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치고 ‘억’해도 살아난 민주주의다

‘총은 쏘라고 주는 것’이다. 이렇게 큰 소리 치던 이기붕은 4.19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이 쏜 총에 일가족 모두 비극의 최후를 맞았다. 그가 쏘라고 한 대상은 누구인가. 국민이고 민주주의다.

불의한 권력에 중독된 자들은 옳고 그름을 분간 못하며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무궁할 줄로 착각을 한다. 그것이 바로 비극의 출발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그랬다. 앞으로는 없을 것인가.

비극이 제 몸 하나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로 인해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은 죄 없는 국민이다. 결국 불의한 자들의 민주주의 파괴는 자신과 국민 모두를 파멸로 몰아 넣었다. 무덤을 판 것이다.

▲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미디어오늘 갈무리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양심적 지식인들의 한탄은 몸서리쳐지는 유신독재로 회귀하고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가 망가졌다. 국민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가 불법 부정선거였다고 믿는다. 종교인 지식인들이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연대회의를 결성했다.

처음 부정선거 시비가 불거졌을 때 국민들은 선거 후 통과의례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진실은 숨길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엄숙한 현실임을 알았다. 특히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들어나고 경찰·국방부·행안부·보훈처·재향군인회 등 등, 그야말로 정권과 연관이 있는 단체 모두가 불법선거에 관여했다는 엄중한 사실이 국정원 국정조사나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백일하에 들어났다.

마침내 남재준 국정원장도 ‘개인적 일탈’이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불법선거 개입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개인적 일탈에 국정원이 변호비를 지원해 주는 일탈을 범했다. 모순속에서 들어나는 진실, 이것이 죽어가는 민주주의에 비참한 모습이다.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벌어졌던 국정원 여직원 김아영의 댓글 작업은 그 진상이 밝혀졌으면 대통령 당선자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국민들 가슴속에 있던 선거에 대한 불복은 이제 공개적으로 들어나기 시작한다. 급기야 ‘선거는 무효다’ ‘박근혜 하야’라는 구호가 공공연히 외쳐진다. 세계대전 이후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은 이렇게 되었다. 얼마나 참담한 비극인가.

### 새누리당이 민주정당인가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합법적인 태두리 안에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자유당식 환표나 투표함 바꿔지키, 매표는 할수도 해서도 안되고 오직 정직하게 정책으로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공염불 공약이 되었지만 새누리당의 효자공약인 노인들에 대한 기초연금 월 20만원 지급이나 중증장애인 지원, 영유아 지원, 병역단축 등은 좋은 공약이었다. 이것이 정당이 해야 할 선거운동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일탈은 불법 부정의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이 수렁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려는가. 국민이 잊어줬으면 좋겠지만 절대로 잊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뻔질난 해외여행으로 그래도 지지율을 대충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나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새누리당은 잘 알 것이다. 국민들은 해외순방에 대해서도 납득을 못한다.

지금 산적해 있는 심각한 국내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과 소통하고 온 국민의 역량을 한대 모으는 것이다. 불법 부정선거에 대해 진상을 파헤치고 책임을 묻고 사과하는 것이다. 지금 해외에서 외치는 창조경제가 얼마나 공허한가. 외국어로 하는 외국에서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한국어로 하는 국민과의 소통을 국민은 원하는 것이다.

▲ 지난 2일 저녁(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프랑스 교민 촛불집회 ⓒ사진=황지영. 미디어오늘 갈무리

아무리 생각을 해도 박근혜 정권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이럴 수가 없다, 지나친 자신감인가. 근거 없는 안도감인가. 자꾸만 시기를 놓치는 것 같다. 역사는 그 자체가 교훈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을 돌이켜 보자. 구체적 사실을 지적할 필요도 없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집권 동안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발생했고 얼마나 많은 국민이 눈물을 쏟았는가. 그들이 눈물을 쏟은 이유는 오로지 민주주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사람다운 삶을 요구한 대가는 눈물과 고문, 실종 그리고 목숨까지도 포함됐다.

독재자들은 국민을 순한 양으로만 생각했을까. 때리면 꼬리를 사리고 낑낑대는 똥개 정도로 생각했을까. 그러나 착각이었다. 순한 양이 4.19 혁명을 일으켜 이승만을 객사하도록 했고 똥개로 취급되던 국민들이 부마항쟁으로 저항했고, 박정희는 참혹하고 치욕적인 삶을 마감했다.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전두환은 반란수괴로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았다. 그들은 역사의 순리를 거역했고 역사는 그들을 심판했다. 다시 한 번 역사의 준엄한 심판에 숙연해 진다.

국민들은 지금 역사의 후퇴를 보면서 유신으로의 회기에 몸을 떤다. 불법 부정선거는 이미 국민의 뇌리속에 깊게 새겨졌고 ‘불복과 하야’가 거침없이 입에 오른다.

