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은 무슨 재주로도 못 막아


'한 손에 막대잡고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막대로 막고 오늘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때 충신 우탁의 탄로가(歎老歌)다. 늙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겠지만 우탁의 ‘탄로가’는 무척 해학적이다. 세상에 멀쩡한 두 가지 거짓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늙은이 빨리 죽고 싶다는 것이고 노처녀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것이란다. 모두가 세월이 약이다.

12월 31일. 또 한 해가 간다. 제야의 종을 울린다고 종로 보신각 앞에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릴 것이고 동해안 정동진에는 동해에 떠오르른 새해 해 맞이를 하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올 한 해의 소원을 빌 것이다.

지나간 과거는 아름답게 채색이 된다지만 진정 지난해는 지겨웠다. 갈등 증오 반목으로 지새운 한 해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새 해 한 해 무엇을 빌 것인가. 한 마디로 ‘안녕하십니까’ 소리가 일상어가 되지 않았으면 할 것이다. ‘안녕합니다’가 거짓이 아닌 세상이 되길 기원할 것이다.

시위진압 방석모를 쓰고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을 뿌리는 경찰과 ‘민주주의’를 외치고 ‘하야’와 ‘퇴진’의 함성이 울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전쟁이었다. 실종되는 민주주의를 붙들고 한탄하는 시민들과 ‘불통’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대통령과의 갈등은 이 땅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솔직하자. 지난 대통령 선거는 전혀 부정이 아니었다고 하는 국민이 있다면 이 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이 아니라고 해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도 분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할 2012년의 선거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6, 70년대로 되돌렸고 미래의 전망은 유신의 피 묻은 혀가 널름거린다. 이런 세상이 다시 올 줄 어느 누가 예측했겠는가.

생각 할수록 너무나 끔찍하다.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국민이 10만이라니 이런 정치가 어떻게 정상일 수 있는가.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가슴은 갈갈히 찢어진다. 이것이 바로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또한 지워지지 않는 우리들 미래의 모습이다.

### 역리가 순리를 넘을 수 없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원인을 모르는 어느 누가 있단 말인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주인공들도 원인을 안다. 알면서 외면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 순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순리가 무엇인가.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물은 흐르다 막히면 돌아간다. 억지를 쓰지 않는다. 물 흐르듯 하는 정치에는 무리가 없다. 그러면 평화다. 사과는 잘못을 용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잘못은 사과하면 끝난다. 왜 그다지도 사과에 인색한가.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이들 독재가 모두 사과를 거부했기에 비극으로 끝났다. 바로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지금 국민들이 외치는 함성의 원인 역시 인색한 사과에 있다. 정부가 말하는 ‘법대로’는 국민 불신의 상위개념이다. 법대로 했기 때문에 재판 하루만에 교수형을 당하는 사법살인이 있었고 지금 영화 ‘변호인’은 관객의 충혈된 눈으로 미어터진다.

법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양심의 판단이다. 상식의 판단이다. ‘법대로’라는 편리한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이른 바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순리를 어기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변호인’의 또 다른 주인공인 ‘부림사건’의 지휘검사가 당당하게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 모습을 떠 올리면서 과연 지식은 무엇이며 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비단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 뿐일까.

모든 갈등과 반목과 증오의 원인은 그들 당사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더 잘 안다. 국민의 행복을 국정운영의 제1로 삼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지금 국민들은 머릿속이 띵 하다.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국민은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지난 1년을 회상한다.

노인들과 청소년들의 자살율 순위가 어떻게 된다던가. 늙은이 100명 죽는데 자살자가 몇 명이라든가. 그런 것이 모두 대통령의 탓일 수는 없다. 그러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대통령의 탓일 수 있다. 그는 국민을 향해서 행복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기고 당선됐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득표에 문제가 있었다.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공정을 빼 놓는다면 선거는 있으나 마나가 아닌가. 거기에다가 그가 약속한 이른바 공약이라는 것은 지금 행방이 묘연하다. 국민은 그냥 기다려야 하는가.

하루에 피죽 한 끼를 먹어도 속이 편해야 한다. 서울광장에서, 청계광장에서. 국회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여의도 새누리 민주당 당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와 시민운동가와 어버이연합 어르신들도 모두 속이 편하지 않다.

니 속 편하지 않으니 니 책임이라고 할 것인가. 그러면 안 된다. 안되기 때문에 지금 세상이 온통 편하지 않은 것이다.

###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에도 물러서는 전략이 있다. 질 것이 뻔한 전쟁에서 오기로 버틴다는 것은 져도 좋다는 것이며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누구와 싸워 죽어도 좋다는 것인가. 이것은 노조나 정부나 마찬가지다.

“공공의 이익보다 나의 이익만을 관철하려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일류 국민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말이다. 백 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몇 마디 단어만 바꾼다면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부부싸움이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요즘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싸움이 끝나면 화해라는 것이 있다. 화해란 반드시 필요하며 화해가 없다면 폭탄은 언제고 다시 터질지 모른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과거는 교훈이다. 우리 국민은 독재의 처참한 경험을 했다. 눈앞에 다시 독재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걱정한다. 다시 독재가 시작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국민이 독재를 물리친 그 과정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죽고 죽이는 피 흘리는 싸움이다.

과거란 참으로 좋은 교훈이다. 얼마나 많은 비용을 처들인 과거라는 교과서인가. 독재는 반드시 망한다.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가시 성곽을 아무리 높이 쌓아도 세월은 간다. 탱크로 막아도 미래는 온다. 억지 부리지 말자. 순리를 따르자.

하늘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어기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만고의 진리다. 국민이 하늘이다. 함께 생각하자. 4년은 잠간이다. 오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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