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전문]

민중의 벗, 시대의 등불 정광훈 의장님 영전에 올립니다.
오종렬 (장례위원회 위원장,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삶의 현장에서 꿈에 그리던 민중해방세상을 일구시다가 순직하신 민중의 벗이여. 암흑을 밝혀온 시대의 등불이여. 일하는 사람들, 핍박받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먼지와 피범벅이 응결하여 이제는 천상의 이슬이 되신, 일흔 세 살의 순결한 청년 정광훈 동지여!

이렇게 가실 수는 없습니다.
“쌀값 쬐끔 올려주씨요, 예! 임금 쬐끔만 올려주씨요, 예! 노점상 좌판 쬐끔, 철거민들의 새 둥지 쬐끔 어떻게 좀 해달라고 사정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막힌 수도관을 그대로 두고, 고장 난 전화기며 고장 난 전자기기를 그대로 두고, 총체적으로 고장 난 틀을 그대로 두고, 이거 안 됩니다. 고장 난 틀은 고장 먼저 내야 합니다. ‘선 고장 후 수습’ 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 새로운 틀을 짜야 합니다.”라고 하셨죠.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 시대의 선구자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신 민중의 지도자이자 영원한 혁명가인 정광훈 동지여, 어둠이 막바지가 칠흑인데 우리를 두고 이렇게 가셔서는 안 되잖아요. 늘 그랬듯이 개구리가방 하나 달랑 등에 지고 “어이! 나 왔소,” 홀연히 나타나셔야지요.

1천만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에 신음하다 쓰러지는 노동자, 저 푸른 초원 위에 엎어지는 농민과 퇴출되는 우리 농민, SSM 쓰나미에 초토화되는 영세자영업자들, 뉴타운에 쫓겨나는 철거민과 목숨 줄 이어온 거리의 좌판마저 걷어 채인 노점상들, 이미 예비실업군단에 편성되어버린 청년학도들, 한 해에 268명이나 되는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자살률 1위, 산재사망률 1위에 노인자살률마저 1위, 미국의 초국적 자본과 국내재벌기업의 금고 밑에 민중의 주검이 늘비하게 쌓이는, 천하에 용서할 수 없는 이 세상을 남겨놓고 차마 어떻게 눈 감으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민족의 화해 협력을 훼방 놓고, 통일을 가로막고서 지들끼리 배터지게 잘 해먹자는 걸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진정한 민중해방 진정한 복지사회는 분단의 장벽 안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 그러자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민중 반통일세력의 판을 엎는 연대연합을 먼저 하자. 그러나 민중이 주인 되는 원칙을 한 시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정치사상적 완벽한 쌍둥이는 그렇게 화통했지 않았습니까?

계급운동, 지역운동, 부문운동 등 그 어떤 운동도 전선으로 모아지지 않으면 “달밤에 유난체조”라며 원칙에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동지여!

“DOWN, DOWN WTO! DOWN, DOWN FTA! DOWN, DOWN USA!" 정광훈만의 지적소유권, 전무후무한 동지의 정치연설 주제를 마지막까지 외치고 싶으셨지요.

그 무엇보다도 “오 의장, 나 지금 해옥씨 한테 가요. 며칠 후에 봅시다.” 간결선명하게 표현하던 부인에 대한 사랑, 경철 옥란 내외와 둘째 성운, 그리고 진아 경진 내외와 이 세상에 가장 사랑하신 주호와 유리에게 사랑한단 말 한마디 꼭 하고 싶어서 입을 닫지 못한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아아, 붙잡아도 어쩔 수 없는 영결의 순간이 왔습니다. “잘 가, 천국에서 만나 우리...” 마지막 손잡고 눈물로 당부하시던 부인 최해옥님의 사랑을 가득안고, 산자들의 투쟁을 믿고 하늘나라에서 부디 평안하소서.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