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자기도취

### 안철수와 ‘무릎팍도사’

안철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황당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새정치’의 기수며 아직 생기지도 않았는데 일부지역에서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보다도 두 배 이상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의 대표를 묻는다면 이상하지 않는가. 그 정도로 안철수는 지금 국민의 관심 인물이다.

별로 영양가는 없지만 민주당의 김효석 이계안이 탈당, 가세했고 결별했던 윤여준도 다시 결합을 한다. 이회창,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을 거쳐 다시 안철수에게 돌아 온 윤여준은 안철수가 달라졌다고 한다. '집요하고 인상이 강인해 졌다'고 한다. 얼마나 '집요하고 강인해젔는지'는 윤여준이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의 홀대가 이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좌우간 안철수는 기분 좋고 더욱 초라해 진 것은 민주당이다. 싹이 노라니까 떠난 것이다.

▲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12월 26일 광주엔지오센터에서 새정치추진위원회 설명회에 참석하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광주인

사실 안철수는 정치적으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IT와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 발명가로 돈 많이 번 의사 출신 과학자였다. 그런 안철수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놨고 바이런이 하루 밤 자고나니 유명인이 됐듯이 안철수 역시 벼락스타가 됐다. 사람 팔자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을까.

어떤 기자와 안철수에 대한 말을 나누던 중에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안철수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강호동의 ‘무릎팍도사’라는 것이다. 아니 무릎팍도사라니. ‘무릎팍도사’가 재미있는 프로인 것은 맞지만 이것으로 안철수가 정치를 결심했다면 아무래도 안철수를 너무 가볍게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설명을 듣고 나니 아하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동은 뛰어난 개그맨이다. ‘무릎팍도사’는 인기 있는 프로였다. 출연을 한 인물들의 인기는 늘 올랐다. 안철수가 왜 무릎팍도사에 출연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출연을 한 후 대단한 화제가 됐다. 나중에 방송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손해 난 것 없는 대박이었다.

아마 안철수 자신도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기라는 것이 별거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머리가 좋다. 그리고 긴 설계에 들어간다. 나이도 젊다. 한 번 해볼만한 일이다. 가다가 안 되도 대단한 손해 없다. 돈도 있고 기술도 있고 언제든지 되돌아 갈 자리도 있다. 거기에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 박원순과 안철수

박원순과 안철수. 두 사람의 관계는 오늘이 있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박원순 보다 훨씬 지지율이 앞섰던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를 사퇴한 극적 사건은 박원순도 안철수도 잃은 것 없는 대박이었다. 그것으로 안철수는 대의와 명분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의혈남아로 부각됐다. 그리고 이어서 대선출마 선언은 안철수로 하여금 확실한 지도자 반열에 올려놨다. 친구 말대로라면 대단한 ‘무릎팍도사’였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의 정계투신 동기가 무릎팍도사 였든 아니든 오늘의 안철수는 한국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더구나 지금은 국회의원이 아닌가. 엇그제는 측근들을 데리고 명동을 누비며 새정치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안철수는 이제 대한민국 차세대 지도자의 반열에 들어섰다. 지금의 추세라면 6월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제칠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한길의 민주당이 저렇게 죽을 쑤고 있는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제 안철수의 행동은 국민의 관심사다. 또한 그의 과거도 다시 한 번 재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인간이 걸어 온 길은 그의 이력서다. 발자욱이 남긴 흔적은 그의 인생이다. 과연 안철수는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 ⓒ광주인

안철수는 어떤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을까. 그의 행동을 보면서 국민들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느낌이 들지는 않을까. 박원순과의 장난 같은 담판은 상식을 뛰어 넘는다. 지금에야 느끼는 것은 계획적인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서울시장이 아니었다.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몸 던지지 말자. 박원순을 미끼로 얻을 거 얻고 물러나자. 솔직히 얼마나 많은 이득을 보았는가.

대통령 출마도 그렇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문재인과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최대한으로 밑천이나 뽑자. 다 챙겼다. 그러나 몇 가지 미치지 못한 생각이 있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빤히 보이는 줄다리기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어리석지가 않다. 안철수 전략의 가벼움을 알았다. 안철수가 최선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면 문재인은 당선이 되었을 것이다. 국정원 댓글은 나중 문제다. 그렇다면 왜 안철수는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것일까.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차기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차례가 안 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재인이 떨어져야 다음은 자기 차례가 된다고 믿었다. 그것이 바로 한 때 말썽이 난 ‘지위보장요구설’이라고 생각한다.

후보사퇴를 하지 않으면서 밀고 당기던 안철수는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후딱 후보직을 사퇴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사퇴의 재판이다.

국민들이 묻는다. 안철수가 문재인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지원을 했는가. 누구도 말을 아낀다.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문재인이 아니었으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앙금이 그의 발걸음의 힘을 뺀 것이다. 서운함을 왜 모르랴. 그러나 최선을 다 하지 않음으로서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인간으로서 소중한 것을 잃은 것이다. 신뢰다.

### 안철수의 옆을 보면

요즘 민주당 꼴이 말이 아니다. 막말이라고 화내도 할 수 없다. 구정물 맞은 상가 집 개다.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는 똥친 막대다. 이제 안철수도 민주당 알기를 시장판 동냥아치다. 민주당이 너무 불쌍한가. 그러나 현실인 걸 어쩌랴. 여론조사가 믿지 못할 것이라도 민주당 보다 배 이상으로 높다. 민주당의 안방이라는 호남을 휘젓고 다닌다.

그 뿐이 아니다. 올망졸망 조랑말만 오글거리던 집에 떠났던 윤여준이 다시 돌아온다. 하기야 김한길의 민주당을 어떻게 제 정신 가지고 지지한단 말인가. 늙은 정치철새라고 하지만 윤여준의 귀환이 이해가 된다.

