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의 특징과 현황
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

아래 글은 6.15 학교에서 운영 중인 통일 학교 강좌 중 북한 경제에 대한 강연집을 전재한 것입니다. /광주인

인공위성과 굶주림의 모순

우리 국민들에게 “북한”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떠올리거나 금강산, 백두산과 같은 관광자원을 떠올리는 국민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경제”라고 질문을 바꿔 던진다면 대체로 “굶주림”, “폐쇄와 고립”, “낙후함”과 같은 부정적 인식이 주로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반미국가가 그러하듯 북한도 독재정권 아래 주민들은 굶주리며 지도부는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논리구조가 60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모든 공장이 낡아서 가동률이 낮다는 북한이, 세계로부터 고립되었다고 알고 있는 북한이 이미 1998년에 인공위성을 발사하였다는 사실이다. 인공위성을 탑재하는 우주발사체는 국가의 지도자가 갖고 싶다고 해서 당장 사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주발사체를 생산, 운용할 수 있는 산업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발사체를 개발도 할 수 있고 발사도 할 수 있다. 쿠바,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은 모두 특정 정치세력이 장기집권하고 있지만 이런 나라들이 인공위성을 발사하였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지금까지 인공위성을 자체기술로 발사한 국가도 미국, 소련,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 등 8개 나라에 불과했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산업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국가들이다. 나로호 발사를 시도한 한국도 1단계 추진체를 자체 제작 못하고 러시아에서 들여왔는데, 북한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인공위성으로 볼 수 있는 발사체를 발사할 수 있었을까?

북한은 우주발사체를 외국에서 수입했을까?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에게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우주발사체 기술을 이전해 줄만큼 배짱 있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세계 최대의 정보망을 가진 CIA도 우주발사체 기술을 북한에 이전한 국가를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 하다못해 북한과 혈맹관계라고 하는 중국도 2009년 북한의 지하핵시험을 강행할 당시, 유엔의 대북제재에 찬성하면서 북한과 선을 그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1998년 8월 31일에는 광명성 1호를 탑재한 “백두산1호”를, 2009년 4월 5일에는 광명성 2호를 탑재한 “은하2호”를 발사한 만큼, 이 우주발사체는 북한이 독자적으로 개발하였다고 밖에는 달리 볼 수 없다.

북한식 사회주의

한국사회에서는 북한경제를 바라볼 때 북한에서는 산업체계를 추가건설하고 관리,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일단 대규모 사업이 벌어지면 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설계부터 시공, 건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인적, 물적 재원이 요구된다. 이 경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이를 대부분 ‘자본’으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히 여겨진다. 세금을 올리던지 외국에서 돈을 차관으로 빌려오던지 돈을 더 찍어내던지 간에 일단 ‘자본’을 마련해야 노동자도 새로 고용할 수 있으며 설비도 구입할 수 있다. 자본이 부족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물론 북한에서도 “돈”이 필요하다. 해외의 원료를 수입하거나 그들 나름의 잣대라 하더라도 우수한 실적을 쌓은 노동집단에 적절한 보상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돈에 의한 “물질적 자극”에 주로 의존하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리 북한은 많은 경우 “물질적 자극”보다 “정치도덕적 자극”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도덕적 자극”은 간략히 해서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사상”으로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도덕적 자극”, 즉 “사상”문제가 북한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와의 중요한 차이점이고 이것은 북한이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일정정도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전후복구와 90년대 경제난을 스스로 헤쳐왔다고 주장하며 “정치도덕적 자극”의 당위성과 효용성을 입증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정치도덕적 자극”은 무엇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철학적 차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대규모 자본은 나누어줄 때가 아니라 모을 때 형성되므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자기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돈을 ‘모으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즉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개인주의를 떠나서는 자본의 집중과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경제활동이 ‘자기 재산 불리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무한경쟁’이 위주로 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주요하게는 모든 경제활동을 오로지 “물질적 자극”에만 기초한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오블리스 노블리제”와 같은 기부문화를 강조하기도 하는데 진심어린 기부문화도 넓은 틀에서 보면 “정치도덕적 자극”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사회주의 체제는 “집단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명제에서 출발해 모든 가치 창조와 생산발전은 개인 혼자서 할 수 없고 집단적으로, 사회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하는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인 ‘자기 재산’보다 ‘국가의 재산’이 우선시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사유재산을 철폐하면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국가재부를 늘리기 위해 일할 것이며 이 경우 선의의 경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다.

