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크리에이티브드라마,  헨릭입센 원작, 민중의적
이달 22일까지 전대 사거리 '씨디 아트홀' 유료 공연


“다수는 결코 옳지 않다. 정말로, 다수는 결코 옳지 않다!”
헨릭 입센의 희곡 <민중의 적>은 노르웨이 남부 해안가의 한 작은 온천 휴양 도시에서 진실을 굽히지 않는 한 과학자(의사)와 지역 이기주의에 빠진 주민 집단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온천이 주 수입원인 작은 휴양 도시의 의료직 박사(과학자)인 스토크만 박사는 그 지역 온천수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온천개발 계획을 수정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형인 시장이 주민들의 이익을 해친다며 사실을 은폐하라고 동생을 협박한다. 스토크만은 올바른 시민이자 과학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진보적 언론인 <민중매일신보>에 오염 실상을 공개하려 한다.


▲ 연극 <민중의 적>이 전남대 사거리 씨디 아트홀에서 이달 22일까지 매일 오후8시, 주말 오후5시에 공연한다. 사진은 <민중의 적>의 한 장면. ⓒ극단 크리에이티브 제공
형과 동생이라는 혈육, 시장(형)과 하위직 공무원(동생)이라는 공적 위치가 복잡하게 겹쳐져 감정충돌로 들어나는 헨릭입센의 명작 <민중의 적>. <민중의 적>은 주제의 이념성과 사상성 때문에 시민혁명이나 전제왕권에 대항하는 색깔(?)있는 연극으로 선입관을 갖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극에서 말하는 민중의 적은 다수의 이익 옹호자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려는 '외로운 소수자'들을 말한다.  (아래 원작자 헨릭입센 소개 참조)

▲ 극단 크리에이티브드라마의 연극 <민중의 적> 홍보지.
관객을 끌어 올리고 깨우치고, 보다 진실한 연극으로 시민들과 친숙해 질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선보인 극단 <크리에이티브드라마>의 ‘보고싶은 명작’ 시리즈 1탄 - 연극 ‘민중의 적’ 이 지난 5일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극단측은 <민중의 적>이 광주에서 관심을 끄는 다섯가지 이유를 "△소극장에서 녹여내는 강력한 드라마 △14명의 출연진이 펼치는 불꽃 튀는 신경전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 숨 쉬는 무대 △간결하고 뚜렷한 대립 구도 속에서 갈등을 극대화 △예측 할 수 없는 헨릭입센의 탄탄한 스토리 등" 을 꼽는다.

공연은 전남대 사거리 씨디아트홀에서 이달 22일까지 이어진다. (목, 금 8시 / 토, 일 5시. 단 월, 화, 수)공연시간 : 목, 금 저녁 8,  토.일요일은 5시( 월, 화, 수 및 11월 19일 목요일 공연없음) . 관람료 일반(대학생) 25,000원 / 고등학생 20,000원 (고등학생 이상 관람 가)
문의: 할인예매 : (062) 521-7555,  http://cafe.daum.net/CreativeDrama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1906)

19세기 유럽사회의 허위의식에 정면으로 맞선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

헨릭 입센은 1828년 3월 20일 노르웨이 남쪽 항구도시 시엔에서 태어났다.
8세 때 부유한 선주였던 아버지가 파산하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등 이후 30여 년 동안 불우한 생활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그림에 재능을 보여 화가가 되려고 했지만 경제사정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의과대학 입학시험에 실패해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계속되는 생활고로 알콜중독에 빠지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30세에 수잔나 토레센과 결혼, 이지적이고 현명한 그녀는 입센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입센 최초의 현대극 <사랑의 희극>(1862)의 여주인공은 바로 아내가 모델인 작품. 결혼 생활은 입센에게 정신적으로는 안정을 가져왔지만 물질적으로는 여전히 빈곤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러 차례 신청한 예술가 연금마저 거부당하자 고국을 떠나 30년 가까운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로마에 정착한 지 2년 만에 새로운 영감을 충전한 그는 낭만시대 최고의 걸작인 운문극 <브란>(1866)을 발표, <파우스트> 이래 대서사극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사실이 고국에 전해지자 “이 나라에 세계적인 시인이 태어났다”는 경탄과 동시에 노르웨이 국회가 연금을 지불하기로 결의하여 드디어 생활이 안정되었다.

연이어 발표한 운문극 <페르귄트>(1867)는 오늘날 노르웨이 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비굴하고 나약한 노르웨이 국민에 대한 풍자로 인해 세인의 물의를 일으켰다. 그 후로도 입센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강렬한 충격과 찬반 양론의 논쟁의 대상이 되곤 했다.

10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역사극 <황제와 갈릴리 인>(1873)은 입센의 명성을 확고하게 해주었으며 오랜 고투 속에 그의 사상적 자세도 확립되고 예술가로서도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입센은 사회의 허위와 인습을 파헤치는 사실주의적인 사회극을 쓰기 시작, <사회의 기둥>(1877), <인형의 집>(1879),<유령>(1881), <민중의 적>(1882) 같은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이후 입센의 예술적 감성은 사회문제보다 인간의 내면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고, <들오리>(1884)를 시작으로 <로메르스 홀름>(1886), <바다에서 온 여인>(1888), <헤다 가블러>(1890)를 완성한 이듬해인 63세에 노르웨이 국민들의 환호 속에 조국으로 귀환한다.

스스로 에필로그라고 이름 붙인 최후의 작품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 예술을 위해서 인생을 희생한 데 대한 통한이 담긴 작품이다. 1906년 5월 23일, 동맥경화증으로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버나드 쇼는 <입센이즘의 정수>(1891)라는 저서를 통해 “유럽에 충격을 준 작가, 젊은 세대의 졸라이즘과 경향을 함께하는 작가, 사회의 문제를 은폐하지 않고 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논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작가”로 헨린 입센을 예찬하고 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