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성과 생의 순환
김주연 개인전 – 이숙(異熟)Ⅷ


광주롯데갤러리에서 김주연 작가를 초대한다. 2009년 ‘MetamorphosisⅢ’(무등현대미술관, 광주)전시에 이은 이번 개인전은 그간 지속해온 이숙(異熟)시리즈의 여덟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숙(異熟)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의미의 불교 용어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성’에 관한 이야기는 종국에 무(無)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 존재감 등을 구체화시킨 개념이다. 국내외에서 주목 받고 있는 생태미술가 김주연은 자연 생태계의 모든 동식물이 생겨나고 성장, 소멸해가는 과정을 이숙의 의미로 비유, 새싹의 씨앗을 기름진 토양이 아닌 신문이나 책, 혹은 옷과 같은 문명의 상징물에 발아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PVC의 구조물에 오이를 배양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PVC에 옮겨 심은 오이모종은 꽃이 나오면서 열매를 맺게 되며 전시기간 동안 계속 성장한다. 하수도나 배수관으로 사용하는 PVC를 이용해서 생태계의 오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그곳에 오이를 배양함으로써 일상의 식생활과 생태계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우리가 쉽게 버리고 오염시킨 물이 곧 우리의 식생활이고 생태계의 현장임을 역설한다. 자연물의 성장과 시듦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의미, 혹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어온 그간의 작업방향에서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눈에 띤다. 작품 설치의 세부형태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시장 중앙 바닥에 팔각형태의 PVC 구조물이 자리하며, 천정 트랙 아래로 금속 재질의 원형 구조물이 매달려있다. 오이모종의 덩굴이 위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검정색 이음줄이 바닥과 원형 구조물 사이를 연결한다. 21일의 전시기간 동안 오이는 차가운 구조물 사이를 매우며,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을 것이다. 더불어 작가는 전시 마지막 날에 다자란 오이를 관람객들에게 수확하게 하여,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고 이번 전시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열매가 맺기까지의 2-3주간의 생육 기간은 의미 그대로 ‘기다림’이다. 적정한 따스함과 물기, 그리고 손길은 순환하는 자연의 힘을 대체할 것이나, 그 안에서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없다면, 이 전시는 무의미한 시간이 될 것이다. 끊임없이 생과 멸을 반복하는 생명의 이치를 통해 우리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함께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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