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입대할 때 머리를 빡빡 깎였다. 그만한 나이에 온갓 스타일로 만지고 광내던 머리털이 이발기의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무릎아래 뚝뚝 떨어진 날 눈물도 함께 떨군 기억을 가지고 있다.

교도소에 들어가도 머리를 깎였다. 그럼 여성도 머리를 깎는가. 속세를 떠나 부처님께 귀의할 때 머릴 깎는다. 지난 27일 오후 3시, 여자가 머리를 깎는 가장 가슴 아픈 현장을 봤다. 여성이 저렇게 삭발을 하며 우는구나.

이 땅에 단발령이 떨어져 양반이 상투를 잘라야 했을 때 그들은 목을 잘릴지언정 상투는 못 자른다고 항거를 했다고 한다. 몇 명이나 목을 잘랐는지는 모르지만 신체발부수지부모 [身體髮膚受之父母]라고 머리터럭 하나 훼손되도 불효로 생각됐으니 요즘 삭발하고 분신하고 투신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드려 질까.

여성은 머리를 가꾸는 데 그처럼 정성일 수가 없다. 그런 머리를 자기 스스로 깎았다. 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얼마 전 야당의 여성의원이 머리를 삭발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이다. 물론 절실했지만 보는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드려 졌을까. 국회의원은 정치의 전문가요 또한 책임을 져야 할 주체다. 그러나 이번 여성의 삭발은 다르다. 한과 분노의 삭발이다.

차마 입으로 표현하기 고약한 인터넷 댓글이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알아야 한다. 어느 가정이든 기르는 아이들은 있다. 부모가 밉다고 자식에게 저주를 퍼 부을 수는 없다. 애들이 무슨 잘못인가. 열 살, 망치부인 딸에게 퍼부은 저주는 차마 말하기 그렇다.

[‘납치 성폭행. 성장 후에는 운동권에게 조낸 XXX하겠지. 토막살인 등 등’] 댓글을 올린 사람은 ‘좌익효수’라고 불리는 2명의 국정원 직원들이라고 했다. 그 중 한 명이 오피스텔 댓글녀로 유명한 ‘머풀러 김하영’이라고 했다. 이들 댓글을 모두 상급자들에게 보고가 됐을 것이다.

상급자가 누구인가. 어른들이다. 딸자식 기르는 어른들이다. 차라리 백주에 벼락을 맞아 죽으라는 게 낫지 어린애에게 이런 성폭력 욕설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원세훈이도 남재준이도 자식들을 기를 것이다, 댓글만 읽은 나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데 부모야 오죽하랴. 국정원 직원들의 심장은 피가 안 통하는 철심장인가.

이조실록을 보면 역사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소름이 끼친다. 권세를 누렸다는 인간들의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후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엄청난 과오들이 낱낱이 적혀 있다. 먼 훗날 오늘의 역사는 다시 기록이 될 것이다.

손댈 수 없는 실록으로 대통령들이 기록될 것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의 실록을 후손들이 펼쳐 들 것이다. 그 안에 원세훈과 남재준의 기록도 끼어 있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하기에 ‘좌익효수’도 기록이 될지 모른다. 문득 생각해 본 것이다. 좌익효수의 하나인 김하영은 아직 결혼도 안 했다. 역지사지란 말을 하는가.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자신의 딸에게 누가 그런 저주를 퍼 부었다면 어떻겠는가.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미워할 수도 있다. 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에 한해서다. 어린 딸애가 무서워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삼중으로 자물쇠를 채운다니 이게 어디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인가. 딸애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내 자식 소중한 줄 알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것이다.

김한길 대표에게

"저 하나 머리를 깎는다고 철옹성 같은 민주당 지도부와 김한길 대표가 꿈쩍할까 싶지만, 어린 딸의 공포와 두려움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삭발한다"

그는 민주당 지도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현장을 중계한 ‘팩트TV’의 기사를 옮긴다.

