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쌀값….”
“작년에 20kg 한 포대에 4만원 하던 쌀값이 금년에 4만 4천원이 되었다.” (중앙일보 10월 3일)
이어진 기사에는 수입 물가는 10% 이상 올랐다고 했다. 제목만 보면 쌀값이 물가의 상승의 주범으로 오해하기 좋은 기사였다.

그러나 그 기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엊그제 공공비축 벼의 농협 수매가격이 작년에 비해 떨어졌다는 기사를 봤는데 불과 며칠만에 쌀값이 오르다니? 그곳이 어디인지?

퇴근후 남평 농협에 들려 햅쌀이 나왔느냐고 했더니 직원은 아직 벼도 수매 전이라고 했다. 매장에 판매되는 쌀도 2010년산이라는데 쌀값도 내가 아는 그대로였다. 쌀값이 오르겠느냐고 했더니 햅쌀이 나오는 가을철에 쌀값이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대답이었다.
중앙일보 기사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은 더 커지기만 했다.

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일반 물가는 물론 공공요금까지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실을 외면한 채 쌀값 인상에만 초점을 맞추어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현재의 언론이 농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농촌에 가면 벼 베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황금 들판을 보면서 풍요를 느끼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풍경 뒤에 숨은 농민들의 애환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우리 마을에서는 [왕건이 탐낸 쌀]이라는 브랜드로 알려진 [청무]라는 품종의 벼를 주로 심는다. (남평에서만 재배한다고 한다.)

밥맛은 좋지만 다른 쌀의 품종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조금 떨어지는 종자로 200평 한 마지기에 최대 3가마 정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몇 년째 같은 마을의 박영감 댁 쌀을 먹어왔다. 박영감 역시 청무를 심는데 친환경이라는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그대그때 부탁하여 쌀을 찧어다 먹는데 박영감네 쌀로 밥을 하면 윤기가 자르르하고 찰기가 있다. 거기에 친환경 우렁이 농법이란 사실도 기분 좋게 하면서 맛을 배가 시킨다. 거의 매일 오가며 벼가 자라는 것을 보았기에 쌀에 대한 믿음도 밥맛을 좋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동안 박영감은 몇 년째 농협에 벼를 수매하지 않았다. 주로 본인과 자식들, 부산의 사돈댁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에 우리까지 더하다보니 자기들 먹는 것도 빠듯하다고 하면서도 늘 흐뭇한 표정이었다.

사실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농협까지 운반하여 수매하는 번거로움도 크지만 아무래도 직접 쌀로 찧어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경우 수입이 더 짭짤하다. 생산자는 수매과정의 번거로움과 낮은 수매가를 걱정하지 않아서 좋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값을 주면서도 믿고 안심할 수 있기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만족하는 공정 거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오후(3일), 배추밭에 물을 주고 있는 박영감을 만나 쌀 작황을 물었더니 반응이 예년에 비해 줄었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해 모든 물가는 물론 영농비도 올랐고, 금년에는 일기가 좋지 못해 벼의 소출마저 예년 같지 않은데 쌀값은 오르지 않으니 작년에 비해 소출이 줄어든 만큼 손해라고 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대 먹던 사돈댁이나 우리 같은 사람에게 농협보다 쌀값을 더 받을 수도 없으니 설사 쌀값이 조금 오른다고 해도 사실상 작년보다 나아질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어중간하게 벼농사를 하여 농협 수매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은 더 딱하다.”고 했다.

사먹는 우리 입장에는 요즘처럼 물가가 급등하는 시대에 낮은 쌀값이 천만다행일 수 있다. 그러나 농촌의 박영감 같은 노인들만 사는 농촌의 현실을 보면 결코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농업전문가도 아니고 농사를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도 아니다. 하다못해 직접 논농사를 해본적도 없는 사람이다. 아직 텃밭 농사수준의 초보 농부이며 농촌에 완전히 정착한 상태도 아니다. 때문에 농업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이 주제넘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지난 5년, 농촌 인구의 감소, 노령화로 인한 노동력의 부족, 그로 인해 농업을 포기하는 농촌의 현실을 보면서 정말 위기라는 생각을 했다.

농민들의 피와 땀으로 지은 농산물이 제값을 못 받는 나라, 농산물을 생산할 농민을 농촌에서 내쫓고 농산물 기후 탓이나 하는 나라, 생산을 늘릴 계획보다는 부족하면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보면서 너무 절망스러웠다. 농촌은 인간이 단 하루도 비켜갈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을 제공하는 곳임에도 합법을 가장한 정치권력의 폭력에 의해 비참하게 착취당하고 죽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본 것이다.

망해가는 기업에는 수 조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하면서 자연재해나 구제역 등 불가항력에 의한 농민의 피해는 외면하는 나라. 인건비며 다른 영농자재, 비료, 농약 등의 가격은 최고 50%까지 상승하였음에도 쌀값은 오히려 낮추는 나라. 식량 자급률이 30%도 안 되는 나라. 이상기후에 세계 곡물가격은 오르고 있는데 반도체나 자동차 팔아 식량을 살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면서 식량 전쟁에는 전혀 대비가 없는 나라.

사이비 농민들에게는 기업농 육성 혹은 영농법인 지원이니 하면서 수억씩 지원해주고는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떼인 경우가 허다함에도 힘없는 농민들의 피해는 외면하는 나라. 거기에 언론마저 정부와 기업의 편에서 농촌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으니 그러고도 나라의 미래가 온전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때문에 내 글은 체계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논리가 아니다. 늙어 힘을 잃은 농민, 그런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의 양은 줄어들고 있는데 농민들을 3등 국민 취급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10년 전이나 그대로인 쌀값! 기독교에서 통성기도라는 것을 통해 영적 회개와 구원을 기원한다고 들었다.
이제 정부도 그동안 농촌에 어떻게 해왔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언론에서도 쌀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지 말고 진지하게 생산 원가를 따져보고 농산물 정책을 검토해 주었으면 한다.

국민들도 당장 일용할 양식을 싼 값에 제공하는 농촌의 현실을 공감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밥이 곧 생명이라는 진실을 다시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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