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오백나한(五百羅漢)을 꿈꾸는 조각가 강태회
[범현이의 작가탐방] 오백나한(五百羅漢)을 꿈꾸는 조각가 강태회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1.08.02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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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각가다

탐진강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돌아오는 길은 붉은 석양과 함께 아름다웠다. 한 생(生)을 소진하고 사라지는 우리의 삶도 저리 붉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또, 때가 되면 소멸해갈 것이다.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받은 느낌이 그랬다. 길고 긴 고통과 참혹함. 모든 것이 생을 통과했구나. 죽음을 원했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구나. 길게 줄 맞춰 제 자리에 앉아있는 나한의 표정에서 한 생이 태어나 스러지는 과정이 읽혔다.

삶을 향한 의지 또한 강력하게 느껴졌다.

나를 살게 한 돌 작업

강태회 조각가. ⓒ광주아트가이드

흙바람이 농로로 불었다. 온통 하얀, 희뿌연 먼지였다. 멀리 작가의 작업실이 보였다. 장흥에서 태어났고, 15년 전 무렵 다시 장흥으로 돌아와 이곳에 터를 닦았다. 광주, 제주, 화순, 강진, 인도와 과테말라를 거쳐 안착한 곳이 결국 고향이었다.

돌조각에 집중한다.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매일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두들기고 깎아내며 연마한다. 작가는 “2000년, 공간을 달리해서 개인전 형식을 취했던 삼인전(三人展)이 대학 졸업 후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였다.

살아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고 개인적인 작품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며 “이곳에서 매일 하는 작업 역시 사찰에서 의뢰받은 불상 조각이 대부분이다. 기계적인 반복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연마하듯 돌을 연마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한다.

반복적 행위 속에서 결국 나를 다스리며 지나온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또, “뒤돌아보건대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하고 싶은 일 1순위는 예술가, 조각가다. 그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았다.”고 덧붙혔다.

돌. 조그만 콩 자갈에서부터 조약돌, 몽돌, 크게는 바위까지 이 돌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형성되었을까를 생각한다. 돌이란 물성이 지닌 특징과 시간, 공간을 유추하고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수억만 년 전 처음 형성되었던 과정과 돌의 표정을 생각해보고 시간이 만들고 형성한 돌의 무늬를 들여다보며 인간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돌이란 물성이 지닌 생명력을 경외한다.

생물로서의 돌과 포자를 맞이해 생명을 키워낸 돌까지 납작하게 이끼를 품은 넉넉함과 시간을 감탄한다.

넓은 마당가 크고 작은 돌들이 즐비하다.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도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돌의 귀함을 알고 시간을 읽는 것이 느껴진다.

오백나한에 생명을 불어넣다

육십이 되기 전에 오백나한 제작이 목표다. 스스로와 약속은 오래전이었다. 현재까지 마흔 두 점이 완성되었다. 표정과 옷 주름, 형태가 모두 다른 작가의 오백나한은 오롯이 자신만의 창작이다.

오백나한은 사찰에서 볼 수 있다. 깨달음을 얻어 사람들에게 공양을 받을만한 불교 수행자 오백 인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말한다.

오백나한상. ⓒ광주아트가이드

작가는 “현재 완성된 42분 나한상은 한 달 반 동안 집중적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작년에 힘든 일이 닥쳤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몸부림친 결과이기도 하다. 42분의 형상작업이 마무리될 무렵,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고 다시 세상이 보였다.”고 고백했다.

나한상은 불상이나 보살상과는 달리 불교경전의 도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다양한 자세와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의 오백나한상 역시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완성되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을 비롯해 경전을 머리에 이고 있거나,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한 옷 주름, 세상의 모든 번뇌와 해탈 고통 등의 조형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작업을 위해 돌을 특정하지 않았다. 일의 과정에서 큰 덩어리의 돌 작업 후 떨어져 나온 돌들을 쉽게 처분하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만들어졌다. 오백나한상이 선(仙)을 얻기 위해 불교를 공부한 이들이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무엇의 행위에 집중한 것이 아닌, 제 자리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돌아보면 마침내 얻을 수 있는 것이 깨달음이니 현재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인 셈이다.

수십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차마 처분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다닌 돌은 지금도 작업실에 오롯하게 존재한다. 2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작가와 함께했던 돌. 작가의 삶의 모든 여정을 기억하고 있는 돌. 이 돌이 잠에서 깨어날 때 작가의 세상은 다시 새롭게 열릴 것이 분명하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0호(2021년 7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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