"'좌익효수'는 두 명 이상의 국정원 직원이 공동으로 사용한 아이디이므로 조직적 범죄"라고 밝힌 뒤, "딸이 문을 삼중으로 잠그고 혼자 있지도 못하며, 하루도 제대로 편히 못잔다"고 울먹였다. 이 씨는 여론이 악화될수록 야당이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통령에게 개혁을 요구해야 하지만, 김 대표는 ‘소통이 안 된다’는 말 한 마디와 ‘특검을 안 한다’는 약속을 했을 뿐이라며, 그게 야당 대표가 할 일이냐고 질타했다.

또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안몰이와 빨갱이 사냥이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한 뒤, 호남, 서울, 수도권을 비롯해 여야 박빙 지역의 후보들이 민주당 지지율 때문에 피가 말라간다면서, "지도부가 국정원 문제를 비롯한 이슈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의원들이 비판하자, 지도부를 비판해서 지지율이 떨어진단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밝혔다.

이 씨는 "국회의원이나 당원이 대표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는데도 당내 비판여론을 인정하지 않는 대표가 민주당 대표냐"고 일갈한 뒤, "수 십 년 동안 전통으로 지켜온 당 깃발과 당 색을 한 마디 상의 없이 멋대로 바꾸는 등 민주당이 개인 정당이냐"면서, 어떻게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과 '민주'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아무도 없는 오피스텔 방에서 자기 혼자서 댓글을 올리면서 ‘댓글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문대로 70대 1인지 700대 1인지는 몰라도 엄청난 경쟁을 뚫고 국정원에 들어 간 최고 명문대를 나온 김하영이 ‘성폭력’따위의 어휘를 자판에 두드리는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마음 놓고 끄적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아니다. 자신의 그 모습을 양심은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컴퓨터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 또 하나의 김하영은 보이지가 않던가.

아무도 없는 깊은 밤, 잠들기 전 천정을 바라보며 뭔가 생각했을 김하영. 그의 머리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망치부인의 딸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자신의 댓글대로 성폭력을 당한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타났을까. 아아 그만 두자.

중앙정보부(국정원)와 애국심

망치부인(이경선)과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방송은 들었다. 방송 들으면서 미워하는 사람이 참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미워 할 줄은 몰랐다. 검색을 해 보니 망치부인 방송은 이미 7년이나 됐다고 했다. 독재와 비민주적 정권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용기도 놀랍다. 구속도 되었다. 그 내막을 일일이 어찌 다 알랴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망치부인이 자신을 던져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앞으로도 투쟁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중앙정보부와는 반공드라마의 효시같은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오래 쓴 인연이 있다. 전적으로 자료제공도 받았고 원고료도 많이 받았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투철한 국가관의 소유자들이다. 중앙정보부의 변천사는 국민이 더 잘 안다. 그리고 이번 대선 개입으로 돌이킬 수 없는 위상을 정립했다. 불행한 일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한다는 ‘박정희 정권’이니 반공은 그렇다 치고 야당탄압과 민주인사 억압과 부정선거는 왜 하는가. 부정선거와 반공이 함께 가야 하는 것인가.

한 번 부정선거를 하면 부정은 연속된다. 부정선거로 집권한 세력은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정이 들통 날까 두려워서 계속해 부정을 저지른다. 특검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부정선거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시는 저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국정원이라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이 두려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계속되는 부정선거는 영구집권을 의미한다.

망치부인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뚝 떨구며 자기 손으로 머리를 깎을 때 그를 보는 많은 눈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뒷머리를 깎을 수 없어 남의 조력을 받으며 삭발을 하는 망치부인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것은 애국심이었을까 저주였을까. 애국심이 없다면 왜 저주를 하는가.

망치부인이 민주당 지도부와 김한길 대표에 대해 질타하는 절규가 그냥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뿐일까.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도 함께라고 믿는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부모의 마음과 조국을 위해 생명을 던지는 것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왜 망치부인은 청와대 앞이 아닌 민주당 당사 앞에서 삭발을 했을까. 김한길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딸을 위한 분노이든 파괴되어 가는 민주주의를 위한 눈물이든 그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과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아름다운 꽃이 되어 이 땅에 민주주의로 피어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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