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 유럽의 각지에서 도시가 형성되면서 자유로운 시민계급이 새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나 스페인,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은 여전히 왕이나 제국의 황제, 신하들 간의 봉토에 기반을 둔 봉건제도가 실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12세기경 피렌체나 시에나 등 이탈리아 북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상업과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도시국가들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피렌체일 것이다.

단테의 '신곡' 1472년판. ⓒ광주아트가이드
단테의 '신곡' 1472년판. ⓒ광주아트가이드

왜냐하면 피렌체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국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황제와 교황의 알력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12-13세기 무렵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로마의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프(Guelphs) 진영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Ghibellines)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한 패권다툼을 했으며, 피렌체 역시 양 진영 갈등의 중심지였다.

이때 타고난 재능 외에는 그다지 특출난 가문의 출신도 아닌 한 시인은 삶과 관계된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졌으며, 거기에는 사회변혁에 대한 문제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는 피렌체의 앞날을 결정지을 양 진영의 세력다툼에 기꺼이 뛰어들게 된다.

처음 그는 전통적인 황제파에 반대하여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프파를 지지했다.

1289년 토스카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인 캄팔디노 전투에 그 시인 또한 참전했으며 승리자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시인의 꿈은 구엘프 내부 분열로 인해 사라져버렸다.

같은 진영 내의 갈등과 배신, 음모 등은 그를 점점 궁지로 몰았으며, 결국 그는 교황과 추종자들에 의해 피렌체 정부로부터 화형선고를 받고 망명자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1308년경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명작에 자신의 비전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가 쓴 명작을 우리는 『신곡 Divine Comedy』이라 부르고, 그를 단테(Dante Alighieri, 1265년경-1321년)라 부른다.

단테의 『신곡』은 본래 이탈리아어로 『희극 Comedia』이라는 제목이었으나 후에 또 다른 위대한 시인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에 의해 ‘신성한 Divine’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지게 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 단테가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며 겪는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여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부터 당대의 교황, 추기경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그의 『신곡』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인간의 삶과 운명을 그렸다는 점에서 ‘인간화된 기독교’라는 르네상스의 일면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를 예견한다.

흥미롭게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피렌체에서는 또 한 명의 천재가 태어났다.

이 인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거의 없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를 썼던 바자리(Giorgio Vasari, 1511년-1574년)에 따르면, 그 역시 단테와 마찬가지로 당시로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농가에서 양치기로 자라났다고 한다.

지오토의 초상 1490-1550년. ⓒ광주아트가이드
지오토의 초상 1490-1550년. ⓒ광주아트가이드

이 평범한 양치기는 그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는데, 하루는 소년이 심심해서 돌 위에 그린 양그림을 우연히 지나가던 당시 위대한 피렌체 화가인 치마부에가 발견함으로써 그 소년의 인생뿐만 아니라 미술의 역사가 바뀌게 된다.

이 양치기 소년의 이름을 우리는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7년경-1337년)라 부르며 르네상스 미술의 아버지라 칭송한다.

세상에 진심을 다했던 시인이자 르네상스 문학을 예견했던 단테와 세심하게 그렸던 양 한 마리로 르네상스 미술을 예고했던 지오토는 피렌체 사람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와 보카치오, 시에나의 두치오에게도 상호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러한 상호작용은 바야흐로 르네상스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씨앗을 제공하게 된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3호(2023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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