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예선 여섯 번째 출품작인 작품 <알 포인트>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로서 대종상심사위원들 간에도 논쟁이 된 영화적 미덕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작품이었다.

베트남 전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었다.거짓 이념과의 싸움이었고 시민과 군인조차 구분할 수 없는 싸움이었고 생전 처음 겪는 기후와 낯선 환경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분명 공포였을 것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빌려온 아이디어였다.

이 소설의 대략 줄거리는 10명의 사람이 외딴 섬에 초대를 받는다. 그들 뒤로 놓인 10개의 인디언 인형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도무지 밝혀지지 않는 범인의 정체. 어느새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게 된다. ‘도대체 범인이 누구지?’ 이 사람이 범인이다 싶으면 다음에는 바로 그 사람이 죽어나가면서 결국 10명이 모두 죽은 상황에 이르러도 범인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소설의 공포감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적’ 에 대한 두려움에 있었다. <알 포인트>가 주는 공포 또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귀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폐쇄 공간(알 포인트로 상징되는 베트남)이 주는 심리적 공포. 마지막 살아남은 병사는 ‘엄마가 이젠 날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 내가 너무 많이 변해 버렸거든’이라고 울먹이던 것처럼 그들은 이 곳에서 살아가면서 봐서는 안 될 너무 많은 걸 보고 만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대충 살펴보면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72년. 6개월 전 작전지역명 ‘알(R)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대원의 구조요청 무전신호가 들어온다. 

군부대에서는 이들의 생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면 항상 부대원들이 죽고 혼자 살아남은 혼바우 전투의 생존자 최태인 중위(감우성 분)에게 비밀 수색명령을 하달한다.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최태인 중위는 깐깐한 스타일의 진창록 중사(손병호 분), 취사병 출신의 마병장(박원상 분), 돈을 벌기위해 나이를 속이고 입대한 어린 장병장(오태경 분) 등의 수색조를 이끌고 침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들이 도착한 알 포인트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국이 베트남인을 무차별 학살했고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의 한 부대가 하루 아침에 전멸하기도 했던 피와 한이 서린 곳이다.

1월 30일 밤 10시.
이날도 사단본부 통신부대의 무전기엔 “당나귀 삼공...”을 외치는 비명이 들어오고 있다. 6개월 전 작전 지역 명 ‘로미오 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8명의 수색대원들의 구조요청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흔적 없는 병사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을 확보하는 것이 이번 수색작전의 목표였다.

3일 후.
좌표 63도 32분, 53도 27분 - 로미오 포인트 입구, 어둠이 밀려오는 밀림으로 들어가는 9명의 병사들 뒤로 나뭇잎에 가려졌던 ‘不歸 ! 손에 피 묻힌 자, 돌아갈 수 없다!’라고 적혀 있는 비문이 드러난다. 뭔가 내키지 않고 석연치 않은 느낌이지만 수색조는 빨리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속히 작전을 수행한다.

7일간의 작전 중, 첫 야영지엔 10명의 병사가 보인다. 그러나 이제 하루가 시작되고 있을 뿐인데 이들 역시 한 사람씩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시작하며 영화는 뭔가에 홀린 수색대원들이 서로 총을 겨누는 과정을 통해 사지(死地)에 몰린 인간의 광기와 나약함을 106분 내내 보여준다.

그들이 찾아야하는 미션은 그들 자신의 주검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들이 하나하나 죽어갈 때 그들의 미션은 완수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이라는 현실의 구멍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메우기 위하여 새로운 부대의 도착을 기다려야한다.

전쟁과 역사는 지금도 그렇게 술래잡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106분의 영화가 끝났다. 이 영화의 공포 역시 원인 모를 존재에 의해 죽어간다는데 있다.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지만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무도 없지만 동시에 모두가 있는 그 곳에서 대원들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이 두려운 건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 상상의 공간에서는 나와 너, 아군과 적군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혼란에 빠진다. 그렇다면 불안과 공포 속에 보이지 않는 적의 정체는 무엇일까? 귀신일까?

먼저 이 작품은 학교와 가정을 배경으로 한 국내 공포영화 소재의 상투성을 뛰어는 넘었지만 불행하게도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공수창 감독의 이 같은 미덕은 공포영화로서는 치명적인 별로 무섭지 않다는 약점에 묻히고 만다.

다행이도 영화는 음향효과나 깜짝 화면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저차원의 공포보다는 두뇌게임과 열악한 상황에 내던져진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심리적 공포를 선택했다.

하지만 ‘식스 센스’‘디 아더스’ 등 할리우드의 1급 스릴러에 맞춰진 한국 관객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 되고 만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처음 연출을 맡은 공수창 감독은 베트남 전을 그렸던 <하얀 전쟁>과 <텔미썸씽><링>을 썼던 시나리오작가이다.

영화인이라면 아니 사내로 태어나서 영화감독쯤은 한번 해보고 죽어야 할 일이라고 농담 삼아 늘 말씀하셨다는 故신상옥 감독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은 감독질(?)이다.

筆者 역시 언젠가는 내가 쓴 작품으로 내 고향을 무대로 내 뜻대로 영화 한편을 만들고 싶은 욕망은 아직도 항상 마음 한쪽에 도사리고 있다. 그 욕망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해도 좀처럼 버릴 수도 또한 없다.

그 동안 내 시나리오 작품이 아니더라도 남의 촬영현장에라도 자주 얼굴을 내민 것은 사실 이러한 욕망이 잠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수창 감독은 작년 스크린 쿼터 저지 광주 가두시위 첫날에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여고생 시집가기>의 김경형 감독과 筆者를 포함한 영화인으로는 4명이 함께 광주 충장로 우체국 앞에 피켓을 들고 서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인연이 있다.

처음 연출한 작품이라 로케이션 일정이 결정되고 D 데이가 가까워지면서 체중이 내리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첫 날 자다 깨다를 수십 번 했다는 감독은 편집과 사운드가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한다. 그러나 영화는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되었고 조금 많다 싶은 극중 캐릭터들도 작가출신답게 가지런히 자리를 잘 잡아 주었다.

깐깐한 영화를 만들어 신인감독상 후보에 오른 체구는 작지만 배포가 큰 공수창 감독은 한쪽에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물창고를 놔두고 모두가 이미 퍼낼 대로 퍼낸 우물에 달려들어 바닥을 박박 긁어대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 속에서 특이한 소재를 선택하여 잘 만들어보려고 애쓴 흔적이 듬뿍 묻어났다.

차라리 70년대 이데올로기 앞에, 국가 이익 앞에 무참히 희생되는 전쟁의 처절함에 울부짖는 절규의 모습으로 테마를 잡았더라면 훨씬 관객의 공감을 주지 않았을까 심사 내내 필자는 생각했었다.  

어쨌든 기차는 이미 떠났다. 첫 감독으로서 엎치락뒤치락 부푼 가슴은 관객의 충분조건을 채우지 못한 채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으로 삭막한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충무로의 뒷골목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공수창감독이여! 당신에게는 또 한번의 희망은 있다.

 

   
문성룡님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이며 한국영상작가교육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영화일꾼입니다. 지난해에는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또한 광주시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으며 스크린 쿼더 축소반대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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