김한길이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화를 낸들 어쩌랴. ‘소경 개천 나무라면 뭘 하나. 내 눈 먼 탓이나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는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에게 고맙다고 해야 한다. 어느 누가 김한길 만큼 안철수를 도와 줄 수 있단 말인가. 당의 대표는 선박으로 치면 선장이다. 선장이 뱃길도 모르고 우왕좌왕 헤매면 아무도 그 배 안탄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에 누가 탄단 말인가.

이제 민주당의 선장이라는 김한길의 평가는 바닥을 쳤고 더 내려 갈 곳이라고는 당 대표직 사퇴다. 그 덕을 보는 게 바로 안철수다. 민주당 사상 지금처럼 지지율이 바닥을 긴 적이 없었다. 특검쟁취에 대표직을 건다던 김한길의 결단은 잠꼬대였고 천상 국회의원들이 해야 하는데 이들 역시 용기하고는 인연이 없는 인물들이니 조경태 한테 부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민주당의 갈 길은 너무나 뻔하다. 6월 지방선거에서 쪽박 차고 당의 문을 닫던지 저마다 문전걸식 나서야 할 것이다.

### 안철수의 자기도취

안철수가 지금 고무되어 있는 이유는 호남의 민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이 내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어떤가. 신문 보기가 두려울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손발이 떨리고 간이 오그라들 것이다. 텃밭에서 창당도 하지 않은 안철수에게 밀리다니,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김한길은 어떤가. 질책은 겸허히 받겠다는 지극히 뻔뻔한 자세다. 갈 때까지 간 도망자의 자포자기 같다.

중앙일보 1월1일자 여론조사는 민주당 지지율이 안철수 당 보다 2% 높고 2%p 이상 높은 곳이 광주, 전남, 전북, 강원, 충북, 제주 등 6곳이다. 그 중에서 호남에서 격차가 컸고, 특히 전남, 전북에서는 2배 이상 높았다. 이것은 안철수 바람의 원천지가 호남이라는 그간의 언론의 보도와는 180도 다른 것이다. 안철수는 기분이 나쁘겠지만 민주당이 좋아 할 것인가. 철 들어야지.

안철수의 호남지지는 민주당과 김한길에 실망한 호남인들이 보여 준 채찍의 성격이 가장 크다. 민주당이 제대로만 해 주면 지지율 같은 것은 하루 밤 사이에 달라진다고들 한다. 안철수 현상은 바람이며 거품이라는 것이 현지의 여론이이지만 그것도 민주당의 할 탓이다.

안철수는 민주당을 낡은 정치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교만한 지적이다. 겸손은 손해 날 것이 없는 무기다. 그러자 민주당은 안철수를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영입세력은 낡은 세력 중에서도 낡은 세력이라고 반격했다. 하기야 민주당에서 밀려 난 사람들이니 그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긴 윤여준도 왕철새다. 서로 잘 들 싸운다. 새누리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 ⓒ광주인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말한다. 왜 하필 호남이냐. 호남에 가서 민주당이 흘린 부스러기 주워 먹겠다는 것이냐. 그게 안철수의 자신감이냐. 정치는 바이러스 퇴치가 아니다. 새누리와 싸워라. 땀 흘린 만큼 대우 받는다. 백면서생의 정치와 그를 따르는 실패한 낭인들이 딱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정책네트워크의 영남권 실행위원은 모두 41명, 이중 울산, 대구 등 경북지역의 실행위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안철수의 신당은 민주당과 호남에서 갈라먹기를 하자는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영남출신에다 부산이 고향인 안철수가 도전할 곳은 호남이 아니라 영남이다. 겁이 나는가. 그렇다면 정치를 집어 치워야 할 것이다.

국민은 호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남에도 있고 이들은 모두 함께 해야 할 국민이다. 안철수가 어디에 정성을 드리든 그것은 그의 마음이나 초라하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그가 내 세운 것이 ‘새정치’ 아닌가. 우리 정치의 가장 퇴행적인 모습과 심지어 망국적이라고 까지 하는 영,호남 갈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할 일은 안철수는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하고 있는 일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서 영감을 얻어 정치를 했던 ‘바이러스 퇴치’의 전문가로 악성 바이러스 같은 정치를 정화시키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던 정치는 정도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새 정치가 정도를 벗어난다면 그건 ‘새정치’가 아니라 ‘헌정치’며 안철수 자신이 버려야 할 유산이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헌정치’를 벗어나는지 국민은 지켜 볼 것이다.

안철수가 좌판을 어디다 벌리던 그의 마음이지만 장사꾼은 돈 벌이 잘되는 곳에 좌판을 펼친다. 안철수는 아마 호남이 장사하기에 수지가 맞는 명당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나 자칫 만만히 보다가는 단방에 쪽박을 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칫 야당분열 세력이라는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임도 명심해야 한다. 하기야 박정희 묘소에 참배를 하며 역사의 교훈을 배운다는 그의 처신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말하는 안철수는 과연 한번이라도 박정희 독재시절의 아픔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안철수는 알고나 있는가. 박근혜 하야와 특검을 외치며 분신한 이남종 열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이제 안철수가 해야 할 일은 명동을 돌아다니며 ‘새정치’ 팜프렛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독재자를 참배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정치 여정에서 자신이 한 일은 무엇인가.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주었는가. 뜬 구름 같은 인기에 매몰된 ‘구태정치인’은 아니었는가. 자기도취에 매몰된 동키호테는 아니었는가. 냉정하게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진실 이상으로 신뢰를 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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