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극장, 민족성을 발현의 장으로로 자리매김

1월 말에 시작한 광주의 극장이야기 오늘은 그 두 번째이다. 이번 호에서는 식민시대 광주극장과 이 지역 출신으로 한국영화사에 주요 영향을 미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93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광주극장은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조선인의 교육과 집회를 위해 사용되었다. 광주극장이 위치한 충장로 5가라는 지리적인 요건 역시 극장 공간의 민족성을 발현시켰다. 식민시대 번화가이었던 충장로 1가에서 3가에는 일본인 중심의 상가가 형성되었던 것에 반해, 당시로서는 외곽인 충장로 4, 5가에는 조선인들의 상점이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즉, 1920년을 전후하여 충장로 파출소에서부터 광주극장까지의 거리에 조선인들이 생활필수품인 주단, 포목, 고무신, 미곡 등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자연스레 이 거리에 조선인 대상의 행사들이 많이 열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자리하여 판소리를 극화한 창극이나 악극 등을 주로 선보였던 광주극장은 당시 평양의 ‘금천대좌(金天代座)에 못지않은 무대를 갖추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금천대좌’는 가부끼(歌舞) 공연과 악극 공연에 필요한 회전 무대를 갖추고 있었는데, 광주극장 역시 마찬가지이었다.

게다가, 광주극장은 무대 공연 예술 상연을 위한 배우 대기실과 분장실이 있었고, 조명 설치를 위해 건물 내부의 2층 양 측면에 공간까지 마련해두고 있었다. 광주극장 건물의 이런 모습은 1960년대 화재로 다시 건축된 현재의 광주극장 내부 모습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식민시대 광주극장에서 상영되어 인기를 누렸던 대표적인 영화로는 <무정>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그리고 <수업료>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1939년에 상영된 박기채 감독의 <무정>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 영화는 광주 출신으로 국내 20여 곳에서 대규모 광산을 개발하여 경영하였던 재력가 최남주(崔南周)가 대표인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최남주는 <꽃장사>(1930, 안종화 감독)에서 최남산이라는 이름으로 주연을 맡기도 하였다. 그는 1936년 조선영화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산하에 프로덕션을 두었으며, 의정부에 발성 영화 촬영소를 포함한 1,000평 규모의 스튜디오를 건립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월급제를 시행하여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보장하였기 때문에 1930년대 말 핵심 영화인들이 이 영화사에 상당수 몰려들었다. 이와 같이, 광주 출신 최남주가 모든 영화인의 숙원이었던 스튜디오의 건립과 영화인 전속제를 조선에서 최초로 실현하여 한국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획을 남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사는 안타깝게도 일제가 영화계를 전시체제로 개편하면서 공포한 ‘조선영화령’에 따라 조선의 모든 영화사가 폐쇄되고 통합되면서 없어지게 된다. 조선영화의 부흥과 발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942년 일제는 최남주의 영화사와 똑같은 이름의 ‘(사)조선영화주식회사’를 만들어 군국주의 고취와 전쟁 수행을 위한 영화만을 제작하게 된다.

한편, 1940년대 광주지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 최인규 감독의 <수업료>이다. 이 영화는 당시 경성일보가 발행한 경일소학생신문(京日小學生新文)이 현상 공모하여 최고상인 조선총독부상을 수상한 작품을 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이 광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작품의 원작자가 당시 광주북정공립소학교(현 광주수창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던 어린이라는 사실이다.

<수업료>는 복혜숙, 문예봉, 김신재 그리고 전택이와 김일해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하였다. 이 영화가 광주극장에서 개봉하자 광주의 각 학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광주 인근의 학생들까지 동원되어 눈물을 자아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음향 효과를 제대로 살려서 조선 영화의 리얼리즘 경향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식민시기를 지나 해방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광주지역 극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로 넘어간다.

위경혜님은 영상문화연구가로서 국내외에서 영화 및 동아시아 문화학을 연구해온 전문가입니다. ‘문화’ 담론의 소용돌이에 놓인 광주에 관심이 아주 많으며 현재는 중앙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광주의 극장문화사>에 이어 <호남의 극장문화사: 인접문화의 협동> 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