핵심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매 개인이 과연 ‘국가의 재산’을 ‘자기 재산’과 같이 소중히 여기고 아끼겠는가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를 사유재산 인정으로 해결하는 반면 북한당국은 “정치도덕적 자극”이 주요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정치도덕적 자극”을 수치적으로 비교할만할 구체적 지표는 없다. 이는 마치도 탤런트 김혜자씨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발벗고 도와주면서 얻는 숭고한 감정의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실제로 북한은 대부분의 대규모 설비공사를 조선인민군, 청년돌격대 등의 ‘지원역량’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발적인 생산활동이 전후복구와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매듭짓게 된 결정적 고리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명목상 “스스로 지원”한 것일테니 고된 노동 이후에 이들이 받는 월급이나 수당은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나 성당의 자원봉사자들이 사례비를 한 푼도 받지 않듯이, 이들은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면서 일심단결의 집단주의, 애국주의를 “정치도덕적 자극”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나 “자발성”이다. 한국언론은 일부 탈북자들의 주장을 전면수용하면서 북한청년들의 “지원역량”이 비자발적인 동원인력이라는 공식을 유지하는데, 이는 무리한 분석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물론, 탈북자들은 북한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추방당한 사람이 없는 이상, 북한체제를 동경하고 북한의 “정치도덕적 자극”에 향수를 가진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이어 벌어지는 평양과 함흥의 10만 군중대회, 당창건 65돌 기념행사장을 비롯하여 북한관련 여러 영상과 자료를 통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는 북한주민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지금까지 북한을 나와서 한국에 둥지를 튼 탈북자가 모두 다 합쳐도 2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북한을 탈출한 주민의 5배가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평양 김일성광장에 몰려나와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엄연한 현실이다. 전체 북한주민의 0.08%에 불과한 탈북자들의 의견을 전체 북한주민의 의견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북한은 “정치도덕적 자극”을 매우 중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인주의와 같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일심단결의 집단주의, 애국주의를 중시하는 사상사업에 주력하는 북한의 사업방법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시각을 바꿔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도 이미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도덕적 자극”을 한국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정부, 지자체가 시행하는 각종형태의 캠페인, 광고들은 모두가 유, 무형의 “정치도덕적 자극”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 추석 등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방송매체들과 정부는 경쟁적으로 사회기부문화실태를 취재하고 각종 ARS 서비스 등을 통해 “기부”를 독려한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서울시는 지하철에서 “우측보행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오른쪽으로 통행하는 사람에게 경품을 주거나 요금을 깎아주는 “물질적 자극”은 주지 않는다.

북한에서 강조하는 “정치도덕적 자극”이 캠페인 형식으로 제기되는 형태로 ‘근검절약’을 볼 수 있다. “증산하고 절약하자”라는 김일성 주석의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경제제재에 놓여 있는 북한은 절약과 설비점검을 중시해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으며 모범을 보인 노동자에게 ‘노력영웅’의 칭호를 주고 전 국민이 이를 배울 수 있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개인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는 북한의 “정치도덕적 자극”이 이해되기 힘들다. 모든 국민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자원봉사자도 아닌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들릴 것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정치도덕적 자극”을 “북한의 체제선전”이라 의심하면서 차라리 “물리적 자극”이 더 실현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북한 체제의 각종 ‘동원사업’을 “자유가 없는 강압적 처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북한사회는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며 그곳에는 그곳의 체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산설비를 세워왔으며 그 체제를 60년째 유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북한 경제의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는 그들의 경제운영 방침을 파악하고 그 체제의 특수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립적 민족경제”

북한은 정치, 경제, 군사의 제반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 남의 구속이나 조종을 받지 않고 자체의 요구와 의사대로 추진하는 “자주권”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고 이는 북한사회의 각 부분에 철저히 구현되고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를 “주체 사회주의”라 하고, 북한의 사상을 가리켜 “주체사상”이라 하는 데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북한에게 자주권은 국가운영의 핵심요소이다. 북한은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블럭인 ‘코메콘’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과는 경제체제를 운영하는데 있어 많은 차이가 있다.

이는 북한이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식민지 통치를 35년간이나 받아 자주국가로의 열망이 강했던 민족적, 역사적 사정과 관련된다. 1945년 이후 수많은 제3세계 신생독립국, 개발도상국들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자본주의 세력에 정치-경제적으로 휘둘리는 상황에서, 당시 국가적 재원이나 인적자원이 청소하였던 신생국가인 북한으로써는 예속을 거부하고 ‘자주권’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주권’을 중시하는 북한의 입장은 경제분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북한 당국은 경제는 사회생활의 물질적 기초이므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국가가 정치적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온 나라 국민들도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북한은 경제적으로 자립을 이루는 것을 강조하는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표방하였다.

북한당국이 주장하는 “자립적 민족경제”란 외국에게 예속되지 않은 자기나라 국민들을 위한 경제체제, 그리고 해당국가의 자원과 국민의 노력에 의해 자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북한은 이러한 경제체제를 건설하여야 국가의 재부를 합리적으로, 종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생산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키고 국가의 물질기술적 바탕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 대외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하는 서구자본주의의 흐름과는 판이하게 다른 주장이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예속적 경제구조 아래에서는 국가자원을 그 나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석유를 생산하는 산유국들은 언제나 석유독점재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며 한국 같은 경우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요구하는 대로 쌀시장이 개방되어서 식량자급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데도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였던 남미, 아시아, 동유럽의 수많은 국가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구제금융의 원금은커녕 해마다 불어만 가는 이자대금도 갚지 못해서 이들 수많은 국가들의 경제는 완전 붕괴 상태에 놓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난날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아 피폐해진 국가들 가운데 하나인 북한도 서구열강의 경제예속화 정책을 벗어나기 위해 민족자립경제를 주장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미국 등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막대한 원조와 차관 등의 조건으로 북한이 ‘시장개방’으로 나오도록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대등한 관계의 무역거래, 인도주의적 거래가 아니라면 그 어떤 원조와 차관도 받지 않고 있다.
언뜻 보면 눈앞의 원조와 차관을 마다하고 “자력갱생”을 외치는 북한의 모습이 비능률적이고 앞뒤가 꽉 막혀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원조와 차관을 미끼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에 침투하여 막대한 이익을 가져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북한의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은 미국에 의한 제재에 의해 60년간 봉쇄되어 있는 북한으로써 더욱 구축할 수밖에 없게 된 경제체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경제체제는 경제를 경제만의 눈으로 보지 않고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종합적 측면에서 접근할 때 보다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주로 집중한 것은 산업전반의 연료와 원료를 가급적 국내에서 생산되는 자원에 바탕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낮은 무역수지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원료물질이나 산업적 완성제품이 자본의 요구에 따라 여기저기로 수출-수입되어 엄청난 무역량이 발생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자체의 자원에 최대한 기반한 북한경제는 원료물질을 수입할 이유도, 그를 위해 생산물품을 수출해야 할 이유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원료-연료물질을 자체의 자원으로 대체하는 것은 개발하는 자체가 어렵지 일단 개발되고 나서는 외국의 경제상황에 좌우될 것 없이 원만한 공급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북한의 자립경제의 개념은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나라의 자연부원을 효과적으로, 창조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이지 외국과의 무역자체를 닫아버리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자원을 최대한 개발하는 것과 함께 해외의 자원, 기술이 있다면 이를 주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당국의 입장이다. 북한도 경제의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고 교류-협력이 없이 문을 닫는 경제는 기술적으로나 효율적 면으로나 실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류의 성격이다.

