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라인 없앤 뒤 사업장 공개하면 뭐하나"

삼성반도체 노동자 근무환경 논란 재점화... "비판 들끓자 현혹시키려는 것"<뉴스 검색 제공 제외>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전격 공개하고 노동자들의 사망과 관련해 공식적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15일 기흥사업장 반도체 D램 생산라인 일부를 포함해 전체 생산 공정을 언론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또 이날 직원들의 사망과 관련한 근무환경 논란에 대해 회사의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월간 말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에 공장에서 가장 오래된 라인인 5라인과 최신 라인인 S라인 등을 공개한다. 이 라인은 모두 기흥 공장 내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기흥·화성·온양에 각각 반도체 사업장을 두고 있으며 라인이란 반도체 제조공정 중 한 공정을 진행하기 위한 작은 룸(room)인 베이(bay)들이 묶여 있는 작업 공간(clean room)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클린룸은 반도체의 핵심 생산 공정이 진행되는 곳으로 공정 자체가 기술보안 대상인데다 미세먼지라도 유입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그 동안 반도체 기업들이 세부 공개를 꺼려왔던 곳이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장을 공개하는 이유는 지난 3월 31일 고 박지연씨가 백혈병으로 숨을 거두면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됐기 때문이다.

고 박지연씨는 고3이던 지난 2004년 12월 삼성반도체 온양사업장에 입사해 주로 납 용액과 화학용품을 취급하는 반도체 검수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 입사 2년 반 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투병 끝에 지난 3월 31일 23살의 젊은 나이로 결국 숨을 거뒀다.

또 앞서 3월 6일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웨이퍼 가공공정(Feb공정) 클린룸에서 세척 업무 등을 담당했던 고 황유미 씨가 지난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3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동안 황 씨의 동료였던 이숙영 씨가 사망했고, 고 황민웅 씨도 사망했다. 기흥공장에서 일한 여동생이 죽었다는 제보까지 합하면 벌써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만 10명이다. 이들은 모두 백혈병 및 림프계열 암으로 사망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이들 뿐만 아니라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여럿이 간암, 악성 종양과 같은 희귀 암 등에 걸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밖에 ‘건강한 노동세상’,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 ‘다산인권센터’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많은 시민사회 단체가 반도체 생산공정이나 공정에 사용되는 물질에 발암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여전히 백혈병으로 사망했거나 투병 중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산재’가 아닌 ‘개인 질병’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다 이날 갑자기 "반도체 제조공정의 근무환경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해소"하겠다며 전격적으로 생산라인 공개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사고 라인이 이미 없어졌는데 이제와서 사업장을 공개하는 것이 이미지 관리용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이 고 박지연 씨의 죽음 때문에 곤욕스러워지자 미리 준비를 해놓고 사업장을 공개해 깨끗한 이미지로 현혹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며 “암을 유발하는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피해자들이 일하던 1~3라인 중 3라인은 이미 없어졌다. 뭘 보여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에 따르면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던 3라인은 이미 지난해 OLED 생산 라인으로 교체됐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1라인부터 시작해서 계속 증축이 됐고 현재는 15라인 정도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중 1~3라인은 수동 처리 작업량이 많고 설비가 낡아 이른바 ‘사고 라인’으로 불리던 곳이다.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가 근무했던 곳이 바로 이 3라인이었다. 이에 대해 이 노무사는 “삼성반도체가 ‘사고 라인’인 3라인을 일부러 없앤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반도체 핵심 생산 라인을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반도체 공장에 대한 역학조사는 이미 실시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의 의뢰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작업환경을 측정했다. 그러나 당시 작업환경측정은 평상시 작업환경을 재현하지 않은 채 실시됐고 평소보다 작업량이 적은 상태였다. 결국 유해물질 사용량과 발생량도 줄어들어 발암물질인 벤젠은 검출되지 않았고 연구원은 이 측정결과를 근거로 노동자들의 발병 여부가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듬해인 지난 2009년 10월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역학조사 결과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물질인 감광제(Photoresist)에서 삼성전자는 6건 모두 0.08ppm~ 8.91ppm에 이르는 벤젠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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