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은 정의로운 국가로 가는 첩경

정치 체제가 국민성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또 어떤 교육제도에서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국민성도 변한다고 한다.
오랜 교직 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단혈실도 아픈데 자꾸 북한을 정권 안보용으로 활용하여 국민을 불안에 몰아넣으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하는 말은 모순이요 이율배반이다.

▲ ⓒ민중의소리 갈무리

안보는 정부가 책임지고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자신감을 보이며 국민들은 안심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요 국가를 보존하는 첩경이다.

걸핏하면 북한의 위협을 들먹이면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희망을 빼앗는 일이요 국민들의 심성을 거칠게 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보고 있으면 국회는 청와대 눈치나 보면서 건성건성이요 관료들은 기회만 있으면 남이야 죽건 말건 벼랑으로 밀치는 형국이다.

언론은 그런 정부를 위해 국민을 속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국방과 정보기관은 끝없이 북의 침략 운운하며 남과 북의 갈등을 키우고 있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북한 위협을 들먹이며 국가 불안을 조성하여 국민의 삶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그리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여지없이 “종북” “좌빨”로 매도하며 오히려 국가의 불안을 조장하는 세력이라고 몰아친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전쟁의 불안을 조성하면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겁박하는 나라에서 국민들이 편안할 수 있을까? 언제나 피난을 염두에 둔 국민들이 백년대계를 만들며 천년 후에 남을 희망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이런 나라에서 적의 침략에 맞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나서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왜 자신있게 “안보는 정부가 우리가 책임지겠으니 국민들은 불안해하지 편안하게 살라!”는 말을 못하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 ⓒ민중의소리 갈무리

늘 불안한 위기의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나라. 정의도 없고 신뢰도 없는 나라.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가 지배하는 나라.

이런 나라를 피하기 위해 소수 정치 경제적 특권층은 외국에 집을 사두고 시민권을 따두려고 기를 쓰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서민들에게 언감생심. 그렇다보니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에서 백성들은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영악한 사람들은 신의 힘을 빌거나 다중의 위력에 의지하여 목숨을 연명하려는 기회를 잡으려 한다.

막된 인간들은 ‘너 죽고 나 잘 살자!’를 이기심을 가슴에 담고 같은 처지의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노렸다. 어리숙한 국민들은 ‘빵을 키워 나눠먹자’는 그럴듯한 말에 속아 “기다리라!”는 정부의 말을 구원의 신호인양 받들고 목숨을 구걸하는 노예의 신세로 전락했다.

국민들을 뜨내기처럼 만들고 어질고 예의바른 심성을 포기하도록 가르쳤던 정부.
세월호 대참사는 그런 현 세태의 반영이었다.

불법 선체 변형과 안전을 무시한 과적도 탐욕스러운 불안한 시대의 반영이요, 아이들을 두고 먼저 도망친 선원들의 행위나 침몰해가는 선체 안에서 유리창을 긁으며 구조를 요청했던 아이들을 외면한 해경의 태도역시 일상에서 길들여진 이기심의 다른 양태였다.

거기에 선체 변형을 눈감아주고 과적을 묵인해준 정치꾼들과 관료집단이 지배하는 부실한 국가가 제 나라 국민 304명을 수장시킨 대참사였다.

그러나 아무도 대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국가개조 하겠다더니 선원을 구속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세월호 대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국회 농성에도 새누리당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끌었다.

▲ ⓒ민중의소리 갈무리

국회내에 겨우 특위가 꾸려 졌으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팽목항 방문에도 불참하는 등 벌써부터 노란 싹수를 보이고 있다. 304명이 죽었는데 겨우 선원을 구속하고 해경에게 책임을 돌리고 방송은 유병언이라는 인물과 숨바꼭질하는 장면이나 보여주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국민 앞에서 무한 책임과 성역 없는 수사를 공언했던 그네만 우습게 된 꼴이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16명의 실종자들이 남아 있는데 지방 선거를 빙자해 세월호 대참사 사실과 가족들의 아픔을 지우고 있다.

거기에 일부 교회 목사들은 “그네의 눈물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백정”이라거나, 세월호 참사를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했다는 소식이다.

그네는 그 목사의 교회에 가서 유병언을 비난하는 말로 화답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아무리 다를 수 있다지만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수장시킨 참사를 생생하게 보고도 내 가족의 죽음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게 막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을 ‘미개인’ 취급했던 어떤 후보자의 아들 그 아들을 감싸며 “틀린말은 아니다”라고 했다는 어떤 목사, 그리고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요 그래서 대학교수들이 성명서를 내는 소나 개들이 하는 짓이라고 폄하했다는 서울대 교수, 국민을 백정이라고 했다는 목사의 설교에 참석한 그네를 보면서 그네와 새누리당 그리고 일부 목사와 교수라는 자들의 의식 저변에 흐르는 일련의 공통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금의 현실이 꼭 누군가의 작위적인 연출 같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 세월호 대참사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방치함으로써 죽게 한 어른들의 살인행위가 본질이다.

무릇 정치한다는 인간들은 3백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런 죽음이 왜 누구에 의해 자행된 살인인지 물어야 한다. 자신의 과실은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배가 적의 폭격에 침몰한 것도 아닌데 죽음 사람은 있어도 가해자가 없다고 한다면 세상에 누가 믿을 것인가. 날이 가고 달이 바뀐다고 있었던 세월호 대참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책임을 묻는 질문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세월호 대참사 49일째라고 한다. 실종자로 남아 있는 아이들의 부모 심경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겁다.

하지만 아직 모든 영령들의 명복을 빌지 않겠다.책임지겠다던 대통령이 말이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자식들의 아비된 자로서 그저 미안할 뿐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지방 선거일. 유권자들이 세월호 대참사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가늠하는 날이다.

자칫 선거의 판세에 따라 세월호 대참사도 책임 규명은커녕 말장난만 하다가 유야무야 묻히고 마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왜 자꾸 한숨만 나오는지…!

20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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