북한이 강조하는 교류와 협력은 양적으로 성장한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자본주의 국가들이 주도권을 가진 교류와 협력이 아니라 처지와 여건이 비슷한 제3세계 국가들과의 평등한 교류와 협력이다. 물론 서구자본주의 국가들과도 평등한 조건으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의 독점자본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비롯하여 설탕, 면화와 같은 기초자원들을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매우 싼 값으로 들여오는 반면 자신들이 생산한 공산품은 제3세계 국가의 경제력에 비해 높은 가격에 판매하면서 높은 이윤을 얻고 있다. 서구사회와 제3세계간의 높은 무역 불균형은 날로 심해지는 국가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부채질해왔다. 지난 30년간 개발도상국의 지위에서 자본주의 대국으로 진입한 국가는 지구상에 단 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 반면 그럭저럭 중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지던 중남미와 동유럽의 수많은 국가들의 경제는 현재 완전히 붕괴직전에 도달해 있다. 다시 말해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재부는 여전히 몇몇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 독점되어 있으며 그 독점화의 정도도 점점 심화되는 추세인 것이다.

다만 여타 국가들과의 평등한 국제교류에 있어서는 북한은 꽤 적극적이다. 북한은 제3세계 국가들의 비동맹 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2001년 현재 151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중공업 중시노선

북한은 ‘자립적 민족경제’라는 명제만 선언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한 구체적 방도까지 제시하였다. 북한은 먼저 자립적 민족경제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경제를 다방면적으로, 종합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자본주의적 경제건설의 관점과 확실히 다른 부분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에 기초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는 그 속성상 이윤이 발생하는 특정분야로 자본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드는 부동산투기가 대표적 실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적정 수준 이상의 자본유입을 차단하거나 규제할 수는 있겠지만 최근 WTO 경제체제와 IMF의 입장은 이마저도 국가가 마음대로 개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그 나라의 경제상황이 이윤이 발생하는 특정 산업분야에 집중되어 국가산업전반의 균일한 발전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반도체, 자동차 산업이 매우 발전한 한국에서는 기계공업과 농업, 광업 부문의 자본투자가 상대적으로 열악해 질 수 밖에 없다. 증권시장에서 자금이 공급된다 하여도 이는 국가산업을 선도하는 몇몇 핵심기업들과 IT 밴처 기업들에 국한되어 있을 뿐 주식시장 전반의 원활한 자금조달과 공급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반면 북한의 경제체제에서는 경제의 운영을 자본과 자본 간의 자유경쟁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입하여 관리한다. 북한의 경제체제에서는 “투자기피”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중복투자”, “경기과열”이라는 단어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를 다방면적으로, 종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북한이 제시한 중심고리가 바로 중공업이다.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을 기계화, 현대화, 과학화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바 기계화를 뒷받침해주는 중공업은 모든 산업발전의 바탕이 된다. 때문에 북한은 건국 초기부터 중공업을 경제전반을 지탱해나가는 핵심적 요소라 보고 중화학공업에 기반한 경공업과 농업의 병진을 북한 경제개발의 기본 노선으로 하였다.