편파수사로 야당정치인이 탄압을 받는다. 대선에서 48%를 득표한 야당 대통령 후보가 9시간 조사를 받는다. 범법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권영세는 어떤가.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편하다. 진보당에 대한 해산, 공무원노조 해산, 시민단체 해산 기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국민들의 가슴이 끓는다. 세계 언론이 시끄럽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르몽드, AFP 등 세계유력 언론이 한국 선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대통령에 외국순방도 덩달아 도마에 오른다. 국민들이 보기에 민망하기 짝이 없다.

공안정치에 대한 역사는 유구하다. 국민은 정치검찰이라고 한다. 정치검찰의 배후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정치권력이다.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도 이젠 진저리가 쳐진다. 국내 지식인들도 들고 일어났다. 국내뿐이 아니다. 세계적 석학인 ‘노암 촘스키’ 교수를 비롯한 ‘램지 크락’전 미 법무장관 등 117명의 진보적 인사들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통과를 규탄했다.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군사독재체제인 유신체제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대선 불법개입 문제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 정부의 전형적인 정치탄압이자 정치적 반대세력인 통진당을 해산시키려는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군사독재정부는 위기에 몰릴 때마다 '내란음모'를 조작해 정적을 제거하고 민주인사를 탄압했다. 유신 독재시대의 폐해를 반성하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 박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갈데까지 가지 말라

인간이 제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인류 역사의 줄기에서 보면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를 다 합쳐봐야 50년이 채 안 된다. 평생 독재를 했다 해도 얼마나 됐을까. 그들이 설사 훌륭한 족적을 남겼다 해도 역사는 그들을 독재자로 기록한다. 하물며 허물투성이의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훈장이 아니라 능멸이다.

자유당 정권치하에서 벼슬살이 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박정희 치하에서 권력을 휘두른 것이 자랑인가. 전두환의 철권에 빌붙어 국민을 억압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대의와 명분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를 수 있다. 역사왜곡을 하는 학자들에게도 이유는 있다. 유신헌법을 기초한 헌법 학자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열을 올리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확신범을 보는 것 같다. 문제는 대의와 명분이다. 대의와 명분은 궤변으로 설명이 안 된다. 자기 입맛대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검찰의 행태를 어떻게 공정한 법의 집행자라 볼 수가 있는가. 국회도 마찬가지다.

시류에 따라서 오락가락 하는 판단은 결국 자신에게는 오욕으로 남고 역사에는 죄인으로 낙인찍힌다. 하물며 반민주 세력으로 국민에게 지탄을 받는다면 자손들을 위해서도 할 짓이 아니다. 생각과 말은 자유라지만 상식의 틀을 뛰어 넘으면 비상식적 인간이 된다.

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 중 파리에서 ‘대선 개입 규탄 집회’에 참가한 국민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김진태 의원은 참가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맞느냐는 끔찍한 말을 했다. 법무부를 시켜 채증사진을 헌법재판소에 내겠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맞아’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갈데 까지 가보자는 말이 있다’ 절망적인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무서운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순리의 포기다. 악만 남았다. ‘부마사태’ 당시 ‘몇 만 명 탱크로 깔아버리면 끝난다’는 차지철의 말이나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이기붕의 말은 바로 ‘갈때까지 가보자’는 절망적 자포자기다. 끝이 오기 전에 멈춰 서든지 아니면 돌아서야 한다. 한 인간의 욕망이 국민을 고통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명박의 무지막지한 정치행태를 보면서 ‘민주주의에 위기’를 말 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지금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이는 박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국민은 어떻게 판단할까.

검찰의 이중잣대는 법에 대한 국민의 절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무성 조사와 관련한 이진한 지검 2차장의 거짓말은 뭔가. 검사는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게 검사들의 신념이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인가. 재판결과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정당해산을 헌재에 요청하고 시민단체 까지도 해산할 수 있도록 하겠단다. ‘갈데까지 가보자’는 결심을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말을 냇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니라고 할 것이다. 강제로 먹일 수 있다. 물고문으로 죽은 박종철은 얼마나 강제로 물을 먹었을까. 종교계와 시민단체를 비롯해 범국민적인 민주회복 투쟁세력들이 일어섰다. 이들도 갈데 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무섭다.

거짓 자백서 수백 장을 쓰고 지장을 찍어도 마음속으로 아니면 그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억지로 끌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고 하지만 민주주의가 있기에 속이 편한 것이다. 이것을 찾기 위해 우리 국민은 고문을 당했고 피를 흘렸고 총 맞아 죽었다. 이를 다시 포기하라면 어찌 되는가. 누가 승복하겠는가.

민주주의의 가치는 만져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지만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국민과 민주주의를 목 조르지 말라. 숨이 넘어가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갈데 까지 가서 국민을 이기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국민이 반드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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