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부터 3월 4일까지

광주신세계갤러리는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한국미술의 거장들》을 2월 15일부터 3월 4일까지 19일간 개최한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소장품 5,385점(2022년 수집완료 기준) 중 9작가의 작품 19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사에 남은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자, 오랜 기간 광주에서 운영되어온 두 미술 기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아래 작가 소개 참조)

ⓒ광주신세계갤러리 제공
ⓒ광주신세계갤러리 제공

예향 광주를 대표하는 광주시립미술관은 1992년 개관한 이래로 여러 기획전과 교육 및 문화행사, 작가 창작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특히 5,385점의 근현대 미술작품을 수집함으로써 호남은 물론 한국의 역사, 사회, 문화를 연구하고 보전하여 미래 가치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광주미술문화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개관 3년 뒤이자,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개최된 1995년 개관한 광주신세계갤러리는 ‘광주신세계미술제’를 필두로 수상작가 초대전, 테마기획전, 미술전문 세미나 등을 개최해왔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과 연결된 백화점 1층에 위치하여 일상에서 미술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 공간으로서 자리 잡았다.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한국미술의 거장들》은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신세계갤러리가 광주 미술문화 발전을 위한 협력을 이어나가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광주시립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선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미술관의 주요 기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소장, 보존’하기. 둘째, 소장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작품과 작가들의 활동을 ‘연구’하기. 셋째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전시’하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광주시립미술관이 수집하고 연구해온 작품 중에는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님들의 보물과 같은 작품들이 존재한다.

ⓒ광주신세계갤러리 제공
ⓒ광주신세계갤러리 제공

이번 특별전을 통해 광주시립미술관의 소장품들이 보다 많은 관람객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한국미술의 거장들》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한국적 인상화풍을 대표하는 오지호,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와 같은 전남 출신의 작가를 포함하여 박서보, 서세옥, 이우환, 이응노, 이중섭, 하종현까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9인의 작품 19점을 선보인다.

미술교과서와 경매가 돌파 뉴스에서 접했던, 그래서 다소 멀게 느껴졌던 작품을 원화로 직접 감상함으로써, 명화들이 전하는 감동을 직접 느끼고, 미술과의 거리를 좁히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광주신세계갤러리는 “평소 보다 많은 관람객 분들이 찾으실 뿐만 아니라, 전시 관람시간이 크게 늘어나 전시에 대한 관람객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지역의 미술문화 발전을 위해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계와의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라고 전시에 대한 반응을 전했다.

 

작가 소개
(*광주신세계갤러리 작성)
 

◆김환기 金煥基 Kim, Whan-Ki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난 김환기(1913-1974)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서정적인 동양미를 서구 모더니즘에 접목하여 독창적인 추상화면으로 선보였습니다.

1936년 니혼대학 미술과에서 공부하며 서구 추상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광복 이후부터 피난 시기에 걸쳐 달과 산, 구름, 학 등 한국적 소재와 정서 탐구에 열중하였습니다.

이후 약 3년간의 파리 시대(1955-1958)에는 한국적 요소들을 요약하고 함축한 〈월광〉, 〈산월〉과 같은 작품이 탄생하였고, 상징화와 단순화 경향은 귀국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낸 뉴욕시기(1964-1974)에는 구상적인 회화세계에서 벗어나 반복되는 점을 통해 추상공간에서 무한의 의미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제1회 한국일보 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는 이 시기의 대표작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두 작품은 모두 '뉴욕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구상적인 회화세계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동양적인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하여 전통성과 현대성이 겸비된 회화 세계를 보여 줍니다.
 

◆박서보 朴栖甫 Parl, Seo-Bo

박서보(1931-2023)는 한국의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1956년 반국전 선언의 주역으로, 1957년 〈회화(繪畵) No.1〉으로 국내 최초의 앵포르멜 작가로, 1970년대 이후로는 단색화의 기수로서 독보적 화업을 일궈왔습니다.

또한, 그는 교육자이자 행정가로서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족적을 남기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변천을 주도한 작가 중 한 명으로도 꼽힙니다.