이는 경공업 분야의 자본축적이 먼저 시작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는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소규모 자본으로도 생산을 시작할 수 있고 자금의 회전이 빠르다는 점에서 경공업 분야의 성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일어서게 된다. 그러나 경공업 중심의 산업발전은 그 생산물이 다른 산업분야에 끼치는 효과가 중공업에 비해 미비하여 경제개발의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직물공장에서 면직물을 생산하여 시장에 내어놓는 경우와 제철소에서 강판을 생산하는 경우를 비교해보자.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강판은 수많은 산업부문에서 공장을 세우고, 자동차, 선박, 각종기계 등을 제조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핵심제품으로써 강판의 원활한 공급은 산업전반의 발전을 추동할 수 있다. 그러나 면직물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면직물은 국민들의 수요를 만족시켜 즉시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생산한 면직물이 고무공업, 기계공업 등의 다른 산업부문의 발전의 자재로 사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중화학공업 중심의 북한의 경제는 경공업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국가의 경제발전과는 그 바탕이 다르고 1960-70년대의 ‘대동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고속성장을 기록할 수 있는 정책적 바탕이 된 것이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도 가발, 인형 등의 경공업 개발에 그쳤던 60년대가 아니라 포항제철, 울산의 석유화학 등 중공업의 기반이 준비되었던 70년대에 이루어졌음을 볼 때 북한의 중공업의 중시정책은 남쪽보다 오히려 빨랐다고 판단된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경제가 “중화학공업의 발전”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경제의 기본 목표는 경제를 다방면적으로, 종합적으로 발전시켜 늘어가는 다양한 가계경제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다만 각 분야의 경제전반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철강, 기계, 화학 등의 중화학공업이 ‘중시’되는 것이지 여타 분야의 공업이 소홀히 되어서는 가계경제가 종합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때문에 북한의 경제건설방침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중화학공업에 기초한 경공업과 농업의 병진. 이는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을 실현시킬 북한의 경제건설 전략이다. 그렇다면 대규모 자원과 자재가 요구되고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이 요구되는 중화학공업을 어떻게 건설, 추진할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한 방도로써 북한이 염두하는 것은 산업전반을 현대적 기술로 장비하는 문제이다. 산업기술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오늘날, 자기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관리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서 과학기술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민족기술인재를 적극적으로 양성하였다. 한국전쟁 와중에도 북한은 평안북도 청수군에 토굴을 파고 연구소를 마련, 과학자들의 연구를 뒷받침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북한은 힘들게 마련한 과학기술인재들을 산업현장에 투입하여 산-학 간의 접목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산업전반의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북한의 “사회주의강성대국” 규정

북한이 목표로 삼는 “사회주의강성대국”은 과연 무엇인가?

북한은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의 2009년 12월 27일자 논설에서 “강성대국은 단순히 영토의 크기나 인구 수, 사회생활의 일정한 분야가 높은 단계에 이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 없이 사는 나라”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북한은 강성대국이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지도부와 전체 주민들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어 이른바 “일심단결”의 두리에 튼튼히 세웠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일찍이 전 국가가 하나의 사상으로 일색화된 유일사상체계를 추구하였으며 이들은 이러한 “사상의 통일성”이 국가역량을 총발동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즉, 북한은 이미 사상강국의 지위에 도달하였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북한의 사상중시는 1990년대의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남들 같으면 열 백번도 더 망하고 남았을” 혹심한 경제난을 외부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돌파하였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국민들의 “사상동원”문제를 배제하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사상강국임과 더불어 정치강국이라고 주장한다. 인구 2400만명에 영토가 한국보다 약간 큰 북한은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엄연히 인구와 영토가 크지 않은 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은 영토와 인구 등 국가의 객관적 지표를 뛰어넘어 세계 정치의 주요 쟁점으로 예로부터 거론되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북미협상 구도이다. 일례로 최근까지 진행되었던 6자회담을 보면 그 참가국들은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이다. 즉 한반도 당사자를 제외한 4개국은 모두 다 세계적 강국이라고 알려진 대국들인 것이다. 북한은 이들 대국들과의 정치협상과정에서 9.19공동성명과 그에 기초한 2.13합의, 10.3 합의 등 북미외교의 결과물들을 꾸준히 내왔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9년, 북한이 6자회담의 장에 결국 더 이상 주권존중의 원칙이 서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자 과감히 6자회담을 종료시켜버린 것이다. 6자회담만 쳐다보지 않겠다는 북한의 심중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듯 동북아 정치현안을 북한이 좌우해왔다는 점을 들어 북한은 스스로를 정치강국이라 주장한다.

북한은 또한 스스로를 군사강국이라고 주장한다. 1998년과 2009년의 두 차례에 걸친 인공위성 발사는 북한이 인류의 미개척지로 남아있는 우주공간을 개발, 이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은 2006년 10월 9일과 2009년 5월 25일, 두 차례에 걸친 지하핵시험에 성공함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라서면서 비대칭전력을 갖추었음을 입증하였다.

북한당국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가치판단은 명백히 여러분의 몫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북한이 아직 경제강국의 목표만큼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경제강국의 표상으로 “잘사는 서방국가들의 도시중산층 수준의 삶”을 제시하고 있지만 북한주민이 아직 이러한 생활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은 가까운 시일 내에 경제강국의 전망을 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7년 8월 31일, 북한 노동신문 정론 “승리를 믿으라! 내일을 믿으라!”에는 처음으로 “강성대국의 해돋이”라는 표현을 언급하며 “사상강국, 군사강국의 강위력한 성새를 튼튼히 다진 조선은 이제 경제강국의 또 한 요새를 점령하면 강성대국이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 2007년 11월 13일, 노동신문은 사설 “공동사설과업 관철에 힘을 집중하여 올해 전투를 빛나게 결속하자”에서 “가까운 몇 해안에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일대 변혁을 일으켜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려는 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볼 때 북한당국은 자신들이 강성대국에 진입하는 마지막 과제를 경제문제로 보고 있으며 경제강국의 대문을 열면 강성대국의 기본면모를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목표지점을 2012년으로 상정하고 있다. 경제강국의 가능성을 내외에 시위하는 최종 목표연도를 2012년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화폐개혁을 둘러싼 논쟁

