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작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작업에 담고 있다. 그의 관심은 그 나이 또래의 고민거리, 사회적인 문제 등 일상적이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향한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사건 사고, 자살, 성폭력 사건 등 사회 문제에서부터 개인적인 고민까지, 그가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작품 안에서 ‘연기’ 혹은 ‘안개’로 뿌옇게 표현된다.

분출구로서의 연기

시든 식물- 이정은. ⓒ광주아트가이드
'시든 식물'- 이정은. 90.9×72.7cm oil on canvas. ⓒ광주아트가이드

그의 작품에서 뿌연 연기는 어떤 진실을 덮어버리는 것이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꽉 막힌 듯한 소통의 부재를 뜻하기도 한다. <Blind>(2019)에서는 무표정한 얼굴 위로 이마에서 연기가 뿜어 나오면서, 그 위에 있는 다른 사람의 머리 위로 퍼져나가고 있다.

또 어떤 연기는 그의 작품 안에서 스트레스를 뿜어내는 분출구로 작용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2019)은 쉬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바쁜 일상과 여러 걱정 때문에 쉬지 못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쉬고 있으면서도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을 정형화되고 딱딱한 느낌에서 오는 공간의 이질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머릿속에서 끓어오르는 스트레스를 분출하듯, 테이블 위의 커피 잔에서 연기가 폭발하듯 피어오르고 있다. <무제>(2020)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초록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을 들고 물에 다리를 담근 채, 목 위로는 연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다. 그는 향을 피움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무제'- 이정은. ⓒ광주아트가이드
'무제'- 이정은. 90.9×60.6cm oil on canvas 2021. ⓒ광주아트가이드

이전의 작업에서는 주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상황을 그렸다면, 최근 작업에서는 연기를 뿜어내는 ‘초’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주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초’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 모두에 사용되는 것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세 명의 아이를 그린 <탄생>(2021)에서는 사람 얼굴을 한 생일초에서 각기 다른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에 의하면, 뿌연 연기는 막 탄생한 한 생명이 앞으로 끼칠 좋은 영향력과 긍정적인 기운을 담아내는 것이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케이크’ 작업에서는, 3단 케이크 측면에 사람 모양의 초가 꽂혀 있다. 그는 케이크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3단으로 높이가 다른 케이크 층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대에도 존재하는 것 같은 신분 계급 차이와 태어나면서 많은 것들이 정해지는 상황을 암시한다.

사람초는 표정도 특징도 없이 케이크의 측면에 꽂힌 채 불이 켜지면 다 타고 재로 남을 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초를 불고 나면, 불이 꺼지고 피어오르는 한 줄기의 연기를 끝으로 초의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정은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이정은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그가 작품 안에서 ‘연기’를 통해 현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 문제로 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소통의 부재로 인해 뿌옇게 얼룩진 시대이자, 신분의 격차가 존재하고 개인의 개성이 몰살된 시대이다. 또 필요에 의해 어떤 구성품으로 소모되는 현대인의 비애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작품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연기’는 결국 그가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의 분출구로서 자신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는 작품 안에서 ‘연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적으로 사용하며 여러 가지 형식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이 앞으로 풀어갈 주제를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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