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어머니의 하루 3끼 식사는 '밥과 신건지(동치미)' 뿐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3개여월 동안 어머니께 고깃국을 손수 끓여 드린다.

참! 이상도 하지... 도시생활 동안 집밥을 해 먹어본 적이 없고 늘 사먹는 음식이라~ 요리는 전무한 상태. 

그렇다고 걷는 것조차 불편한 어머니께 밥상을 받는다는 것이 자식으로써 도리에 어긋난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실생활 요리비법을 전수 받기 시작했고, 거기에 인터넷을 적극 활용해서 어머니를 위한 나만의 요리비법을 만들었고, 지금은 기본적인 요리는 거뜬히 해내고 있다.
 

방파제 낚시를 하고 있는 진성영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소재) ⓒ석산 진성영

어머니의 밥상에 신건지 대신 따뜻한 탕(湯)을 올려드리기 위해 3일에 한번 꼴로 바다의 강태공이 되어 100% 성공률을 확신하는 밤낚시를 시작했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내려 온 길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내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살아 계시는 동안 어머니와의 많은 추억거리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하루를 1년처럼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아침식사를 차려드리는 동안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건넸다

"아들아! 내 평생 밥상은 '밥과 신건지' 뿐이었는데 이렇게 매일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니 말년에 큰 호사를 누리는 것 같구나"

난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껏 아버지를 보내 드린 지 10여년이 지난 동안 어머니께서는 혼자 그렇게 식사를 하고 계셨다는 게 못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저녁을 일찍 챙겨드리고 내일 아침 탕거리를 위해 바다로 가는 거북이...

어머니는 창문 틈으로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아마 다시 바다에서 돌아오는 순간까지 마음 졸이고 걱정하며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다.

그 누군가는 행복한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거다. 온 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냥 이런 지극히 평범한 내 삶이 너무 평범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게 행복한 삶“인 것이다.


**윗 글은 강복덕 어머님의 ‘뇌경색 판정’ 이전에 미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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