박서보 작가의 화업을 살펴보면 앵포르멜, 옵아트, 팝아트 등 다양한 형식과 매체를 실험을 만날 수 있지만, 오늘날 박서보 작가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반복적 작업을 통해 화면 전체를 채워낸 <묘법> 연작입니다.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반복적인 연필 긋기를 통한 수행적 작업으로 제작된 1970년대 후반 ‘연필묘법 시기’, 한지와 색채를 재발견한 중기 ‘지그재그 묘법 시기’, 손의 흔적을 제거하고 풍부한 색감을 강조한 ‘색채묘법 시기’로 구분되는 묘법 작품들은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단순한 화면 위에 반복해서 이뤄진 수행적 작업의 밀도가 쌓이면서 독특한 화면을 만들어냅니다. 2015년 이후 단색화가 세계적으로 조명 받으면서 박서보 작가는 한국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습니다.
 

◆서세옥 徐世鈺 Suh, Se-Ok

산정(山丁) 서세옥(1929-2020)은 정통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회화를 선보이며, 한국 현대미술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에게 배운 서세옥 작가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같은 세대의 동양화가 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1960년 박세원, 장운상, 전영화 등과 ‘묵림회(墨林會)’ 결성을 주도하고 동양화의 혁신운동에 앞장선 그는 전통적 소재들을 절묘한 필치로 간략하게 표현하고, 추상성과 단순성을 토대로 현대적 동양화를 개척하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점과 선을 중심으로 한 수묵 추상작업으로 현대미술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1970년대부터는 인간의 형상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관조와 명상을 바탕으로 자연에 귀의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는 〈사람〉 시리즈를 제작하였습니다.

군중의 움직임과 형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역동적인 형상과 여백의 미를 담아낸 〈사람〉 시리즈 중 하나인 〈군무〉는 단순한 선으로 사람의 형상을 표현하면서도 동작과 표정이 매우 풍부한 작가 특유의 조형성을 보여줍니다.
 

◆오지호 吳之湖 Oh, Chi Ho

오지호(1905-1982)는 한국적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최초로 유화를 공부한 고희동이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혜석의 〈농가〉를 본 후 작가로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술공부를 위해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미술학교를 거쳐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색채를 통한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지속적으로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김주경 등과 서양화 단체 ‘녹향회’를 만들고 자연주의 유화를 발표하였으며, 1935년부터 인상주의 화풍의 밝은 색채로 한국의 풍정을 담아냈습니다.

일본의 ‘외광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룩했습니다.

“그늘에도 빛이 있다”, “그늘은 빛이 가려진 것이 아니라 빛이 변화된 것”이라는 지론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조선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재직하며 호남지역 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추상미술이 주목받던 시기에도 「피카소와 현대회화론」, 「순수회화론」,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등의 글을 발표하며 구상미술의 가치를 역설하며 한국 구상미술의 거목으로 남았습니다.
 

◆이우환 李禹煥 Lee, Ufan

이우환(1936-)은 미술작가이자 평론가로, 한국 단색화의 주요 작가로서 활동하였으며, 일본의 현대미술 운동인 모노하(物派)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56년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961년 니혼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미술계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물건을 이용한 조각을 발표하고, 1969년 발표한 일련의 평론을 통해 물체 그 자체에 대한 미학적 탐구를 추구하는 모노하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1971년에 발간한 평론집 『걸맞은 상대를 구하여』(1971)는 하이데거의 예술개념, 현상학 등의 철학 개념을 비평에 접목한 예술론을 잘 보여줍니다.

미술평론가로서 일본 미술계에 입지를 구축한 그는 다시 한번 작가 활동에 전념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국적 작가로 여러 불이익을 받기도 했으나,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로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 등 권위 있는 국제전에 참여하며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와 같은 회화 작업과 〈관계항〉과 같은 조각 작품은 그의 대표 작품입니다.
 

◆이응노, 李應魯, Lee, Ungno

고암(顧菴) 이응노(1904-1989)는 서화전통을 활용한 현대적 추상화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작가입니다.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1922년 해강 김규진의 문하생이 되었고,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1936년에 일본 유학을 떠나 가와바타화학교, 혼고회화연구소, 덴코화숙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민족적인 한국화를 주창하며 조선미술가협회의 상임위원이 되었고, 1950년대에는 자유로운 화풍을 선보입니다.

