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영광 출신 고 최병연씨 유골 80년만에 국내 봉환...귀향식 엄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전농 영광군농민회‧영광군여성농민회 성명 발표

기자회견문 [전문] 

타라와 조선인 사망자 1,117명 중 아직 돌아오지 못한 유골 1,116구!
 

이러고서도 일본은 양심이 있는가?
윤석열 정권이 말한 ‘물컵의 반’은 언제 채워지는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남태평양 타라와 섬에 해군 군속으로 강제 동원돼 숨진 고 최병연씨의 유골이 80년 만에 고향 땅에 묻히게 됐다. 

전쟁 야욕에 불탄 일본은 과거 식민지 조선에서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각종 공사 현장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굶주림 속에 소나 말보다 못한 취급을 받다 끝내 총알받이 신세가 되어야 했다. 

80년 만에 유골로 고향 땅을 밟게 된 고인도 그런 경우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영광군농민회, 영광군여성농민회 회원들이 4일 영광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예제하
4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영광군농민회, 영광군여성농민회 회원들이 4일 '고 최병연씨의 유골 국내 봉환 추도식이 열리고 있는 전남 영광문화예술의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강점기에 남태평양 타라와섬에 강제노역으로 끌려가 미군과 전투 중에 사망한 조선인 1117명 중 유골 1116구가 아직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고 있다. ⓒ예제하

1918년생인 고인은 24세이던 1942년 11월 아내,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남태평양 타라와에 끌려가, 꼭1년 만인 1943년 11월 25일 미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6,000km 거리의 키리바시공화국 타라와에는 당시 조선인 1,200여 명이 강제 동원되어 섬을 요새화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타라와 전투는 미군이 태평양전쟁 중 벌인 최초의 대규모 상륙전으로, 미군 3만 5000여명과 일본군 4,800여명이 맞붙어 미 해군과 해병대 1,021명을 포함해 6천여 명이 숨졌다.

이 중 한국인 사망자는 문서상으로 1,117명으로, 대부분 몰살당했다.

그중 유해가 돌아온 것은 80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이끌다 2021년 102세로 별세한 이금주 회장의 남편(고 김도민)도 타라와에서 사망했다.

1942년 11월 23세 나이에 부인과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타라와에 끌려가 1년 만에 사망했지만, 아직 유해조차 못 찾고 있다.

고 최병연씨와 동원 시기, 사망 장소, 사망 일자가 같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긴 채, 끌려간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생사도 모른 채, 그동안 돌아올 날만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가족들 심정이 과연 어떠했겠는가?

뒤늦게 유골로라도 아버지를 상봉할 날만 애타게 기다리다 끝내 지난해 고인이 되신 큰 아드님 사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 최병연씨의 추도식에 붙여,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유골로라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온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기적 같은 일이지만,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성의나 노력은 그 어느 것도 없었다.

ⓒ예제하
ⓒ예제하

이번 경우도 미 국방부 전쟁포로ㆍ실종자 확인국(DPAA)의 발굴 작업에 참여한 한국계 박사의 제보가 발단이 되어 우여곡절을 거쳐 봉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오키나와,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등에 끌려간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강제 동원 피해자는 군인·군속 2만 2천 명, 노무자 1만 5천 명 등 최소 8만여 명에 이를 거라는 게 학계의 추정이다.

그러나 일본과 사할린 등에서 일부 봉환된 유골은 있었지만, 태평양 지역에서 돌아온 조선인 유해는 이번의 경우를 제외하고 아직 한 구도 없었다. 

무엇보다 일본의 이중적 태도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2016년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 유골을 발굴하면 DNA 대조를 거쳐 유족에게 인도하고 있다.

단 DNA 검사 결과가 일본인으로 나올 경우만이고, 한국인 피해자는 원초적으로 배제해 오고 있다.

강제로 끌고 갈 때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며 똑같이 대우할 것처럼 하더니, 부려먹을대로 부려먹고 난 뒤에는 안면을 싹 바꾼 채 ‘모르쇠’ 한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까지 훼손했다.

죽어서 고향 품에도 안기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전몰자(戰歿者)를 일방적으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함으로써, 죽어서까지 일본국(日本國)을 위해 충성하도록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강제 동원된 것도 서러운데, 죽어서조차 일본국 신민(臣民)이 되라는 것인가?

살아서 귀환은 못한다 하더라도, 유골로라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될 일인가?

사랑하는 가족의 뼈 한 조각으로라도 만져보고 싶은 애타는 유족들의 심정을 전범국 일본은 아는가, 모르는가?

타라와 섬에 끌려간 경우만 해도 조선인 사망자 1,117명 중, 아직 돌아오지 못한 유골은 1,116구나 된다.

이러고서도 과연 일본이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일본 정부는 타라와를 비롯해, 하이난섬,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희생자, 조세이(長生) 탄광 사망자 등 일제에 의해 동원돼 사망한 피해자들의 유골을 발굴하여,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조속히 가족 품으로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유해봉환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전범국 일본은 무고한 조선인을 자신의 전쟁 야욕을 위해 사지(死地)로 끌고 간 것에 대해 마땅히 유족한테 사죄해야 한다.

또한 그에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상응하는 배상을 해야 한다.

특히 오늘 80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뜻깊은 추도식에 정작 가해자 일본은 추모사는커녕 얼굴조차 비추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인도적 행위가 아닐수 없다. 

오늘의 현실은 정부의 대일 퍼주기 외교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대법원 판결 취지를 뒤엎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한국이 뒤집어쓰는 소위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해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100년 전 일로 더 이상 일본에 더 이상 무릎 꿇으라 할수 없다”며, 일본과의 역사문제는 다 끝난 일처럼 취급하면서, 일본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예제하
ⓒ예제하

그러니 일본이 얼마나 만만하게 보겠는가? 

한일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은 관계라더니, 80년 만의 귀향길에 추도사 하나 없는 것이 윤석열 정권이 말한 한일관계 회복의 상징이란 말인가? 

정부는 “한국이 먼저 물컵의 반을 채우면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고 장담하더니, 기껏 이것이었나?

물컵의 반은 도대체 언제 채운다는 것인가? 

타라와 사망자 1,117명 중 1,116구의 유해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눈감고 화해의 손부터 잡으라는 것인가?

-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사죄하고 즉각 배상하라!

- 뼈조차 고향 땅에 못 가느냐! 유골을 돌려달라!

- 강제동원 인권유린, 일본정부는 사죄하라!

- 퍼줄 것 다 퍼주고 얻은 건 무엇이냐? 윤석열 굴욕외교 규탄한다!

2023년 12월 4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전농 영광군농민회‧영광군여성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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