북한경제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지금, 그 논란의 중심에는 북한의 화폐개혁이 있다. 2009년 11월 30일에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을 둘러싼 논란에는 크게 보았을 때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화폐개혁이 성공이라는 견해는 대표적으로 북측 인사로 분류할 수 있는 지영일 일본 조선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들 수 있다. 지영일 소장은 3월 3일 “조선신보”에서 이번 북한의 화폐개혁은 국가공급체계의 물질적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북한 당국의 판단이 전제돼 시행된 것으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향상에 직결된 변화들을 낳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는 화폐개혁도 모름지기 “개혁”의 일종인만큼 소(小)시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일부의 혼란도 전반적 측면에서 경제의 정상화로 나아가는 과정인 바 일부의 혼란만을 가지고 전체 제도의 성패를 재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북한경제를 국가전반적 차원에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이번 화폐개혁은 화폐구매력을 일정 수준으로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북한경제를 발전시키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화폐개혁이 실패하였다는 주장은 “열린북한방송”을 비롯한 반북단체들이 주도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연구집단과 보수언론들이 합세하는 양상이다. 이들은 북한의 종합적 경제지표보다 반북단체들의 이른바 “대북소식통”에 의거하면서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현재적 시점의 미시적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실패론자들은 이번 화폐개혁으로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되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정보보다 화폐개혁의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일부 국경지역 상인들에 관한 소식에 전반적으로 의존한다.

실패론의 조급성

화폐개혁 성공론과 실패론은 북한경제를 분석할 때 중시하는 요소가 완전히 다르다. 성공론은 국가의 전반경제의 거시적 접근에 주목하는데 반해 실패론은 일부 상업계층의 혼란, 즉 미시적 접근에 주목한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북한은 상품의 유통이 경제주체들의 상업행위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생산과 분배가 중심이 되는 사회주의 경제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북소식통”들의 주장대로, 북한에서 상업의 혼란이 설령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파급력은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화폐개혁 실패론자들은 북한 국경지역의 가격변동 정보를 가지고 북한의 상품유통이 완전히 마비된 것처럼 과대포장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체제의 차이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추론이다. 북한의 상품유통 기본방식은 “시장거래”가 아니라 “배급”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북한이 한 해 동안 생산한다는 600만톤 내외의 식량이 북한의 소규모 장마당을 통해 모두 다 유통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도 수백만톤의 식량을 시장을 통해 거래하기 위해서는 가락동 도매시장, 청량리 도매시장 등에서 각종 농산물을 트럭으로 경매에 붙여야 하고 각종 재래시장과 농협 하나로 클럽을 비롯한 각종 대형마트를 요소요소에 배치해야 한다. 마치도 피가 온 몸을 빠짐없이 순환하듯이, 시장거래가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빠짐없이 이뤄져야 한다. 북한도 인구가 2400만명인 하나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나라에서 대형도매시장도 하나 없이 자그마한 “장마당”에서 매년 수백만톤의 식량을 처리한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게다가 “시장거래” 자체에도 실패론자들의 주장에는 억측요소가 다분하다. 실패론자들이 즐겨 차용하는 “대북소식통”들의 정보에 의존한다 하더라도 북한주민들이 식량을 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이른바 “대북소식통”들은 2009년 말 ㎏당 20원이던 쌀가격이 1월말 600원 대로 올랐으며 최근에는 1000원까지 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지역에서 물가상승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화폐개혁 당시 북한주민들의 임금이 100배 올랐다는 점은 일제히 외면하고 있다. 화폐개혁 당시 구권과 신권의 교환비율은 100 : 1 로 규정하였지만 임금은 화폐개혁 전 수준을 유지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노동자의 구매력은 100배 상승

북한 회폐개혁의 특성을 살펴본다면 화폐개혁 이후 장마당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엄밀히 말한다면 “화폐교환”이다. 즉 지금껏 통용되는 화폐를 모조리 부정하고 새로운 신화폐로 바꿔주는 것이다. 구화폐와 신화폐의 교환비율이 100 : 1이 되면 구화폐의 화폐가치는 대폭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제 쓸모없게 된” 구화폐를 더 이상 보관하지 않고 상품구매를 통해 처분하려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인위적 수요창출에 의해 장마당의 상품가격은 더욱 증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반북단체들이 전하는 “대북소식통”들의 주장을 살펴보아도 북한의 상품가격이 오른다는 주장만 난무할 뿐 북한이 “근로자 임금을 지불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보이지 않는다. 즉 북한에서 화폐개혁 이후 상승된 임금은 정상적으로 계속 지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대북소식통”들의 주장대로 화폐개혁 직후 쌀 가격이 50배가 올랐다면 그것은 심각한 물가상승일 수 있지만 이것은 구 화폐에 의한 책정가격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근로자 임금은 사실상 100배가 오른 효과를 낳기 때문에 구매력은 2배로 뛰어올라 있다.

