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지 않으면 갈 길도 모른다

바둑이 끝나면 복기(復棋)라는 것을 한다. 이기던 지던 복기 자체가 공부다. 어디서 잘못 두었는가. 어디가 패착이었는가. 복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복기는 바둑에서만 필요한 것일까.

우선 이번 청와대 기자회견부터 복기해 보라. 대충만 복기를 해도 청와대 출입 기자들을 얼마나 말 잘 듣는 애완견으로 길러놨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 정권 언론정책에 어떻게 치명상을 입힐지 잘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는가. 잘 한 일과 잘못한 일이 수도 없이 많다. 겸허하게 한 번 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을 하고 잘 한 일이 있으면 더 잘하도록 가슴에 새긴다. 그래서 경험은 좋은 스승이라고 하지 않던가.

바둑 두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고 한다. 거의 다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한다. 그래서 죽었다 살아나는 것은 바둑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거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살아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복기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잘못된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제 절망에 가깝다. 역사는 전진한다고 하는데 한국의 역사는 후퇴다. 퇴행의 한국역사가 그리워서 돌아가는 것일까. 그립지도 않고 다시 와서도 안 될 과거다. 부정선거로 시위하다가 죽은 학생들이 불쌍하다. 4·19, 5·18, 6·29, 박종철, 이한열의 얼굴이 선하다. 다시 와서는 안 될 비극의 역사다.

지난 대통령 선거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국민들의 공통된 인식이 되었다. 공정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선거 과정을 다시 복기해 본다면 선거가 얼마나 더럽게 치러졌는지 잘 알 것이다.

얼마 전 3·15부정 선거의 주범 중에 하나인 최인규의 처형 직전의 모습이 트윗에 올랐다. 지금 이 시대가 최인규의 얼굴을 되새겨야 할 정도로 심각해 졌다는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왜 이명박 치하에서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을 했을까. 임기만 끝나면 그만인데 왜 원세훈이 국정원을 동원했을까. 공개된 댓글만 2천2백만이다. 이명박이 박근혜 후보와 100분 간 단독회담을 했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나 돈다. 단독 회담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 뭔가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의혹은 자꾸만 커진다. 의혹이 문제다.

### 박근혜와 이명박

전직 언론인들과 저녁 자리다. 거의 언론사 간부출신이라는 나름대로 경륜을 지니고 있다. 거기서 나온 게 바로 칼럼 제목으로 쓴 <복기할 줄 모르는 박근혜 바둑>이다. 감시자도 없고 겁낼 사람도 없다. 자유 분위기다. 지난 1년 박근혜 정권에게 학점을 주라고 했다. 더구나 정권 출범 후 최초의 기자회견을 한 다음이어서 더욱 궁금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하위 학점이다.

사람은 자기가 걸어 온 길을 자주 돌아본다. 남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한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입장이라면 더 하지 않겠는가. 한국의 경우 딱하게도 존경받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특히 해방 후에 등장한 지도자의 모습은 국민의 환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너무 오래 된 얘기니 말자. 그러나 박정희, 전두환은 덮을 수가 없다. 그들이 저지른 반인간적인 악행은 용서가 안 된다.

오늘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평가다. 그러면 반드시 등장해야 할 인물이 이명박이다. 그들의 관계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지금 들어난 문제만으로 그냥 덮을 수가 없다. 왜냐면 지난 대통령 선거부정을 이명박이 저질렸으며 국민들은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개입해서 전 공무원이 협력하다시피 한 부정선거는 옛날 자유당식 투표함 바꿔치기나 무효투표 대량생산 같은 원시적이 아닌, 보다 고도화된 부정이었다. 이른바 댓글 부정이다. 이 역시 긴 설명이 이젠 필요 없을 것이다. 이명박의 부정선거 지시여부는 결국 가려지겠지만 이명박이 대통령 재임중에 저지른 정치를 복기해 보면 대통령의 나라 말아먹기가 저렇게 쉽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특히 자신이 재임 중 저지른 비리를 감추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랴 하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이명박의 경우, 흔히 4대강을 망친 것을 최고의 망국적 행위로 보고 있으나 그것은 일부분이란다. 그는 이 땅의 모든 정상적인 것들을 비정상으로 엎어 버렸다. 아무리 눈 씻고 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고 언론을 완전히 장님 벙어리로 만들어 놨기에 국민들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법원에서 연달아 무죄가 선고되는 언론관련 판결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광우병 관련 ‘PD수첩’의 조능희, 김보슬에 대한 징계도 무효판결이 내려졌다.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 시절에 청와대에서 100분 단독면담이 있었다. 이와 관련 이상돈 교수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다. 이상돈 교수는 오늘의 상황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했다.

질문 <이런 상황을 만든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뜻인가.>

"그럴 가능성이 많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 정권과의 관계에서. 2012년 9월 청와대에서 만나지 않았나. 짐작컨대 박 대통령은 듣고만 왔겠지. 그런데 전 정권과 갈등이 처음 불거진 사안이 4대강 사업이다. 감사원 2차 감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도 쎄게 얘기했다. 그런데 이재오 의원,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이 한 마디씩 하고 난 다음에는 흐지부지됐다. 그런 것을 보면 뭔가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또 하나는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왜 특검을 받지 못하느냐다. 특검만 받아주면 깨끗하게 털어질 문제인데."

