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지켜야 할 유산의 목록을 적는다면 나는 거기에 의인의 이야기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운동선수들이 육체를 단련하는 것처럼 의로운 사람은 영혼을 단련한다.

우리 영혼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삶으로써 실증한다.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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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운동선수들이 기량을 뽐내는 것처럼 의인이 자기를 자랑하고 드러내 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대개 사회적 명예나 위신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공동체가, 사회가 나서야 하고 또 공을 들여야 한다.

<어른 김장하>는 지역사회가 공들여 만든, 한 의인에 관한 영화다.

194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서른 살 무렵부터 진주에서 활동한 독지가이자 사회운동가 김장하 선생이 주인공이다.

선생은 일평생 한약방 운영으로 얻은 수입의 대부분을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보는 데 썼다.

100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설립한 학교를 국가에 헌납(공립화)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지원했는데, 그 수가 천명도 넘는다.

그럼에도 자신은 평생 자전거를 타고 오래된 물건을 아껴 쓰며 철저히 검소한 생활을 했다.

입이 무거운 선생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경남 쪽 지역언론에서 잔뼈가 굵은 김주완 기자와 MBC경남의 김현지 PD가 의기투합했다.

주변인의 증언을 토대로 유물을 발굴하듯 조심스레 선생의 행적을 살폈다.

그랬더니 교육뿐 아니라 인권, 언론, 여성, 생태, 역사 등 지역사회에서 행해진 의미 있는 실천들이라면 무엇이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른 김장하>의 영문 제목은 ‘도시를 치유하는 사람 (A Man Who heals the city)’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것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89년 전교조 해직압력에 대한 저항이나 형평사 운동에 대한 그의 굳은 계승 의지를 보건대 선생의 삶을 ‘이타심’이나 ‘봉사정신’과 같은 가벼운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돌봤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거나 하려는 사람들을 도왔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믿고, 그 믿음을 삶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의인이다.

영화는 김장하 선생의 내면을 엿보려고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밀거나 또는 의로운 삶이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선생과 연이 있거나 그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 각자의 사연을 주의 깊게 들을 뿐이다.

장학금을 준 학생들에게 선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덕분에 자신의 공헌 활동이 치적처럼 다뤄지기를 원치 않는 선생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그가 이룬 성취를 담백하게 소개할 수 있었다.

이 점은 다큐 영화로서 <어른 김장하>가 보여준 중요한 미덕이다.

‘의인은 이토록 대단한 존재구나.’라는 식의 경탄은 아마도 이 영화가 의도한 반응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인권, 평등과 같은 사회적 정의를 담보하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나 의식(儀式)이 아니라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가.

그러니 멈추지 말고 용기를 내어 함께 나아가자. 

<어른 김장하>에는 내레이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팔순을 앞둔 선생이, 그가 평생을 바쳐 보살펴온 도시의 거리를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을 따르다 보면, 낯선 듯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아주 가끔,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할 때 우리 안에서 들려오던 그 목소리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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