쉽게 말해 지금 한국시장에서 쌀값이 포대 당 8만원에서 400만원으로 50배가 증가하면 엄청난 물가상승 - 초인플레이션 - 으로 인식되지만 동시에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월 200만원에서 월 2억원으로 늘어났다면 노동자들이 단지 쌀값이 400만원한다고 쌀을 못 살리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쌀값이 오른다고 해서 월수입 2억원의 부유층들이 끼니를 굶을 리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상황을 외면한 채 식량가격이 올라 주민들이 굶주리고 북한 체제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주장은 해당 정보들의 신빙성이 심각하게 의문시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남측의 북한 전문연구원들 가운데서도 화폐개혁에 대한 평가유보론이 대두하고 있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2010년 2월 23일, 북한 화폐개혁 이후 보도되는 북한의 경제상황에 대해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초기 단계에서 혼란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시작한 지 3개월이 채 안된 시점에서 실패냐 성공이냐 단정짓는 것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화폐개혁이라는 것은 어느 국가든 큰 충격을 주는 것”이라며 “계획경제든, 시장경제든 그 충격을 감안할 때 지금 북한에서 나타나는 일정 정도의 혼란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화폐개혁 성공론자들이 중시하는 국가적 관점, 중장기적 관점에서 분다면 이번 화폐개혁에 대한 평가를 미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이유

그렇다면 조선노동당은 왜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는가?

그것은 조선노동당이 북한경제가 본격적인 상승세로 진입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관련 성과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이 최근 북한동향의 특징이다.

들리는 소식만 보더라도 북한은 2009년에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하면서 독자적인 철강생산체계를 구축하였고 3월 6일에는 16년간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2.8 비날론연합기업소가 현대화된 설비를 갖추고 조업에 들어갔다. 나진-선봉지역을 아우르는 나선시가 특별시로 승격되었다. 조선대풍투자그룹은 10년간 400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주목할 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월 6일, 비날론연합기업소의 준공을 기념하는 10만 군중대회에 직접 참석하였다는 점이다. 군중대회 장소는 평양도 아니고 반북단체들이 식량난이 가장 심각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함경남도였다. 인구 300만명의 평양과 달리 함흥시는 인구 70만명으로 도시규모가 작기 때문에 당 고위층 인사들만 모아서는 10만명을 동원할 수도 없다. 결국 함흥시의 10만 군중대회의 참가자는 일반 함흥시민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북단체들의 주장처럼 북한지역 내에 상품공급이 중단되어 조선노동당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고 주민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만명의 불특정 군중 앞에 나서서 그들의 환호를 받은 현상이 설명되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당시, 중국 당국은 경호를 이유로 고속도로 전체를 통제할 정도였다. 그러나 함흥시 경축대회에서 언론에 보도된 모습은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는 북한주민들의 모습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 10만 군중이 앞 다투어 만세를 외치는 것이 실제로는 식량공급도 끊기고 아사자가 속출하지만 내부감시자의 고발이 두렵기 때문에 충성경쟁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임금이 올라 노동자들의 전반 구매력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겠는가.

결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경제 상승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북한의 일반주민들도 그러한 전망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과제는 그런 공감대가 현실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북한당국이 주민생활 향상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수록, 북한의 경제발전은 그만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4) 굶주림을 해결한 북한농업

7000조원에 달하는 지하자원이 북한에 아무리 많아도, 캐내지 못하고 땅속에 묻혀있는 다음에야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상 북한경제의 현황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농업현실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주민들이 굶주린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오늘날, 북한농업에 대한 분석은 북한경제를 이해하는 핵심부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50년대, 가난이 극심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4월에서 5월에 이르는 기간을 ‘보릿고개’라 하여 식량이 부족함을 표현하였다. 북한에서 보릿고개는 과연 사라졌는가?

반북세력들의 궁색한 ‘아사(餓死)설’

미국과 탈북자 단체를 비롯한 반북세력들은 2010년 초만 하더라도 북한의 화폐개혁은 실패했으며 4-5월의 춘궁기가 되면 북한은 다시금 대량 아사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반북단체 ‘좋은벗들’은 3월 4일, 미국까지 가서 “보통 북한에서는 아사자가 춘궁기인 4월부터 나왔는데 지금은 1월부터 나왔다”면서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3, 4월에 아사 사태가 아주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반북단체가 대량사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 4월이 지났지만 북한에서 대량아사사태가 발생한다는 관측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통일부는 4월 13일 국회에 “화폐개혁 직후 1㎏당 20원대였던 쌀값은 3월 중순 1,000원대까지 올랐지만 4월 초에는 500~600원대로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조선일보”도 4월 23일, “북한은 (4월 15일의 ”태양절“을 맞아) 주민들에게 쌀 5㎏, 육류 2~3㎏, 기름 1ℓ 등을 선물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였다.

대량 아사사태는 커녕 쌀 공급이 안정화되고 각 가정에 고기와 기름까지 배급되고 있는 것이다.

다급해진 반북세력은 “북한이 군량미를 방출한 것”이라며 자기 논리를 꿰맞추려 하지만 이것 역시도 북한에 많은 식량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되어 반북단체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 주민이 2,400만 명이니 4인 가족이라고 가정한다면 총 600만 가정이 될 텐데 이 경우 “조선일보”가 4월 23일에 보도한 공급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쌀 3만톤과 고기 1만5000톤, 식용유 600만ℓ가 필요하다. 설령 북한이 3만톤의 군량미를 방출한다 하더라도 인민군이 육류 1만5,000톤과 식용유 600만ℓ까지 군량미로 비축하고 있다고 보기엔 어려운 노릇이다.

