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詩] 닭그네야, 너는 거기서 오래오래 그네나 타렴
[촛불 詩] 닭그네야, 너는 거기서 오래오래 그네나 타렴
  • 이봉환 시인
  • 승인 2016.12.09 07:5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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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촛불 詩' 연재

닭그네야, 너는 거기서 오래오래 그네나 타렴
이봉환 


요즘 닭그네보고 그만 닭장을 떠나라며 달구새끼 주제에 그네를 다 탄다고 꼴만 봐도 재수없다고 걍 꽉 잡아먹어버리고 싶다고 난리들인데 생각하기에 따라 닭그네가 잘 한 일도 많다 먼저 즈그 아부지 장닭에 대한 환상을 깨준 건 참 잘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 부족 늙은 언니오빠들은, 닭그네 아부지 장닭님 덕분에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얼마나 그를 숭앙했던가 콘크리트처럼 수십 년 건재해오던 그 대책 없는 장닭 망령을 단 몇 주 만에 닭그네는 거뜬히 두드려 잡아줬다 둘째는 먹고 살기도 힘들고 희망도 없는 부족민들에게 밥맛을 돌게 해준 일이다 요즘 만나는 이들마다 겉으로는 화를 내면서도 무슨 일인지 얼굴에 잔뜩 신바람이 나 있다 돈벼락이 하늘에서 쏟아진 것도 아닌데 이토록 싱글벙글하다니, 참으로 요상한 부족민들의 심리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부족들을 대통합으로 이끌어준 공로 또한 매우 크다 찬성5%, 반대90%로 부족 대부분을 제 반대의 방향으로 똘똘 뭉치게 해주었다 그리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부족민들을 구국의 대열에 앞장서게도 하였다 헌데 요즘 상당수의 닭들이 닭그네와 한통속이 되기 싫다고 닭장을 탈출하겠다고 꼬끼요~ 홰를 치며 곡소리 높여댄다는 소문, 저들도 폐계가 되기 전에 야생의 싱싱한 지렁이를 한번 먹고 싶은 것이다 저 어둠 속 비선에서 던져주는 사료 나부랭일랑 거부하고 닭장 밖으로 나가겠다고 어디 뚫린 구멍은 없나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다는데,

그러므로 닭그네야, 내려오란다고 덜컥 내려오지 말고 우리한테 좋은 일 더 많이 하면서 너는 닭장 속에서 왔다갔다 그네나 타렴!

 













1988년 <녹두꽃>에 ‘해창만 물바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밀물결 오시듯> <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해창만 물바다>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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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환 2016-12-10 13:05:16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자연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있다고 스스로를 믿고 있다는 점이다

이봉환 2016-12-10 13:03:58
탄생시키는구나*

*문명 이전의 신화는 자연이 주연이었다 조연을 맡은 한두명의 인간도 비범한 신격을 가진 자였다 예를 들어 폭우와 비바람이 휘몰아치다 뚝 그친 하늘에 무지개가 뜨고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하늘이 열린다고 상상해보자 개미같이 미미한 존재들은 그 신비한 장면을 우러르며 황홀해하는 엑스트라 정도? 현대 사회에서도 신화는 탄생한다 그 신화의 주연은 자연이 아니라 이제 인간이다 촛불을 든 보통 사람들 232만이 합체하여 스스로 승천을 꿈꾸는 황금색 미르가 되어버렸다 더 위대한 것은 신화를 만든 이 사람들이, 세상

이봉환 2016-12-10 13:01:57
아재도 얼쩡대고 있으리라 무릇 생물의 세포들이 어디 썽썽하고 튼튼하고 잘 난 놈만 있다드냐 김제동이나 윤도현이나 김장훈이나 한영애같이나 거시기한 이들도 있기야 있지만 잘난 놈 못난 놈 거시기하고 머시기한 놈들이 한데 모여 저 거대 몸뗑이를 이루는 바, 그 몸뗑이 맨 앞쪽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노랑 화룡점정을 찍자 드디어 거대 용 한 마리가 눈을 번쩍 뜨는구나 꿈틀, 용솟음치는구나 진도 맹골수로 아득한 심연의 304 가여운 목숨들이 꿈결인듯 살아나서 참고 참았던 깊은 숨을 몰아내쉬는구나 어허! 위대한 2016 아스팔트 신화를 탄생시키는

이봉환 2016-12-10 13:00:59
닭그네를 퇴출하고 싶은 촛불 하나가 2만이 되고 100만 들불로 번지더니 드디어는 190만 불길로 훌훌 타오르는구나 하나의 촛불이 하나의 세포로 변신, 232만 개의 세포가 합체하여 거대 황금 물고기로 꿈틀거리는구나 저 세포들 속에는, 나더러 똑바로 살라고 욕 한 바가지 쏟아붓고 새벽처럼 떠나버린 후배녀석도 있을 테고, 언제쯤인가 인사동 차디찬 골목에서 부들부들 텅 빈 손가락 떨며 내밀던 늙수그레한 그 사내도 서성거리고 있을 테고, 또 한켠에는 울 아부지 1년 쌀농사 딱딱 긁어 판 그 돈 떼먹고 서울로 야반도주해버린 고향의 동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