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레스키가 태어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북부 유럽 림부르크(Limburg) 주(현재, 벨기에에 속함)의 마세이크(Maaseik) 시에서는 또 한 명의 천재가 태어났다.

이 아이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1390년 이전에 태어났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뿐 아니라 히브리어까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얀 반 아이크-남자의 초상, 1433.
얀 반 아이크-남자의 초상, 1433.

이러한 사실은 체면을 목숨처럼 중시하는 당시의 지배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이 아이가 후에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 1390년 이전-1441)임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그를 고용함으로써 문서에 이름을 올리도록 한 바에에른-슈트라우빙의 공작 얀(Jan van Beieren, 1374-1425)의 덕택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을 가진, 그러나 ‘매정한 얀’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덕 없던 공작이 1425년 독살로 사망하자, 얀 역시 2년여 헤이그에서의 궁정 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곧바로 얀은 브뤼헤로 건너가 직전의 고용인과 정반대 성향을 가진 부르고뉴의 ‘선한’ 필립(Filips de Goede, 1396-1467)에게 몸을 의탁한다.

궁정 화가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를 필립은 높이 평가했으며 일찍 세상을 떠난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에 이어 세 번째 부인을 위한 포르투갈 결혼 협상 사절단에도 포함시켰다.

이처럼 얀은 부르고뉴 공작을 위해 예술 분야만 아니라 외교적인 분야 및 (짐작하기로, 지도제작과 같은) 비밀 임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걸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해지는 20여 점의 작품 중 1430년대 이전에 그려진 작품은 (현재는 분실된) <포르투갈의 이사벨라 초상화>(1428-29)와 자신의 형 휴베르트와 함께 제작한 <겐트 제단화>(1420년 중반-1432) 정도밖에 없다.

마사치오- 성상위일체. 약1426-1428.
마사치오- 성상위일체. 약1426-1428.

하지만 143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작된 얀 반 아이크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걸작들인 것을 보면, <겐트 제단화>나 <포르투갈의 이사벨라 초상화> 등이 제작된 시기가 그에게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형과 공동으로 작업한 <겐트 제단화>가 유화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 시기에 그가 유화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발명된 선원근법이 피렌체 후배인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에 의해 <성 삼위일체>(약 1426-1428)라는 회화작품에서 최초로 적용된 것만큼이나 미술사적으로 대단히 혁명적인 사건임을 의미한다.

물론 오늘날 얀 반 아이크가 최초로 유화를 발명한 사람이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가 최초로 회화에서 유화를 사용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가죽이나 패널 위에 계란 노른자와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리던 템페라나 회반죽을 칠한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던 프레스코화는 한 번 그림을 그리면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숙련된 사람 외에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화의 발명으로 훨씬 밀도가 높고, 자유로운 유연성을 가지며, 풍부한 색채와 층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명암의 표현 범위를 확장할 수 있었다.

휴베르트와 얀 반이이크- 겐트제단화. 1420년중반-1432.
휴베르트와 얀 반이이크- 겐트제단화. 1420년중반-1432.

이처럼 르네상스 미술은 선원근법의 발명과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 그리고 유화의 발명으로 엄청난 진전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르네상스 미술은 초기부터 대부분의 작가가 원근법 연구와 해부학 연구, 그리고 유화 연구에 각자의 방식으로 몰두하면서 유례가 없을 만큼 성장하게 되며 수십 년이 지나 그와 같은 연구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을 때인 1452년 4월, 피렌체 인근의 작은 시골 마을인 빈치(Vinci)에서 한 명의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71호(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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