연이어 대북매체 “자유아시아방송”은 2010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노동당 지시문에서 “당창건 기념일을 맞으며 국가상업망들은 주민세대별로 술 1병과 기름 500g, 돼지고기 1kg, 치약, 칫솔, 세수비누와 빨래비누 각각 1장씩, 런닝과 빤쯔(팬티), 양말과 신발 1켤레를 무조건 공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 최대 명절인 4월 15일에 비해서는 기름이 1ℓ에서 500g으로, 돼지고기가 2~3kg에서 1kg으로 줄어들었지만 술과 더불어 생활필수품인 신발과 속옷, 비누가 늘어난 것으로 된다. 이를 위해 소요되는 물자는 술 600만병, 돼지고기 6000톤, 식용유 300만ℓ와 세수비누와 빨래비누가 각각 600만장, 신발이 600만켤레, 양말과 속옷이 마찬가지 분량이 필요하다. 이를 종합하면 북한 당국이 4월 15일과 10월 10일 행사 때 배급용으로 잡은 돼지만 무려 20만 마리가 넘는다는 결론에 귀착된다.

2010년 북한에서는 굶주림을 해결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의 농업실태를 살펴보자.

연 600만톤의 식량을 생산하는 북한

북한은 2009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501만톤의 곡물을 생산하였다고 통보하였다.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반북세력들은 이 자료가 쌀의 껍질을 벗기기 전의 조곡일 것이라며 북한의 발표를 부정하고 북한의 실제 식량생산량은 411만톤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정 이후 식량 무게는 30% 정도 줄어든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주장이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북한이 도정 이전의 조곡을 발표했다고 하더라도, 냉대기후인 북한에서는 쌀이 전체 작물의 50% 남짓한 수준에서 재배될 뿐이므로 탈곡으로 인한 질량감소는 미미하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도 북한의 작물재배면적 가운데 쌀은 57만5,000ha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체 작물재배면적 126만5,000ha의 절반이 안 되는 수준이다. 북한은 2007년 기준 약 49만6,000ha의 면적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고 19만ha의 면적에서 감자를 재배하는데 옥수수와 감자는 도정과정 자체가 없다. 설사 북한의 자료가 도정 전의 것이라 하더라도 도정 여부가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유엔은 북한이 2007년에 437만톤의 곡물을 생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07년은 대규모 수해가 북한을 덮쳐 한국은행은 북한이 농림어업부문에서 -9.1%의 감소치를 보였다고 추산한 해이다. 한국은행은 북한이 이듬해인 2008년에는 다시 농림어업부문에서 +8.0%의 성장을 보여 예년치를 회복했다고 했으므로 2007년의 곡물수확수준은 최근 5년 가운데 최소 수확량이라고 볼 수 있다. FAO는 2007년도에 북한의 작물생산량을 쌀 217만톤, 옥수수가 165만톤, 밀이 20만톤, 보리가 8만톤, 콩 27만톤이라고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전체 곡물생산량은 약 437만톤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이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감자가 빠져 있다. 유엔이 발표한 북한의 작물생산량은 결국 감자를 제외한 수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감자생산량은 얼마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박사는 2008년 12월, 북한 농업성 관리에게서 북한은 ha당 15-16톤의 감자를 생산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권 박사는 북한의 감자재배면적이 총 18만6,000ha라고 밝혔다. 이를 인용하여 반북단체인 “데일리NK”는 2008년 12월 26일자 기사에서 북한의 감자생산량을 250만-300만톤으로 추산하였다. 감자생산량을 곡물생산량에 포함시키면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전체 700만톤에 이르게 된다. “북한 아사설”을 앞장서서 주장하던 “데일리NK”가 북한의 식량 자급자족을 자백한 꼴이다.

250만톤 감자생산의 비밀

이 대목에서 북한의 감자생산량이 250만톤에 이른다는 “데일리NK” 보도의 사실여부를 다시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권태진 박사가 언급한 ha 당 15-16톤의 감자생산능력은 2008년 12월 18일,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 농업과학 심포지엄'에서 들은 것이었다고 한다. 권 박사는 원래 북한의 감자생산능력은 ha당 8톤 정도였지만 감자종자개량 사업을 통해 생산성을 두 배가량으로 늘렸다고 말한다. 북한의 감자재배면적도 1998년까지만 해도 총 4만ha에 불과하였으나 2008년에는 18만6,000ha로 넓어졌다는 것이다. 나아가 권태진 박사는 농자재가 더 지원되고 병충해 예방이 잘되면 ha 당 25톤까지 생산량을 더 증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 경우 북한의 감자생산량은 총 465만톤까지 증가하게 된다.

북한이 250만톤에 달하는 감자를 생산하게 된 것은 지난 10여년간 북한당국이 감자농사에 주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던 경제난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산간지역에서도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감자재배를 본격화할 판단을 하고 백두산 인근의 북한 양강도 대흥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로 삼았다.

식량난이 가시화되는 현재, 감자가 주요한 대체작물로 주목받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다. 중국 농업과학원 감자연구소는 “영양면으로 보면 감자를 주식으로 해도 문제가 없다”면서 “감자는 생산성이 좋고 재배원가는 낮으며 보관과 운송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재배하기 쉬운 작물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인도는 향후 5~10년 이내에 감자생산량을 2배로 증가시켜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태세이다. 국제 감자 연구센터 앤더슨 관계자는 “감자가 식량 겸 야채로 겸용할 수 있는 작물이며 지방함유량이 밀의 5%에 불과하고 익힌 감자는 옥수수에 비해 단백질이 더 많고 칼슘 함량은 2배에 달해 건강에 좋은 작물”이라고 전했다.

