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말과 행동이 하나임을 증거하는

- 이홍길 교수님영전에

박몽구(시인, 교육지표동지회 회원)


꽃샘추위, 봄이 오는 길 틀어막고 있는
3월 신새벽
는개 첩첩한 하늘 걷어내며
큰 별 하나 떴다
실종된 봄 앞에서 길 잃은 사람들에게
또렷하게 좌표 하나 던져 주었다

야욕으로 똘똘 뭉친 남의 뜻으로
두 동강 난 삼천리
돌아보지 않은 채
표 도둑으로 뽑힌 대통령
거짓의 책 던지고 거부하면서
그는 4월혁명 피의 화요일 한복판에 섰다

책을 빼앗긴 청년들 침략전쟁으로 내몰리고
마지막 남은 쌀 한 톨까지 공출당해야 했던
36년 옥죄어들던 식민지 시절
사과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제국주의의 후예들과 더러운 손 맞잡던
한일 굴욕 회담 때에도
그는 미련없이 학사모를 던진 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외쳤다

한 사람이 가리키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도록 내몰던 일제의 교육칙어를 베낀
낯 뜨거운 국민교육헌장 찢으며
그는 이번에는 강단을 버린 채 거리에 섰다

저를 낳아준 겨레붙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채
군부독재의 사생아들 화려한 휴가를 꿈꾸던 5월에도
그는 분수대 아래를 지키며
힘없고 가난한 친구들을 따스하게 감쌌다

그렇게 총칼의 서슬푸른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갑게 입 벌린 감옥 문
두려움 없이 열어젖히던 사람
깨끗한 희망이 펼쳐진 내일을 위해서는
어떤 지위도 명예도 내던진 사람

다시 첩첩하게 차갑고 어두운 봄
망설이는 우리들 앞에
곧은 길 하나 던지고
홀연히 하늘로 돌아갔다

다시는 한 사람을 위해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거짓으로 포장한 서체들 달콤한 말들
9시 되자마자 울리는 땡윤뉴스
우리들의 손으로 막내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제 온 생애를 바쳐
곧은 길 묵묵히 걸어온 그를 따라
우리들 가진 것 모두 버리고
빈 손으로
깨끗한 새벽을 열어야 할 때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 앞에
분명하게 내일을 위한 좌표 걸어야 할 때이다

고 이홍길 교수 생전 모습.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 이홍길 교수 생전 모습.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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