1957년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에서 열린 《현대한국미술전》에 출품한 〈출범〉과 〈산〉을 록팰러재단이 구입,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이응노 작가는 유럽과 미국 진출을 꿈꾸게 됩니다.

프랑스 평론가 자크 라세뉴로부터 초청을 받아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로는 한자와 한글을 재해석한 〈문자추상〉, 단순하게 표현된 인물들이 돋보이는 〈군상〉 등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전쟁 때 헤어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동베를린에 갔다가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1967년 강제송환 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고통을 겪기도 했는데, 1년 8개월간의 투옥기간 제작한 300여 점의 옥중작품은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해 온 거장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이중섭 李仲燮 Lee, Jung-Seop

이중섭(1916-1956)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가로 손꼽히는 작가입니다.

평안남도 지주의 막내로 태어난 이중섭은 파리에서 활동했던 임용련이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오산학교에 진학하여 드로잉의 중요성을 배우는 등 영향을 받게 됩니다.

1935년 도쿄의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보다 전위적인 학풍에 이끌려 분카가쿠엔(文化學院) 미술과로 옮겨 갔으며, 그곳에서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를 만나게 됩니다.

1944년 원산으로 돌아온 이중섭은 1945년 마사코와 혼례를 올렸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중섭 부부는 함께 부산, 제주로 피난을 갔지만, 생활고에 못 이긴 마사코가 1952년 두 아들과 일본으로 건너가며 생이별하게 됩니다.

1953년 도쿄에서 단 5일간 해후한 이후 가족과 만나지 못했던 이중섭은 1954년까지 통영에 머물며 〈소〉 연작, 〈부부〉 연작 등 대표작들을 제작하고, 이후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그리움을 달랬으나, 1956년 간장염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능수능란하면서도 강렬한 선의 표현을 바탕으로 단순한 형태 속에 역동성, 해학미, 향토성을 담아낸 특유의 화풍은 유화뿐만 아니라 담배포장지에 그린 은지화, 가족에게 보낸 편지 그림 등 드로잉 작업을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천경자 千鏡子 Chun, Kyung-Ja

천경자(1924-2015)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한국의 프리다 칼로’, ‘꽃과 여인의 화가’라 불린 채색화 작가이자 수필가입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재학 중 그림을 배웠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해 데생법과 채색법을 익혔습니다.

1944년 귀국 후 결혼한 그는 1946년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며 학교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습니다.

1954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임명되었고, 1960~80년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며 미술계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인물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그는 일본에서 돌아온 뒤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민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목격한 환상적인 풍경과 여성의 초상, 식물과 꽃, 뱀과 같은 모티브를 상상적으로 표현한 채색화로 결실을 맺으며 천경자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확립하게 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상설 전시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로 시민들에게 더욱 친숙한 천경자의 작품혼은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관람객들 곁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하종현 河鍾賢 Ha, Chong-Hyun

하종현(1935~)은 앵포르멜부터 단색화까지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간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입니다.

1959년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1960년대 앵포르멜(Informel, 비정형의 미술) 미학을 다양하게 실험하였고, 1969년에는 전위적인 미술가 그룹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하고, 전위작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였습니다.

1970년대 초에는 가공된 재료가 가진 형태와 물성에 관심을 기울여 나무, 철사, 못, 로프 등의 재료를 이용해 행위의 흔적을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다양하게 펼쳐진 하종현 작가의 작품을 대표하는 것은 1974년 시작된 〈접합(Conjunction)〉 연작입니다. 〈접합〉 연작은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천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굵은 올의 마대와 마대의 뒤쪽에서 밀어낸 유화물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이루어 내는 독특한 표면은 어떠한 서술적, 구상적 표현도 없이 작품이 표면 질감 자체가 만들어내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2010년대부터는 색채를 화두로 한 〈이후 접합〉을 선보이며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40년간 재직했으며,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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