에 현장조립 설치하는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점등식을 가져야 작업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주로 하는 작업이 탑이나 일주문 등 거대한 조형물이다 보니 매번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건축을 전공한 것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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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대형조형물 제작이 가능하게 하는 힘은 등을 버티게 하는 골조에서 나온다. 전통적 버팀목이던 대나무에서 현재는 작가가 고심해서 발굴한 철사의 용접으로 대형 조형을 가능하게 했다.

코로나19로 모든 행사와 강의 등이 멈췄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더 바쁘다. 입에서 입,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던 전통 한지 등 제작을 문자화, 도면화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통등제작연구소를 꾸리고 있는 작가는 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전통 한지 등 작업을 소망한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2호(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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