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거머쥐며
개봉 전부터 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낸, 현재진행형인 새만금 간척사업의 이야기

관객주도 관객참여 배급 ‘100개의 극장 추진단’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며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탄생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이 담긴 다큐멘터리

<수라>는 붉게 물든 달 아래 수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이들은 군산에서 거주하며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으로 활동하는 오동필과 오승준, 그리고 <수라>의 감독 황윤이다.

영화의 제목 ‘수라’는 비단에 새긴 수라는 뜻을 지닌,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되던 군산 미군기지 옆에 자리한 수라마을을 지칭한다.

ⓒ 수라, 네이버 영화
ⓒ 수라, 네이버 영화

<수라>의 주춧돌이 되는 배경이자 1991년에 시작해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범국민적으로 주목을 받던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관심은 어느덧 수면 위로 가라앉았다.

2006년 대법원의 판결로 새만금 간척사업의 강행이 결정 나고 당시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많은 이들이 좌절했다.

하지만 30년 전 시작되어 끝나지 않은 간척 사업에 저항하며 여전히 자리에 남아 활동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황윤 감독은 2014년 군산으로 이주해온 후, 수라 갯벌을 기록하기 시작한 자신이 지나왔던 2006년의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당시 새만금 간척사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며 새만금 갯벌을 촬영하면서 가까워졌던 고(故) 류기화 어민이 간척 개발 사업에 저항하던 와중에 사망했던 절망감 때문에 자신의 아픈 기억을 봉인해왔다.

ⓒ 수라, 네이버 영화
ⓒ 수라, 네이버 영화

황윤 감독이 의지해온 사람이자 어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이들을 렌즈에 담아 <살기 위하여>(2009)를 완성했던 이강길 감독 또한 고인이 되었다.

황윤은 그렇게 기억에서 새만금을 한동안 지우고 살았다.

그 사이에 진척된 간척사업으로 갯벌들은 염습지로 변모하였다.

이후 군산으로 이사 온 황윤은 여전히 매달 새만금의 자연을 기록하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존재를 알게 된다.

20여 년간 꾸준하게 갯벌과 이곳에 서식하는 철새들과 생태계를 카메라에 담고 기록해온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을 만난다.

<수라>는 황윤 감독이 군산에 내려와 조사단과 함께 7여 년간에 걸쳐 꾸준히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해온 과정을 담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수라>에서 카메라에 담기는 새들의 군무, 동틀 녘과 해질녘의 하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바닷가 등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 자체로 고혹적인 심상을 자아낸다.

ⓒ 수라, 네이버 영화
ⓒ 수라, 네이버 영화

영화 역시 생태가 지닌 황홀한 매력을 담아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자연 혹은 생태 다큐멘터리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광경을 목도하는 조사단 또한 생명이 지닌 아름다움에 본능적으로 사로잡혀 매혹되는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수라>는 자연의 황홀함만을 찬미하고 이에 도취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와 성찰적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드러낸다.

간척 사업으로 빚어진 생태·환경 문제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이를 끈질기게 기록하는 이들에 관한 작업이기도 하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10년에 걸쳐 기록하여 발행한 새만금생태 조사보고서는 각기 다른 배경을 지녔을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솔선수범 완성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동필 단장은 자신이 아름다움을 본 죄 값을 치루고 있는 게 아닐까 말한다.

그로 인한 보이지 않는 책임감을 언급하며 만약 그러한 풍경을 못 봤더라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으로 이끈 건 무분별한 간척 사업이 빚어낸 환경 파괴에 대한 항거의 정신이 있기도 했겠지만, 이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생명을 보존하는 세계를 갈망하는 그의 실천이 꺾이지 않았던 것은 성실하고 집요한 마음가짐에 있지 않았을까.

ⓒ 수라, 네이버 영화
ⓒ 수라, 네이버 영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오동필 단장의 그러한 태도는 자연스레 누군가에 영향을 주며 자라나는 새싹에게 토양이 된다.

고지식하지만 굳건하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버지와 함께 갯벌 터전을 나갔던 영향으로 새와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생물학을 공부하는 아들 오승준처럼 말이다. 

생태 다큐멘터리들은 극적인 장치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의 파괴를 시청각적으로 대비하거나 강조하며 환경 문제를 환기하는 방식을 택하곤 한다. 

이러한 전략은 본질적인 문제의식으로 나아가기도 전에 자극적으로 휘발되어 버리는 한계를 지니거나 반작용을 배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연이 품은 아름다움을 감출 생각이 없는 <수라>는 관객을 이러한 현장에 적극 초대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이 사라져가는 터전을 복원하려 지금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비춘다.

<수라>에는 갯벌을 오가며 자연을 면밀히 주시해온 조사단의 심경 변화와 눈부신 갯벌 생태계의 이미지들이 교차하며 함께 담긴다.

영화는 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택한 이들이 묵묵히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을 조명한다.

그렇게 <수라>는 대상을 기록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들의 세심한 관찰과 성실한 활동이 담긴 작업이 된다.

ⓒ 수라, 네이버 영화
ⓒ 수라, 네이버 영화

대외적으로 주목 받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실천은 얼핏 작디 작고 소박한 행보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나무를 심던 행동이 종국에는 황무지를 풍요로운 터전으로 가꾸어냈던 것처럼, 세상의 변화는 작고 미세하며 고요한 움직임으로부터 태동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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