북한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8년 10월과 1999년 8월, 2000년 3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양강도 대흥단군을 방문하여 감자종자 개선문제부터 바이러스 감염 예방문제, 땅의 지력을 높이는 문제, 농사일의 기계화 등 감자농사를 잘 짓기 위한 구체적 조건들과 대책들을 수립하였다고 주장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감자농사 강조 이후 북한에서 감자재배는 본격화되었다. 감자농사를 개선하기 위한 북한의 노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0년 3월 27일, “노동신문”은 바이러스 없는 감자원종 생산체계를 확립한 성과를 두고 “육종분야에서의 혁명”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감자는 약 50% 가량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장기간 보관 시 잘못하면 쌀에 비해서 싹이 트거나 썩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자를 장기보관할 경우 탈수공정을 거칠 필요가 있고 이 경우 쌀, 밀 등 다른 곡류와 대등하게 비교하기 위해서는 수확량을 50% 정도로 환산해서 합산해야 한다. 이렇게 계산할 경우 북한의 감자생산량은 장기보관을 위한 가공 후 기준으로 본다면 125만-150만톤 수준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이 경우 유엔의 분석자료에 기초해서 북한의 전체 곡물+감자의 생산량을 구하면 총 562-587만톤이 얻어지게 된다. 이 수치가 북한이 농업에서 -9.1% 성장하였던, 가장 저조한 실적이었다. 한국은행은 북한농업생산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2008년에는 2007년 대비 농업부문 GDP에서 +8.0%가 성장하였다고 분석하고 있으므로 이 경우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607-634만톤으로 600만톤을 확실히 넘기게 된다.

흔히 북한에서 필요한 식량 수요를 540만톤으로 추산한다. 감자를 제외한 곡물 생산량만 보면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437만톤이라 103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논리가 성립하지만 감자생산량을 합치게 되면 ‘곡물+감자’ 생산량은 600만톤이 되어서 연간 60만톤의 식량이 남아돌게 된다. 남아도는 60만톤의 식량은 대부분 감자와 옥수수로 추산되는데 이는 주로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양곡생산 증대를 독려하는 이유

북한은 2000년대 들어 연간 600만톤의 ‘곡물+감자’를 생산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북한당국은 여전히 중국으로부터 곡물을 수입하고 있으며 남쪽의 쌀지원도 받으며 “알곡”생산 증대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2010년 공동사설에서 ‘당창건 65돌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해 인민생활의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란 제목을 채택하며 여전히 농업을 핵심과제로 강조하였고 4월 9일의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북한 김영일 총리는 “올해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해 인민소비품과 알곡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북단체들은 이를 마치도 ‘북한의 식량부족설’의 근거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북한에 식량이 매년 60만톤이나 남아돈다면 구태여 왜 북한당국이 식량을 수입하고 알곡생산 증대를 그토록 강조하겠는가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논리”와 결부시켜 살펴볼 때 이해될 수 있다. 북한은 2012년을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들이 강조하는 사회주의강성대국은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러움 없이 사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여기서 주민생활과 관련된 북한당국의 목표를 읽을 수 있다. 즉, 2012년까지 주민생활에서 부러움이 없는 생활수준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열겠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 북한이 생산하는 ‘곡물+감자’ 600만톤 가운데 300만톤 가량이 아직 옥수수와 감자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사람들도 정서와 생활양식이 우리와 같을 텐데 매일 점심마다 옥수수 음식과 감자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당장의 굶주림은 면하더라도 그것을 ‘윤택한 식생활’이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북한이 강조하는 농업생산성 증대는 당장 오늘의 굶주림을 면하기 위한 절박한 외침이 아니라 ‘감자밥을 쌀밥으로’ 바꾸고 ‘옥수수밥을 쌀밥으로’ 바꾸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하는 것도 주민들에게 나눠줄 감자밥을 가능한 한 쌀밥과 옥수수밥으로 바꾸기 위한 시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생산한 600만 톤의 ‘식량+감자’에는 가축사료용 곡물이 포함되어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북한은 이미 올해 4월 15일과 10월 10일, 이틀에만 20만마리의 돼지를 잡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축생산을 늘리기 위한 방편에서도 사료용 감자와 옥수수 재배를 증산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북한은 식량의 자급을 실현하기 위해 감자농사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였지만 앞으로는 옥수수와 감자를 주민들의 주식이 아니라 가축 사료용으로 돌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쌀과 곡류생산 증대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수해피해다. 북한은 2010년 신의주 일대에 대규모 수해를 입었으며 한반도 전역이 냉해와 이상고온 등 악천후 속에 시달려야 했다. 한반도 남쪽인 한국도 2010년 쌀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50만톤 가량 줄어들 전망인 가운데, 북한도 식량생산 목표치에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신의주 수해가 심각해지자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밀가루를 긴급 수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수해 피해가 심각한 지역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북한농업에서 최고 200만톤 이상의 생산감소를 보이지 않는 이상 북한주민들에 대한 식량배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걱정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200만톤의 생산감소는 무려 평년의 33%나 유실되어야 하는 양이기 때문이다. 물론 식량유실 규모가 200만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2010년 북한의 수해규모가 크고 대량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만큼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해지원은 일반적인 식량지원과 달리 일시적으로 생겨난 수재민에 대한 긴급지원의 성격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2010년, 알곡증산을 주장하는 북한의 목표는 1990년대 과제였던 굶주림의 해결을 뛰어넘어 2012년까지 모든 가정에 쌀밥과 고기반찬을 공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자기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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