질문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직결된 사안인데 검찰이 적극적 의지를 보인다면 이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을 수도 있겠다.

"해외자원개발 문제는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 잘 안 보여서 그렇지 규모가 더 큰 문제다. 실종된 돈의 액수는 더 클 것이다. 핵심은 이 전 대통령과 전 정권의 핵심인사들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문제를 MB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봤다. 예단할 수 없지만 지켜봐야지>

이명박의 운명은 박근혜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나를 건드리지 말라. 다친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인다는 의혹이다. 아니 의혹이 아니라 실제라고 국민이 믿는다.

### 다시 권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기

남의 인생을 내것으로 삼고 복기를 해 보자.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것이다. 우선 이명박의 인생을 복기해 보자. 어떤가.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명박은 대통령을 했다. ‘정직’을 생명처럼 여기라는 모친의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 왔다는 이명박이란 인간의 인생이 대통령을 했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성공한 인생인가.

박근혜라고 하는 인생이 대통령이 됐다. 그의 인생이 비록 대통령이 됐다 해도 파란만장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인생이다. 그것은 대통령이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역사에 남을 위대한 정치인으로 기록되느냐. 그가 지나 온 인생을 복기해 보면 대답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정치인생에서 성경처럼 외우던 좌우명이 있었다.

‘신뢰는 정치인의 생명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않고 한 번 한 약속은 생명을 걸고 지금까지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걸 정도로 그는 신뢰와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국민들은 그를 지켜봤다. 그리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된 후의 그가 보여 준 언행은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약속은 다 버렸고 신뢰는 무너졌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더욱 힘들다.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가장 필요한 조건은 신뢰다. 이미 무너져 버린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둑처럼 복기를 하는 것이다.

어떤가 만족할만한 바둑이었는가. 취임한지 1년이 되는데도 부정선거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대선공약은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참하게 버려졌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모이는 청계광장과 서울광장의 시국선언 인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급기야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분신자살을 하기에 이르렀다.

작심을 하고 1년여 만에 한 기자회견은 조롱거리로 기록됐다. 청와대 애완견만 양산한 것이다. 왜 이 지경이 됐는가. 뒤를 돌아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 경찰 인사에서도 표가 난다. 줄줄이 승진, 줄줄이 좌천이란 말이 예사롭지 않다. 이래서는 칭찬 못 받는다.

### 처음부터 다시

사람이 바뀌면 그를 보는 시선들도 바뀐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공약파기에 대한 구구한 변명은 치워야 한다. 공약 못지켜서 죄송하다고 국민에게 사과해라. 솔직할수록 좋을 것이다. 당선만 생각하고 가능하지도 않은 공약을 했다고 솔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남에게 핑계 댈 것 없다. 모든 게 자신의 과오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슨 소리로 변명을 해도 국민들은 속셈을 안다. 이 때야 말로 정직한 고백이 신뢰회복의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이다. 신뢰는 백만의 원군이다.

주위에 문제인물들을 정리해야 한다. 가혹하지만 도리가 없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무리들을 멀리해야 한다. 저항이 심할 것이나 다 털어 놓고 국민에게 사과한 다음에는 겁낼 것이 없다. 이때야말로 박대통령의 장기라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들이 저항을 해도 국민은 대통령 편이 된다.

언론을 길드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조·중·동이 지금은 말 잘 듣는 충견같지만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다 겪어보지 않았는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애완견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금 속이 얼마나 뒤틀려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속 있는 기자들 같으면 출입처 바꿔 달라고 회사에 요구할 것이다.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박정희 대통령의 원죄다. 국정원 개혁은 물론이고 특검도 받아야 한다. 겹 낼 거 없다. 국민을 믿으면 된다. 대통령의 민주화 의지와 개격의지를 국민이 확인한다면 그 보다 더 믿음직한 원군이 어디 있겠는가.

이명박의 비리를 밝혀야 한다. 4대강 의혹은 물론 해외에서의 비리도 확실하게 규명해서 처벌받을 인간은 가차없이 처단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저항이 있어도 지금 이 상태로 밀고 가면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대통령 노릇 제대로 못한다. 5년을 견디지 못한다.비상사태 선포하고 계엄령 내리고 국회해산하고 대학교 교정에 탱크 주둔시키고 정치할 것인가. 독재를 엎었던 민주화 세력들의 궐기가 보이지 않는가. 청소년들도 나섰다. 차지철 말대로 탱크로 밀어버릴 것인가.

이제 임기는 4년 남았다. 악정으로 4년은 버티지 못하지만 선정으로는 좋은 정치의 꿈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나도 훌륭한 대통령 박근혜라고 역사가 기록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지금이라도 국수급 고수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둔 정치 바둑을 복기해 봐야 할 것이다. 인생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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