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해마다 5.18민중항쟁 전야제에 참가
“광주정신은 퇴색된 것이 아니다. 잠재되어 있다”

“처음 <아침이슬>을 부를 때는 노래의 의미를 모른 채 겨우 발음을 외워 불렀습니다. 그런데도 5.18 전야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모두 우리를 따라 함께 불렀습니다. 감동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시민들의 절반 이상이 더 이상 따라 부르지 않습니다. ‘오월 정신’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풍화되기도 해서 그렇겠죠. 그러나 역사는 반복됩니다. 언젠가는 소생할 것입니다. 광주정신은 퇴색된 것이 아닙니다. 잠재되어 있죠.”

올해도 광주를 방문해 한결같이 5.18민중항쟁을 기리며 노래한 일본 시민합창단 ‘우타고에(노랫소리)’. 17일 오후 광주 동구 가톨릭센터 앞에서 5.18전야제 공연을 마친 ‘우타고에’ 야마다 히로끼 국제교류위원을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날 ‘우타고에’는 내년에 일본 도쿄에 초청할 뮤지컬 <화려한 휴가> 연출팀과 공연 뒤풀이를 함께 하고 있었다. 방금 끝난 공연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던지 이들은 팀의 일원인 야마가미씨가 일본어로 번안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이 자리에서 불러주었다.

 

▲ 일본 시민합창단 '우타고에'의 야마다 히로끼 국제교류위원.

1999년 5월 17일, 5.18민중항쟁 전야제에 참가한 ‘우타고에’는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5월이 되면 광주를 방문해 노래로 평화를 알려오고 있다. 14년째다. 사스(SARS. 급성호흡기증후군)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지난 2003년에는 겨우 2명이 참여했지만 그때도 공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가족들이 한국에 못 가게 해서 야마가미씨와 저, 이렇게 단 2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래도 거르지 않고 광주에 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때 조선대 운동장에서 가수 이은미씨 등 대단한 사람들이 함께 했는데 2명뿐이라 저희가 사람들의 이목을 더 받았습니다. 영광이었죠.”

왜 ‘오월’일까? 30여년이 지나며 우리에게서 점점 잊혀 가는 5.18을 그들은 여전히 붙잡고 있다. 잊고 있는 우리에게 노래로 오월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광주를 방문하기 전, 저를 포함해 저희 합창단원들이 5.18에 대해 배워 기본적인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왔습니다. 그런데 광주에 와서 광주의 진실을 접하게 되니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는 슬픔입니다. 그와 더불어 1987년 항쟁의 거름이 되었죠. 현대사에서 이런 사건은 없다고 봅니다. 민주주의의 원점이죠. 5.18은 민중을 위한 투쟁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싸움이었습니다. 이것을 전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 시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우타고에’는 노래를 통해 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일본 1200개 지역에서 ‘우타고에’가 활동하고 있다.

해마다 광주를 방문할 때면 광주와 5.18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어느 해는 100여명이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올해는 노동자합창단이 중심이 돼 11명이 광주를 방문했다.

“‘우타고에’는 민주 인권 평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가치들을 노래로 전하죠. 노래는 언어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문화의 힘’이죠. 세계 모든 사람들이 노래를 통해, 문화의 힘으로 연대할 수 있습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일본어로 번안한 '우타고에'의 야마가미씨(왼쪽)와 뮤지컬 <화려한 휴가> 제작자 전용호씨. ⓒ광주인

신광중학교 학생들이 일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보낸 편지를 ‘우타고에’ 단원이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이 인연이 돼 2년 전부터는 광주를 방문하면 신광중에서 학생들과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신광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니 학생들이 따라 부르더군요. 특히 외국인인 우리가 한국어로 부른다는 것에 놀라움과 관심을 보였습니다. 학생들이 우리 무대에 열광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같이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주위에는 늘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 5.18민중항쟁을 주제로 지난해 광주 신광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공동수업에 참여한 '우타고에'.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누리집 갈무리

“한국인과 이야기하고 싶어” 우리말을 10년간 공부해 왔다는 야마다 위원. 하지만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울 때가 아직도 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국가 간에 긴장되는 측면이 있더라도 시민이 연대한다면 이런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역사 앞에 정직하게 대응하고 미래를 같이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이야 말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이니까요. 일본에도 연대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5.18민중항쟁을 다룬 뮤지컬 <화려한 휴가>가 내년 6월 ‘우타고에’ 초청으로 일본 도쿄에서 상연될 예정이다.

“일본에는 아직 5.18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 5.18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초청하기로 했죠. 일본 사람들이 뮤지컬의 파급력 자체를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우타고에’는 21일 한일 문화교류에 쏟아온 열정을 인정받아 광주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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