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마뉴의 덕택으로 게르만족이 지배하던 옛 서로마 제국의 지역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조금이나마 연구되고 그 명맥이 이어질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약 AD 1000년경 로마네스크 미술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로마네스크(romanesque)’, 즉 ‘로마적’이라는 형용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미술은 AD 476년경 망해버린 서로마 제국의 미술, 특히 건축 양식을 흉내 낸 게르만족의 미술을 가리킨다.

베즐레 수도원 문, 11세기.
베즐레 수도원 문, 11세기.

그렇다면 게르만족들은 서로마 제국의 건축의 무엇을 따라하고자 했을까?

발트 해 연안에 흩어져 살았던 게르만족들은 시간이 지나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필연적으로 유럽의 패권을 장악했던 로마와 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건장한 체격을 갖춘 게르만족은 단일한 종족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종족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소위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냥이나 약탈, 원시적인 목축, 농경 등으로 근근히 먹고 살아가는 국경 밖 사람들은 그저 똑같은 미개인들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문자는 없었지만 스스로 용맹하다고 생각했던 게르만족의 입장에서조차, 수백 년간 싸워오며 접했던 로마의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기나긴 분쟁의 역사에서 기껏해야 나무로 만든 조잡한 방패에 무기도 변변찮은 그들에게 멋진 갑옷과 투구, 칼과 방패, 체계적인 전략과 전술 등은 공포를 넘어 동경으로 각인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들에게는 그것을 상쇄할 만한 압도적인 인원수가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게르만족들에게 로마의 문화, 특히 남아있는 대규모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바실리카 등의 건축물들은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아치(arch)’를 자신들의 건축에도 사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로마 황제의 계승이 영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물리적으로도 헌신하길 원했던 샤를마뉴 때부터 있었다.

이와 같은 로마네스크 건축은 가장 문명화된 로마의 국교를 위해 지어져야만 했다.

특히 당시에는 사람이 사는 곳을 제외하면 도처에 악마나 마귀, 사악한 용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었기에, 교회는 산이나 외딴 곳에 성처럼 튼튼한 수도원을 지어서 악에 대항해야 했다.

이처럼 로마네스크 건축은 아치를 사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로마의 것을 복원시켰지만, 나머지 조각이나 회화는 그렇지 못하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동·서로마 교회를 갈라 놓은 성상파괴운동(Iconoclasm)이었다.

본래 성상(Icon)은 그냥 그림이나 이미지를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의 전파에서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전도 대상인 상황에서 그림은 가장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십계명 등을 근거로 예수를 그림으로 그리지 말라는 금기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도 일부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이다.

팔라티노 예배당, 8세기 말-9세기 초.
팔라티노 예배당, 8세기 말-9세기 초.

하지만 기독교가 전 유럽의 종교로서 확산되면서, 성상은 단순한 교리 전달을 위한 교육수단에서 벗어나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각지의 수도원에서는 성상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했으며, 성지순례 코스에 자신들의 수도원을 집어넣기 위해서라면 근거 없는 전설을 만들어내는 사이비 작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황이 점입가경에 이르자 동로마 황제 레오 3세(685년경-741년)는 730년 성상파괴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성상파괴운동은 성상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 끝에 843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성상숭배의 정당성이 인정됨으로써 끝이 났다.

기본적으로 성상의 이러한 모순점 때문에, 기독교가 지배했던 중세에는 회화나 조각 등 시각예술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시기 조각은 성경의 내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추상적인 설명으로 장식되었으며, 이것은 회화에도 적용되었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7호(2022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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