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實과 捨實 사이­

모든 사람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news(정보)를 접수하는 통로로 신문, 방송, 인터넷을 활용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렇고, 그렇게 알고 있다.

모름지기 시민 개개인의 의견(意見)이란 news(정보)를 취합, 분석, 종합한 결과이므로, 신문, 방송, 인터넷, 정확하게는 이들 메스미디어의 편집 방향은, 시민의 여론을 규정하고 좌우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간밤 한국에선 아들이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하였고, 연애인 A남과 B녀가 그 동안 서로 사귀고 있다는 예측을 시인함으로써 공식커플임을 확인하였으며, 미국 버텍에선 어느 한국인이 32명의 교수와 대학생을 총으로 쏴 죽인 후 자신도 자살하였다.

이라크에선 신원을 알 수 없는 자들의 폭탄테러로 200여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부상하였다는 사실(事實)은 신문, TV, 인터넷의 四角 프레임 안에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news = 정보’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위 프레임에서 버림을 받게 되면, 그것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버려진 과거(捨實)가 될 뿐이다.

지난 4. 16. 일어난 한국인 조승희의 총기난사 보도는 양과 질에서 참으로 풍부하다. 지난 1주일 내내 조씨 사건은 주요 일간지 앞 5면의 전면을 가득 채워왔고, 인터넷 검색포털 검색어 상위순위를 기록해 왔다.

조씨가 그 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최소한 여성 3명을 스토킹하였으며, 약 2달 전부터 범행을 결심하고, 총포상에서 총기를, 인터넷으로 총알을 각 구입하였으며, 이미 사격장에서 권총 사격 연습을 하여 왔고, 사건 당시 약 200발 이상의 총알을 발사하였다는 점에서부터, 조씨는 그 동안 부자에 대한 적개심, 이민생활의 부적응을 심하게 경험하며 외톨이로 생활하였다. 

스스로 발송해 둔 영상물에서 컴퓨터 게임, 한국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차용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 사건 범행을 통해 자신이 순교자가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물론, 한국 정부가 추모 사절단 파견을 검토하였다가 철회하였고, 한국의 주미대사는 희생자 숫자에 상당한 32일간 릴레이 단식을 제의하였으며, 한사회는 미국시민의 한인에 대한 보복을 걱정하며 추모기금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일반시민은 조씨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우리 한국사회가 걱정하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그렇게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상혼에 젖은 NBC의 보도 태도가 부적절하였다는 대학 구성원의 비판, 조씨도 미국 이민사회 부작용이 낳은 피해자라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점 등 지난 일주일 동안 이 사건은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분석되고 평가되고 기록되었다.

위와 같은 버텍 총기 사건에 관한 언론의 편집 방향에 비하면, 지난 4. 18. 있었던 4건의 이라크 자살폭탄 테러에 관한 한국 언론 보도의 관점과 비중은 심히 대비된다.

지난 4. 18. 그러니까 버텍 사건 이틀 후, 이라크에선 바그다드 중심지 사드리야 시장 자살폭탄 사건으로 148명이 사망, 부상자도 150여명에 달하였고, 시아파 지역 사드르시티 검문소의 차량 자살 폭탄 사건으로 최대 41명이 숨지고, 76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카라다의 압둘­마지드 병원 인근에서도 폭탄을 장착한 차량이 폭발하여 1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했고, 리사피 지역에서도 미니버스가 폭발하면서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했다는 것이다.

즉 단신으로 보도된 신문기사 몇 개를 합쳐 보면, 4. 18. 불과 하루 동안 이라크에선 4건의 자살폭탄 테러로 204여명이 사망하고, 245여명이 부상당하였다는 것이다.

위 4건의 테러에 관하여는 테러의 배경, 테러리스트의 신상, 희생자들의 신상 그 어느 것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폭탄의 잿더미에 묻혀 버렸고, 언론의 편집 담당자 역시 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는 듯 하다. 다만 ‘미군 증파에 대한 이라크 내부의 반발, 말라키위 친미 이라크 정부에 대한 반대’의 정치적 해석만이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자칭 순교자 조씨의 범행으로 희생된 32명의 미국 피해자, 그에 비하면 매우 정치적 원인을 논구해야 할 폭탄테러 사건으로 사상된 450여명의 이라크 피해자에 대한 언론의 각 태도에서, 나는 ‘절대적 목숨의 상대성’이란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사건의 취사선택, 취사된 사건의 지면할당이란 언론의 편집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450여명 이라크 희생자보다, 32명의 미국 희생자의 값어치가 훨씬 비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울증 환자에 의해 이유 없이 희생된 32명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똑같은 무게로, 반미와 친미괴뢰정권에 대한 반대 표시를 위한 테러에 희생된 450여명의 사상자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32명 개개 목숨의 무게가 지구보다 무거운 것과 같이, 450여명 개개 목숨의 무게는 위 32명의 목숨보다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버텍 희생자들을 위해 32송이의 국화꽃을 준비하였듯이, 이라크 폭탄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450여송이의 국화꽃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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