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검찰과 연관이 없었는데 문득 작년에 어느 검사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검사께서 밥 살 광영을 주시겠느냐고 하시기에 흔쾌히 답변하고 대검찰청으로 갔습니다.

무척 앳돼 보이더군요. 그런데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4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 검사께서 그러더군요.

“저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반향이 크더군요. 저의 상식이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반향을 일으킨 분들의 상식이 잘못되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을 지켜봤고, 직접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과정에 매우 특별하고 공통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마음이 여린 분들이 가장 강직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순수의 힘이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 검사의 순수함이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 검찰상을 정립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SNS 갈무리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SNS 갈무리

그런데 올해 7월 그 검사께서 책을 출간하셨더군요. 그래서 일단 구입을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탐독을 했습니다.

“실체적 진실이자 사법 정의인 정답과 채점자가 정답으로 처리하는 답이 달라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비로소 진짜 검사인지 여부가 판가름 납니다. 직업적 양심에 따라 정답을 고르는 검사도 있을 테고, 오답인 줄 알면서도 채점자 의도를 간파하여 오답을 고르는 사람도 있겠지요."

"경우에 따라 극심한 인지부조화에 시달리며 오답이 실체적 진실이자 사법 정의라고 우기며 오답을 고르는 검사도 없지 않을 겁니다. 어떤 답을 고를 것인가? 작정하고 정답을 오답 처리하는 채점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우리는 숱한 갈림길에서 늘 주저하고 흔들립니다.”

그 검사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보면서 어느 방송에서의 인터뷰가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 하더라도 상사의 부당한 압력을 거부할 수 있어야 진짜 검사입니다.”

그리고 작년에 만났을 때의 말씀이 생각났죠.

“거의 매주 동작동에 갑니다. 국립묘지 현충원에 계시는 안병하 치안감님을 참배합니다. 저에게 가장 큰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분입니다. 안 치안감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셨는데, 우리는 옷 벗는 검사 한 명 없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검찰의 역사입니까?”

고뇌에 찬 검사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안병하 치안감님께 위로와 격려를 받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죠.

1980년 5월 25일 전두환 내란세력의 광주시민에 대한 발포명령을 하달 받은 안병하 치안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상부의 명령을 이행하여 광주시민을 살상하고 출세 가도를 달리는 길,
그리고 또 하나의 길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끝없는 추락의 길을 걷는 길이었습니다.
출세는 현실에서 살지만 역사적 심판을 피할 수 없었고
추락은 현실에서 죽지만 언젠가는 역사에서 부활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 검사는 당시 안병하 치안감의 고뇌에 찬 결단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 세종대로에서 진행된 서울촛불집회에서 발언을 했습니다. 요지는 간단합니다.

“80년 5월 광주시민을 지키기 위한 안병하 치안감의 고뇌에 찬 결단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의 정당성을 확인해 준 역사적 쾌거'였다. 그러므로 오늘의 대한민국 경찰관 여러분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라. 그것이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선배, 대한민국 경찰의 표상 안병하 치안감을 역사 속에서 영원히 부활시키는 것이며, 시대가 여러분에게 부여한 소명이다.”

그런데 안병하 치안감의 민주인권위민 정신이 검찰에서도 부활하고 있음을 그 검사를 보며 느꼈습니다. 

대구지방검찰청 임은정 부장검사가 출간한 <계속 가보겠습니다- 내부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을 읽은 감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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